[우리말 산책] 백성이 잡지만 귀한 사람이 먹던 민어
요즘 제철을 맞은 민어는 여름 보양식으로 인기가 높다. 하지만 대중이 민어를 먹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민어는 많이 잡히는 생선이 아니고 값도 비싸다. 게다가 민어는 활어 상태를 유지하기가 힘들어 냉장기술이 발달하지 않은 시절에 내륙 사람들은 구경조차 하기 힘들었다.
민어(民魚)라는 이름에 ‘백성 민’ 자가 들어 있다 보니 누구나 흔히 먹던 생선으로 오해하기 쉬운데, 사실은 그렇지가 않다. 옛 문헌들을 보면 민어의 원래 이름은 ‘면어’였다. 정약전이 지은 <자산어보>도 “ ‘면’과 ‘민’은 소리가 서로 가깝다”며 민어를 ‘면어’로 기록했다. 또 서유구가 지은 <난호어목지>는 민어를 쓰기는 했지만 ‘民魚’와는 한자가 다르다. 즉 민어의 원래 이름은 ‘면어’였고, 나중에 면어보다 발음하기 쉬운 이름으로 바뀐 것이 ‘민어’이며, 민어의 한자 표기들 중 하나가 ‘民魚’다. 이런 민어는 백성들이 잡지만, 그것을 먹는 사람은 임금과 왕실 사람 같은 귀한 분들이었다.
민어와 관련해 “민어가 1000냥이면 부레가 900냥”이라는 얘기가 있다. 이를 두고 ‘민어 부레가 그만큼 맛있다’는 얘기로 해석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이 또한 곧이곧대로 믿을 얘기는 아니다. 민어의 부레는 쫄깃한 식감이 미식가들의 입맛을 사로잡을 만하다. 그러나 민어 부레의 진짜 가치는 ‘맛’에 있지 않고 ‘쓰임’에 있다.
민어의 부레를 끓여서 만든 풀은 접착력이 강해 목기를 붙이는 데 많이 쓰인다. 합죽선의 부챗살과 갓대를 붙일 때나 가구와 각궁 등을 만들 때 꼭 필요한 것이 ‘민어 부레 풀’이다. 이를 ‘어교(魚膠)’라 하며, 이 말은 국어사전에 올라 있다. ‘옻칠 간 데 민어 부레 간다’는 옛말도 있다.
민어는 소리를 내는 물고기다. 소리를 내는 이유는 많다. 짝짓기를 위한 ‘세레나데’도 그중 하나다. 하지만 달콤한 구애의 속삭임은 죽음의 통곡이 되기도 한다. 사람들이 대나무를 물속에 넣어 민어의 소리를 듣고 그물을 치기 때문이다. 인간의 지혜가 민어에게는 비극이 되는 셈이다.
엄민용 기자 margeu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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