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GO 발언대] ‘양평 고속도로’보다도 못한 ‘국민의 안전’
교과서에서 배우던 ‘아노미’ 상태가 떠오르는 오늘이다. 폭우로 인한 반지하 침수를 시작으로 이태원 참사, 전세사기 피해자의 잇따른 사망 소식, 오송 지하차도의 참변까지, 이 모든 비극이 지난 1년 사이에 발생했다.
계속되는 비극뿐 아니라, 사회적 재난을 마주하는 한국 사회의 규범과 도덕 기준이 상실되어 가는 상황이 더욱 안타깝다. 책임 전가를 넘어, 뉴스 헤드라인은 하루가 멀다 하고 책임자들의 망언으로 도배되고 있다. 기본은커녕 헛발질이라도 안 하길 바라니, ‘도시계획에서 공공이 취약계층을 고려했다면?’, ‘경찰과 행정력이 국민의 안전을 위해 투여되었다면?’, ‘정부의 대출 및 보증 정책이 서민들의 자산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이어졌다면?’ 등의 성찰적인 질문은 떠올리기조차 어렵다.
공통선이 사라진 세상에서는 또 다른 장면이 펼쳐진다. ‘서울~양평 고속도로’ 이슈가 화두가 되자, 1주일을 채 넘기지 않고 국토교통부 도로국 도로정책과에는 대응 TF가 구성되었다. 국토부 관계자에 따르면, 적게는 20명에서 최대 50여명의 국토부 공무원이 이슈에 대응하고 있다고 한다. 장관의 한 마디에 갈대가 바람에 눕듯이 정부의 행정력이 집단적으로 움직였다. 이슈의 옳고 그름을 떠나, 전세사기·깡통전세라는 사회적 재난이 국민 다수에게 수년간 몰아치고, 피해자 5명이 세상을 떠나서야, 겨우 피해지원단이 구성되는 상황과는 참 대조적이다. 권력자의 정쟁 한 마디에 움직이는 행정력이든, 전세사기 문제를 해결하라는 한 마디를 아낀 장관이든, 어느 쪽도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1년의 사이클이 다시 돌아왔다. 예상하기 어려운 재난 대응은커녕, 똑같은 비극마저 반복될 것만 같다. 반지하주택을 매입하겠다는 대통령과 서울시장의 선언이 무색하게, 34%나 감축된 정부의 매입임대주택 예산은 여전히 그대로이며, 서울시의 매입임대주택 공급실적은 목표 대비 10%대를 웃돌고 있다. 침수 방지시설을 임시로 설치하는 대책조차 당초 계획의 20% 수준에 그치고 있으니, 더는 폭우가 내리지 않기를 기도하는 방법밖에 남지 않았다.
머지않아 국가가 관리하는 모든 인도, 차도를 지날 때 생존 방법을 국민 스스로 찾아야 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국가가 국민을 지켜야 한다는 기초적인 상식조차 부재한 사회이니 충분히 상상해볼 법하다. 이태원 참사에 대한 원인 규명이든, 부동산 경기 변동에 따른 깡통전세 재발방지든, 사회적 재난이 휩쓸어도 무엇 하나 제대로 해결되지 않은 현실이 이미 눈앞에 있다. 이제는 많은 것을 바라지도 않는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기본만이라도 해내는 정치면 된다. 오뎅이나 수조물 먹방 같은 사진 한 장을 생각할 시간에, 반지하 참사 1주기에 국화꽃 한송이라도 놓고 가는 상식이면 충분하다.
이한솔 한국사회주택협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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