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터치] 후회도 사랑이었음을

장미영 소설가 2023. 7. 31.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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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영 소설가

유난히 여름을 탄다. 올해는 아프지 않고 그냥 넘어가겠지 했다. 이 여름이 시간에 묻어가기를 기대했다. 기대는 빗나갔다. 어김없이 몸살이 찾아왔다. 별 탈 없이 여름을 보내기란 왜 이리 어려운 건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남들 여름 같기만을 바랐다. 여름이 나에게만 유별나게 구는 것 같았다.

물론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보낸 탓도 있었다. 어린이집의 행사 중 하나인 체험학습이 여느 해보다 많았고 피곤함도 평소의 곱절이었다. 또 여름소설학교의 일환으로 따라나선 베트남 여행의 빡빡한 일정을 쫓아다니느라 몸을 많이 움직였다. 다낭의 7월은 건기인 데다 평균 35도를 육박하는 더운 날씨라 쉬이 지쳤다. 한국으로 돌아와서는 여독이 채 풀리기도 전에 첫 소설집 작업에 들어가야 했다. 써 놓은 글들을 다시 퇴고해야 했고 교정을 봐야 했다. 책을 준비하기까지의 과정들이 생소하다 보니 어렵고 힘든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새로운 작품에 대한 강박 또한 만만치 않았다. 휴식을 취할 시간조차 부족했다. 결국 앓아눕고 말았다.

아프다는 소식에, 큰언니와 작은언니로부터 전화가 빗발쳤다. 어디가, 어떻게 아프냐? 밥은 잘 챙겨 먹었느냐? 링거는 맞았나? 밥은 있고? 반찬 몇 가지 만들어 가져갈까? 입맛 없으면 죽이나, 빵 사다 줄까? 염려의 말들이 쏟아졌다. “별 거 아이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고 우스갯소리를 해도 안심이 안 되는 모양이었다. 그들의 근심을 날려버릴 걱정인형이라도 필요한 듯 보였다.

얼마 전 달이(강아지)가 밥을 잘 먹지 않았다. 켁켁 거리며 토하기만 하고 쭉 늘어져 잠만 잤다. 눈을 까집어 보고, 귓속을 들여다보고, 코가 말랐는지, 축축한지, 만져도 보았다. 별 반응이 없다. 나처럼 여름을 타는 건가 했다. 이틀 내내 같은 증상을 보이자 덜컥 겁이 나기 시작했다. 어디가, 어떻게 아픈 거야? 병원에 가 볼까? 말 못 하는 동물 앞에서 마치 사람한테 하듯 무슨 말이든 해보라고 다그쳤다. 답답한 건 그렇다 치고 애달아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나 역시 걱정인형이 필요했다.

걱정은 걱정대로 쌓이고, 마음은 마음대로 쓰이고. 지나고 나서보니 큰언니나, 작은언니나 내 맘 같았구나 싶었다. 그러면서도 문득, 병원에서 아버지를 간병하던 기억이 떠올랐다. 좋아지기만 하면 짜증 부리지 않고 간병을 하겠다고, 결심했건만. 이불을 덮어 달라, 치워 달라, 침대를 내려 달라, 올려 달라, 베개를 하나, 아니 두 개를, 머리맡에, 다리 맡에, 옆구리 맡에 놔 달라 등, 아버지의 요청은 하루에도 쉴 새 없이 바뀌곤 했다. 낮밤을 가리지 않은 요청에 잠을 자지 못했던 터라 짜증이 고스란히 아버지에게로 돌아갔다. 육체의 피곤함이 정신마저 지배했다. 인내심이 바닥났고 정성을 다해 간병을 하겠다는 결심도 무너져 내렸다. 긴병에 효자 없다 했지만 나는 다를 줄 알았다. 다를 거라고 생각했다. 나의 진심이 아버지에게 닿을 거라 여겼다. 오만과 오산이었다.

아버지의 처지가 안쓰러웠던 건지, 내 신세가 안쓰러웠던 건지 병원 간이침대에 쪼그린 채 앉아 있는데 눈물이 났다. 왜 그때 아픈 아버지에게 짜증을 부려 댔을까, 조금만 더 아버지를 잘 살피고 돌봤더라면 그렇게 빨리 아버지를 떠나보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아프니까, 돌봄을 받는 건 당연했다. 아프니까, 그럴 수도 있다고 이해했으면 될 일이었다. 또박또박 따질 일도 대거리를 할 일도 아니었다. 달이를 대하듯 그 반만큼만이라도 아버지에게 살갑게 굴었다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걱정과 염려, 돌봄을 한 몸에 받고 있다 보니 알겠다. 때늦은 후회가 밀려왔다. 때늦은 죄책감이 밀려왔다.

이런저런 생각이 이 여름의 자리를 채운다. 그중에서 숨어있는 ‘후회’라는 감정이 불쑥불쑥 자리를 박차고 튀어나온다. 그럼에도(염치불구하고) 말하고 싶다. 후회일지언정, 그것, 역시 사랑이었다고…. 소파와 혼연일체가 된 이후, 다시 예전의 상태로 건강을 회복했다. 큰언니와 작은언니 덕분이다. 남은 여름도 무탈하게 잘 보내고 있다.‘서부전선 이상 없다’. 나의 건강전선도 이상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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