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정수의 그림산책] 황창배의 ‘곡고댁(哭高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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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창배(黃昌培, 1947-2001)는 뛰어난 창의력을 가진 동양화가이다.
그는 동양화라는 고정관념이 자신의 미술세계를 한 곳에 가둬둔다고 생각하여, 모든 제약을 거두고 무한한 확장을 시작한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한국화도 서양화도 아닌 '황창배화'라 부를 만하다.
이 닭이 높이 소리치고 싶은 내용은 무엇일까? 작가는 그 내용을 동양화의 화제처럼 작품의 윗부분에 새기듯 한글로 적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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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창배(黃昌培, 1947-2001)는 뛰어난 창의력을 가진 동양화가이다.
그는 동양화라는 고정관념이 자신의 미술세계를 한 곳에 가둬둔다고 생각하여, 모든 제약을 거두고 무한한 확장을 시작한다. ‘종이’와 ‘먹’이라는 매체의 제약을 버리고, 캔버스에 아크릴이나 유화 물감 등 서양 매체를 쓰며, 서구의 표현주의, 입체주의 등 다양한 사조를 끌어들였다. 그림의 설명 기능을 하던 화제에 한글과 한자를 섞어 그림의 일부로 불러들이기도 했다. 서예와 전각도 그의 작품 중 일부가 되었고, 급기야는 작품 뒷면에 기록하는 내용까지도 화면 위로 옮겨서 쓰기도 한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한국화도 서양화도 아닌 ‘황창배화’라 부를 만하다.
황창배의 작품 중 ‘곡고댁(哭高宅)’은 특히 이색적이다. 화면 구성 능력이 좋고, 동서양 매체의 자유로운 활용에다, 더불어 각박하게 살아가는 인간 세계에 대한 경계의 내용까지 담았다. 황창배는 닭이 울부짖는 소리는 무의미한 의성어 ‘꼬꼬댁’이 아니라, ‘곡고댁(哭高宅)’이라는 내용을 담은 것이라고 항변한다. 어떤 비평가는 ‘고댁(高宅)’을 ‘부잣집’으로 이해하여 “강남 부잣집 여성의 삶을 비판하고 있는 작품”이라 설명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설명은 옳지 않다. 이 작품에서 ‘댁(宅)’은 집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새댁’, ‘전주댁’이라는 부를 때와 같이 사람을 의미하는 접미사이다. 곧, ‘높이 소리치는 사람’이라는 뜻의 ‘곡고댁(哭高宅)’이다.
이 닭이 높이 소리치고 싶은 내용은 무엇일까? 작가는 그 내용을 동양화의 화제처럼 작품의 윗부분에 새기듯 한글로 적어 놓았다. 그 내용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우리는 인위적인 꾀를 쓸 이유가 없잖아. 또 지혜도 필요 없어. 예의도 필요 없고 말씀이지. 물건을 사고팔 때 생길 수 있는 이익과 손해, 그로 인해 욕심, 오해 같은 게 일어날 리가 없지. 그런데 인간들은 이 세상을 더욱 어렵고 힘들게 어지럽히고 있어.”
이익과 욕심에 매여 인간 세상을 어지럽게 하는 인간 세태의 모습을 풍자하고 있다. 작가 황창배는 닭의 시선이 되어 인간 세상을 바라본다. 그저 하염없이 매일 ‘꼬꼬댁’이라는 ‘단말마(斷末摩)’만을 외치며 살아가는 것 같은 닭이지만, 사실 그들에게도 나름대로 가치 있는 삶이 있다. 결코 인간의 삶이 미물처럼 보이는 닭의 세계보다 나은 것이 없다는 뜻이다. 순수한 닭의 세계에는 인간의 인위적인 꾀도 없다. 지혜나 예의로 치장하여 결국 욕심에 의한 이해관계로 세상을 어지럽히는 일도 없다. 황창배는 사사로운 욕심에 망가져가는 인간 세상에서 순수성이 상실되어 가는 것을 경계하고자 이 그림을 그린 것이다.
“인간들이여! 정신을 차릴 때가 되었소! 꼬꼬댁! 꼬꼬댁! 哭高宅! 哭高宅! 哭高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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