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의 소리] 하루 15분

박정오 출판편집자 2023. 7. 31.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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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오 출판편집자

지난해 허준이 교수는 세계수학자대회에서 수학자 최고의 영예이자 ‘수학계 노벨상’이라 불리는 필즈상을 받았다. 동아일보는 수상 1주년을 맞아 지난 6월 허준이 교수를 단독 인터뷰했는데, 기사에는 매우 흥미로운 내용이 담겨 있다. 허준이 교수는 자신을 자극적인 것에 약한 사람이라 소개한다. 또한 그는 자신이 최대한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15분이라며, 깊은 생각이 필요할 때 모래시계를 사용한다고 이야기한다. 세계적인 상을 받은 허준이 교수가 스스로 집중력이 부족하다고 고백한 것도 놀라웠지만, 휴대폰 타이머, 알람을 활용하면 언제 어디서든 편하게 시간을 잴 수 있는 시대에 모래시계를 활용하는 모습은 흥미롭게 다가왔다.

허준이 교수의 인터뷰를 인상적으로 읽은 후 곧장 15분을 잴 수 있는 모래시계를 주문했다. 대단한 발견을 하기 위함은 아니었고, 그저 최근 많이 떨어진 듯한 집중력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형광색 모래가 들어 있는 손바닥만 한 크기의 모래시계를 보니, 마지막으로 모래시계를 사용한 게 언제였을까 아련한 기억이 떠올랐다. 모래시계를 뒤집자 모래는 기다렸다는 듯 아래로 떨어졌다. 시간이 흐르는 모습은 그렇게 물성의 형태로 다가왔다. 늘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하며 느꼈던 것과는 사뭇 다른 감각이었다.

모래시계를 활용해 자그마한 시도를 해봤다. 처음에는 밀린 설거지나 빨래를 했고, 이후에는 간단한 스트레칭 혹은 운동을 하기도 했다. 그중 가장 큰 도움을 받은 건 독서였다. 재미있는 영상 콘텐츠가 쏟아지는 시대에 마음을 다잡고 책을 읽는 일이 더욱 어렵게 다가오는 요즘, 책을 읽는 것보다 어려운 건 책을 펼치는 일이었다. 그런 점에서 모래시계는 꽤나 유용했다. 거창한 결심을 하지 않아도, 모래시계를 한 번 뒤집기만 하면 동기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그렇게 모래시계의 도움을 받으며 일상에서 책 읽는 시간을 조금씩 확보하다 보니, 문득 허준이 교수가 어떤 마음으로 모래시계를 사용했을지 조금은 공감이 되었다. 실제로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15분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그보다 어려운 건 무언가 하기로 다짐하는 일이 아니었을까. 천성적으로 부지런하고 의지가 강한 사람이 아니라면, 미뤄둔 일은 계속 미루고 싶고, 노력과 에너지가 필요한 일을 하기보다 편하게 쉬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당연했다. 즉 게으르고 나태한 마음을 비난하기보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을 어떻게 하면 조금이나마 극복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게 더 생산적일 것이다.

전화와 문자, 카톡으로 쉴 새 없이 울리는 휴대폰을 잠시 내려놓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거기다 SNS와 유튜브에서 실시간으로 업로드되는 자극적이고 재미있는 콘텐츠의 유혹을 떨쳐내며 새로운 무언가를 한다는 건, 요즘 같은 세상에서는 엄청난 노력과 의지가 필요한 일이다. 이때 모래시계는 우리에게 자그마한 계기를 제공한다. 일정이 정해지면 거기에 맞춰 움직이는 것과 같이, 모래가 떨어지며 시간이 흐르는 모습은 우리의 나약한 의지를 조금이나마 일깨운다.

하루에 15분씩 한 달이면 무려 7시간 30분이라는 시간이 확보된다. 대단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시간은 아닐지라도, 삶의 자그마한 변화를 만들어 내기에는 충분한 시간이다. 모래시계를 놓고 하루 15분씩 무언가를 꾸준히 한다는 건, 삶의 극적인 변화만을 바라며 허황된 꿈을 좇기보다, 두 발을 딛고 있는 현실을 탄탄하게 다지며 이상을 바라볼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갑자기 새로운 사람이 되는 건 어렵겠지만, 하루 15분씩 무언가에 도전하는 건 그리 불가능한 일만은 아닐 것이다.


허준이 교수가 15분씩 집중해서 인류의 난제를 해결했다면, 우리는 그만큼 거창한 일은 아닐지라도 모래시계를 활용해 하루 15분씩 무언가에 도전해 보면 어떨까. 책을 읽든, 운동을 하든, 그림을 그리든, 언어를 배우든, 악기를 연주하든, 무엇이든 좋다. 15분이라는 시간이 당장은 하찮아 보일지 몰라도, 축적된 시간의 힘은 언제나 강력하다. 그 자그마한 시간이 차곡차곡 쌓여 우리의 삶을 풍성하게 만들어 줄 것이며, 더 나아가 우리의 삶을 다음 단계로 이끌어 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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