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세상] 괴담이라는 괴담과 과학 보도

기자 2023. 7. 31.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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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앞두고 한국 정부가 나서서 “과학적 사실”을 강변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도 “현명한 국민은 괴담에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대학진학률이 약 80%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위인, 지성적 한국인들의 불안은 가시지 않는다.

강형철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

‘괴담타파’론이 먹히지 않는 이유는 그것에서 과학이 아닌 정파성이 보이기 때문이다. 오염수 방류를 반대하던 여당이 정부의 대일 데탕트 외교 후 갑자기 바뀐 태도가 그러하다. 횟집 수족관 물을 마시는 등 당사국도 안 하는 일을 앞서서 하는 선전적 행위도 미심쩍다. 한국 언론들은 원전 운영에서 불가피하게 나온 것이 아닌, 사고 폐기물 방출은 용인할 수 없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런데 일부 언론이 “우리도 원전 운영 폐기물을 흘리고 있는데 일본 오염수만 문제 삼느냐?”는 식으로 돌변한 것이 의아하다. 지상에 저장해 삼중수소의 자연감소를 기다리라던 언론이 말을 바꿔 방류가 몸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다며 훈계하는 것도 미덥지 않다. 우려는 괴담이 아니다.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에서 나폴레옹이 첩자를 만들어 내 처단하듯, 없는 괴담을 있는 것처럼 선전하는 것이 바로 괴담이다. 반대 논의는 위축시키고 지지층만 결집하려는 전략이다.

나는 악영향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과학자들의 예측치를 믿는다. 그러나 인류가 처음으로 원전 사고 오염수를 방류하는 일을 놓고 과학 시뮬레이션을 현실에 적용하는 것은 급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도쿄전력이 스스로 한 시료 검사와 자료를 진실이라고 치는 전제라면 더욱 그렇다. 일반적으로 과학적 탐구는 전제를 용인하지만, 현실 적용은 전제 문제를 해결한 뒤여야 한다. 우리는 불안한 마음으로 백신을 맞으며 코로나19 사태를 이겨냈다. 세렝게티 초원에서 풀을 찾아 이동하는 누 떼처럼 악어가 기다리는 강에 뛰어들었다. 그 과정에서 안타까운 희생을 감수했다. 그러나 이번엔 남의 나라 오염수 투기를 감내해야 할 절박성이 없다.

과학 저널리즘 연구자들은 언론이 과학 자체의 미시적 관점만이 아닌 맥락도 보도해야 한다고 말한다. 과학적 이슈에는 윤리적, 경제적, 정치적, 역사적 맥락이 함께 녹아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과학적 증거는 사안의 일부일 뿐이므로 ‘팩트 체크’에 의존하는 것만으로는 진실성을 판단할 수 없다고 경고한다. 예를 들어, “일본이 자국 영토에 처리장을 만들지 않고 오염수를 바다에 버리는 것이 정당한가?” 등 윤리적, 정치적 맥락에 대한 고려 없는 과학적 사실 공방은 진실을 호도할 수 있다.

한국 언론의 ‘정파적 프레임’ 또한 사회적 숙의를 제한한다. 고려대 민영 교수와 장민영 석사가 코로나19가 창궐하던 시기에 백신에 관한 신문 사설을 분석했다. 그 결과, 정치인을 중심으로 한 정파적 프레임이 두드러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후쿠시마 오염수 처리 건도 정치 공방만 중계하는 기사가 넘친다. 캐스 선스타인 하버드대 교수는 논의할수록 의견이 모이지 않고 오히려 더 극단화하는 현상을 ‘집단 양극화의 법칙’이라고 불렀다. 원래 의견보다 극단적으로 변하는 것은 강한 의견을 내는 사람들이 기준점을 제시하고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따라가면서 의견이 더 강해지기 때문이다. 현 이슈에도 언론이 정파적 발언들을 옮기면서 양극화를 부추긴다.

지난해 작고한 과학 저널리즘의 거두 샤론 던우디 교수는 사람들이 복잡한 과학적 이슈에 대한 태도를 정하는 데 자신들이 주로 신뢰하는 언론사에 기댄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불행히도 한국에서는 공영방송을 포함해 시민 대다수가 함께 신뢰하는 언론이 없다. 정파적으로 나뉜 지형에서 지지자들만의 신뢰를 받으며 사회통합이 아닌 적대와 반목을 강화하고 있을 뿐이다. 이것이 괴담 방지책이 아닌 신뢰 언론 조성책이 필요한 이유다.

강형철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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