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로] 172년 전 조선의 술병은 왜 프랑스로 갔나
술 나눠 마시고 佛이 가져가
강국은 사소한 정보도 수집
우리는 당시 만남 기록도 없어
프랑스 파리 국립도자기박물관에서 지난 5월 한·프랑스 우호 행사가 열렸다. 주프랑스 한국대사관 주최로 샴페인과 막걸리를 함께 마시는 모임이었다. 한·프랑스 군사 충돌인 병인양요보다 15년 앞선 1851년 두 나라 사이에 우호적인 첫 만남이 있었고, 그때 프랑스 샴페인과 조선 전통 술을 나눠 마신 일을 기념했다고 한다.
이날 행사가 도자기박물관에서 열린 까닭이 있다. 이곳에 당시 조선에서 가져온 갈색 술병이 소장돼 있다. 사연은 이렇다 한다. 프랑스 포경선 나르발(Narval)호가 난파해 선원 20명이 전남 신안 비금도에 표류했다. 소식을 듣고 중국 상하이 주재 프랑스 영사 샤를 드 몽티니가 이들을 구하러 섬에 도착했다. 선원들은 예상 밖으로 조선의 후한 대우를 받고 잘 지내고 있더란다. 몽티니는 섬을 관할하는 나주목사 김재경(金在敬)을 만나 감사의 뜻으로 프랑스산 샴페인 10여 병을 내고 만찬을 가졌다. 나주목사도 ‘맑고 독한 술’을 냈는데 갈색 술병은 그때 술을 담았던 병이란다.
사건 내막을 좀 더 들여다보면 당시 서구 제국과 곧 식민지로 떨어질 은둔의 나라 간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난다. 나주목사 김재경은 몽티니에게 갈색 술병을 내주고 대신 샴페인 병을 받지 않았을까. 그러나 우리에겐 아무런 물건도 남아있지 않다. 둘이 만났다는 기록조차 없다. 1851년 음력 4월 1일 ‘비변사등록’에 “비금도에 표류해온 이국인(異國人) 20명을 문정(問情·사정을 물음)하고, 이들에게 배 한두 척을 주어 돌아가게 할 것”을 보고한 내용만 있을 뿐이다. 당시 조선 관리는 이들과 그림을 그려가며 대화를 시도했지만 끝내 어느 나라 사람인지도 파악하지 못했다. 당시 조선의 중앙 정치는 안동김씨·풍양조씨가 권력을 둘러싼 정쟁에만 몰두하고 있었다. 몽티니를 만난 김재경은 어찌 되었을까. ‘조선왕조실록’을 검색하니 음력 4월 10일 암행어사 조운경(趙雲卿)이 그에게 죄 줄 것을 요청한 기록이 있다. 죄목은 나오지 않지만 사건 9일 만에 탄핵당한 것으로 보아 몽티니와 술을 마신 일과 관계가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반면 몽티니는 만남의 상세한 기록을 본국에 보고했다. 갈색 술병은 그 증거물로 필요했을 것이다. 172년 지난 지금까지 보관할 정도로 강대국은 사소한 정보도 소홀히하지 않고 집요하게 수집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몽티니는 김대건 신부가 1845년 모사한 ‘조선전도’도 입수해 본국에 보고했다. 그는 왜 그토록 조선에 관심을 기울인 걸까.
당시 상황에 대한 연구로 프랑스 학자 피에르-에마뉘엘 루가 쓴 ‘십자가, 고래, 대포: 19세기 중반 한국과 마주한 프랑스’가 있다. 프랑스어로 쓴 책을 구해 읽지는 못하고 간략한 영어 서평을 찾을 수 있었다. 이에 따르면 몽티니는 ‘한국에 대한 개입주의의 전령’이었고, 난파 선원을 잘못 대우한 한국을 응징해야 한다고 주장한 강경파 외교관이었다. 우호 협력과는 상반된 인물이다. 그를 탓할 일은 아니다. 당시 서구 열강 프랑스는 아시아 지역에서 식민지를 찾았고 조선도 그 대상 중 하나였다. 몽티니의 주장이 실현되지 않은 까닭은 더 좋은 식민지인 베트남 공략이 더 시급했기 때문이다. 프랑스군은 1858년 나폴레옹 3세의 명령에 따라 베트남 다낭을 공격했고, 끝내 식민지로 만들었다.
조선의 술병을 두 나라 우호의 상징으로 삼아선 안 된다는 말이 아니다. 시대가 달라졌다. 교류의 상징이 되기 충분하다. 다만 바깥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고 국내 권력투쟁에만 몰두할 때 위기가 닥친다는 사실, 나라 지키려면 사소한 정보도 소홀히 하면 안 된다는 교훈을 172년 전 갈색 술병을 보고도 잊지는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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