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想과 세상] 친애
따스하고 부드러워 조금만 좋아해도 될까,
방이라고 해도 좋고 빵이라고 해도 좋고
들어와 누워도 좋고 달콤하게 먹어도 좋지만
은밀하고 불안한 건 너를 상하게 한다
지나치게 부드러운 건 너를 상하게 한다
빵만으로 살 수 없고 방만으로도 살 수 없다면
무엇이 얼마나 더 필요하다는 거니
가까스로 사랑이라면 의심하는 편이 좋다
최선은 나중에야 생각하게 될 텐데
빵도 방도 되지 못하는 일들이며
무작정 최선을 다하는 마음 따위를
울지 않고 이해할 수 있을까
등이 시리고 배가 고픈 사람들이
고요히 신에게 기대는 시간,
마른 빵 조각을 따라 달빛 아래 걸어갈 때
한 덩어리의 불 꺼진 방을 지날 때
차갑고 거친 사람 생각에 약간 울 때
김박은경(1965~)
방과 빵의 공통점은 “따스하고 부드”럽다는 것이다. 방은 주(住), 빵은 식(食)을 뜻한다. 방에 비읍(ㅂ)이 보태지면 빵이 되는데, 마치 곁방을 들인 느낌이다. “조금만 좋아해도 될까”, 유혹에 넘어가 다른 방에 드나드는 듯하다. 들키면 끝인 줄 알기에 조심하지만, 세상에 비밀은 없다. 불안은 현실이 된다. 들키고 만다. 은밀하면서 “지나치게 부드러운 건” 몸과 마음을 상하게 한다. 너는 ‘사람이 어찌 빵만으로 사냐’며 적반하장이다. 궁지에 몰리자 본성을 드러낸다.
“가까스로” 유지되는 사랑은 의미가 없다. 믿음이 깨지면 갈라서는 게 맞다. 붙잡아봐야 자신만 더 초라해지고 비참해진다. 어떤 게 최선인지는 나중에 밝혀질 일이다. “빵도 방도 되지 못하는 일들”을 붙잡고 시간을 낭비하기보다는 서로 갈 길을 가는 게 낫다. 안타까운 건 “등이 시리고 배가 고픈” 날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 같이 산 세월이 있는데 어찌 쉽게 잊히겠는가. “고요히 신에게 기대는 시간”과 “차갑고 거친 사람 생각에 약간 울 때”도 있으리라.
김정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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