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 학생인권 탓하다 개혁의 적기 놓친다
초등교사가 교내에서 목숨을 끊은 일이 발생하고 보름이 지났지만, 이 비극을 둘러싼 셈법이 제각각이다. 국회는 법률정합성에 위배되는 법안을 쏟아내고 있고, 교원을 대표한다는 단체들은 정치적 영향력을 키우는 기회로 삼는다. 교육감은 민원인의 학교 출입을 제한하고 위반 시 형사 고발하겠다는 조례를 입법예고했다. 대통령실 누군가가 학생인권조례를 ‘과거 종북주사파가 추진했던 대한민국 붕괴 시나리오의 일환’이라 했다는 뉴스가 보도되고, 며칠 후 대통령은 교권을 침해하는 불합리한 자치조례를 개정하라 했다.
교권을 강화하기 위해 학생인권조례를 약화시켜야 한다는 납작한 논리는 오히려 제대로 된 교육개혁에 걸림돌이 된다. 교권과 학생인권은 ‘함께 존중’을 전제로 하기에 서로 반대말이 아니고, 학생인권조례는 규범이라기보다는 선언에 가깝다. 학생인권조례와 관계없이 교육을 빙자한 폭언이나 억압이 사회적으로나 법적으로 허용될 수 없음은 이미 상식이 되었다. 정작 악성 민원인은 학생인권조례가 있는 줄도 모른 채 기분이 상했다고 민원을 넣고 있다. 따라서 학생인권조례를 손보면 교권이 저절로 올라갈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은 진단도 처방도 잘못되었다.
실제로 교육 현장은 무엇 때문에 신음하고 있는가. 사건 발생 며칠 후 ‘대한민국 모든 학교가 무너지고 있습니다’라는 제목의 한 초등학교 선생님의 글이 큰 주목을 받았다. 세월호 사건 이후 급조된 생존수영 체험학습의 실무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그 한 조각의 업무 안에 학교 현장이 여실히 녹아 있다. 1박2일의 체험학습을 위해 선생님 홀로 50개도 넘는 공문을 작성해 발송하며, 소방과 식수 점검까지 도맡는 그 버거운 현장 말이다.
최근 몇년 사이에 교직에 대한 직업 만족도가 수직 하향한 원인은 학생들의 인권이 갑자기 기고만장해진 탓이 아니다. 학교에서 생기는 여러 문제를 교사들의 개인역량으로 틀어막으며 무한개인책임으로 돌리는 불합리한 교육행정방식 때문이다.
외부로 손가락을 돌리기 전에, 왜 그 높은 경쟁을 뚫은 신입교원이 너도나도 교직을 떠나는지 내부를 점검해야 마땅하다. 어디에서 현장 교사들의 목소리가 막혀 있고, 어떤 의사결정구조가 업무폭탄을 야기하는지. 큰 재량과 권한을 가지고 많은 월급을 받는 관리자는 그 과정에서 무슨 역할을 하고 있고, 역할 수행에 실패할 때 과연 어떤 책임을 지는지. 불합리한 업무분장에 허우적대다가 서로를 미워하게 되는 전근대적 조직문화가 있지는 않은지. 이런 것을 찾아 하나씩 고쳐나가야 비로소 바깥의 원인들을 분석하는 의미가 있다.
단적으로, 학교 내 아동학대 신고의무를 강화한다고 만들어진 현행 교육부 지침은 교사에 대한 단순 민원에 불과한 일조차도 교장이 경찰에 해당 교사를 아동학대로 신고하도록 하고 있다. 교사는 영문도 모른 채 자신의 직장상사가 신고한 아동학대 조사에 나가야 하지만, 갈등을 조정할 책임이 있는 관리자는 신고했으니 이미 할 일을 다 했다며 빠져나가는 구조이다. 이런 부조리를 개선하지 못한 채 자꾸 바깥으로 화살을 돌리는 것은 목적이 있는 왜곡으로 비칠 수 있다.
세상 모든 학교에는 규칙을 무시하는 학생과 이기적인 보호자가 존재한다. 그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를 학교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건강한 시스템이 중요한 이유이다. 학교는 수많은 아동이 모여 발달하는 특수한 공동체이기에 경찰이나 법원이 학교로 쉽게 파고드는 방식은 구성원에게 큰 상처를 남기기 쉽다. 생활기록부에 학교폭력 처분을 기재하도록 하면서 이미 소송전이 난무하고 있는데, ‘반항하는 아이’라는 낙인마저 생활기록부에 기재하도록 한다면 학교 안의 문제는 소송 전면전에 직면하게 된다. 판단과 응징이 아닌 교육 현장의 공동체적 선(善)을 위해, 내부부터 바뀌어야 하는 것은 무엇인지 현장 교사들의 목소리를 들을 때다.
김예원 변호사·장애인권법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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