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박중현]일본은행의 조용한 변심… 무제한 돈 풀기 끝났나
▷코로나19 팬데믹 초기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이 푼 돈은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역풍을 불렀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작년 3월부터 11차례에 걸쳐 금리를 5%포인트나 올려야 했다. 한국 등 대부분의 주요국이 금리를 높였지만 반대로 움직인 나라가 둘 있다. 하나는 경기침체가 더 걱정인 중국, 다른 하나는 일본이다.
▷BOJ의 단기금리는 ―0.1%다. BOJ에 돈을 맡긴 은행들은 이자를 받는 게 아니라 원금이 깎인다. 금리가 마이너스이다 보니 경기를 띄우려고 할 때 한국처럼 금리를 낮출 수 없다. 그래서 특이한 방법을 쓰는데, 국채금리 상한을 정하고 시장금리가 그 선을 넘으면 돈을 찍어 채권을 사는 식으로 돈을 푼다. 문제는 너무 많이 사들여서 일본 정부의 국채 절반 이상을 BOJ가 보유하는 기이한 상황이 됐다는 거다.
▷부실한 일본의 재정이 국채금리를 통제하는 또 하나의 이유다. ‘잃어버린 30년’간 일본 정부는 막대한 돈을 풀었다. 1989년 14.4%였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2021년 263%로 올랐다. 국채의 이자를 갚는 데에만 매년 예산의 4분의 1이 나간다. 국채금리가 높아지면 이자 부담이 커지면서 정부가 쓸 돈이 부족해진다.
▷이번 결정에 글로벌 금융시장이 놀란 건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2차대전 후 첫 학자 출신 총재인 우에다는 올해 4월 취임 전 심하게 왜곡된 일본의 통화정책을 고칠 적임자로 꼽혔다. 하지만 이후 3개월간 줄곧 ‘제로 금리’ 유지에 무게를 실어오다가 이번에 방향을 확 틀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3%대로 오른 게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조용하지만, 갑작스러운 우에다 총재의 변심에 일본 국채금리는 9년 만에 최고로 치솟았고, 엔화 가치는 폭등했다.
▷일본의 마이너스 금리는 그간 세계 자본시장에 호재였다. 일본에서 저금리로 돈을 빌려 다른 나라에 투자하는 ‘엔 캐리 트레이드’가 활발했다. 일본 국내 금리가 높아지면 이런 투자는 위축될 수밖에 없다. 싼 엔화 덕에 마음껏 일본을 찾던 한국 여행객의 부담도 커진다. 다만 엔화 약세로 강화된 일본 상품의 가격 경쟁력에 치이던 한국 수출기업에는 도움이 된다. 새로운 길로 접어든 BOJ의 작은 변화까지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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