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층시사국] 영업사원은 수술 중

강예슬 2023. 7. 30. 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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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층시사국 26회 I] 영업사원은 수술 중

[프롤로그 : 수술실의 비밀]

어느 수술실, 환자는 마취상탭니다.

망치질이 시작됩니다.

환자의 무릎과 부딪치며 둔탁한 소리를 만들어 냅니다.

수술이 끝나면 손을 씻고, 옷을 갈아입습니다.

병원 관계자/
"사복 입으시니까 못 알아보겠네요."

알고 보니 의사가 아니었습니다.

병원 관계자/
"안녕히 가세요"

의료기기 영업사원이었습니다.

어제오늘의 문제도, 이 병원만의 문제도 아니었습니다.

강예슬 취재기자/
"하루에 수술 몇 번 정도 하셨어요?"

전직 영업사원/
"많을 때는 4개, 5개 정도…"


■ 한 공익제보자의 고백

지난달, KBS 부산총국을 찾아온 제보자.

한 척추관절병원 관계자라고 자신을 소개했습니다.

공익제보자/
“일반직원들은 잘 모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가족이나 지인들 소개도 많이 하죠. 잘 모르니까….”

수술실 안에서 은밀하게 벌어지는 일들을 꼬박 한 달여 동안 촬영했다고 했습니다.

제보자는 누가 의사인지, 쉽게 구분할 수 있습니다.

공익제보자/
“머리 쪽이 하얀색은 조무사나 영업 사원이고, 파란색으로 표시되어 있는 건 의사거든요.“

인공관절 수술을 집도하는 의료기기 영업사원

하얀색 모자를 쓴 사람, 이 병원에 의료기기를 납품하는 영업사원,
능숙한 솜씨로 수술 부위의 조직을 떼 내더니, 망치질로 환자 무릎에 인공관절을 고정시킵니다.
영업사원/
"수건 하나만 주세요"

영업사원이 시키는 대로 간호사는 수술 도구를 건넵니다.

파란색 모자를 쓴 의사, 맞은 편에서 가만히 무릎만 잡고 있습니다.

십자인대 수술을 집도하는 영업사원


십자인대 수술에서도 수술 도구는 영업사원의 손에 들려 있습니다.

환자 무릎 속으로 들어간 전동 드릴이 돌아갑니다.

그 안에선 뼛가루들이 사방으로 튀고 있습니다.

내시경을 보면서 거침없이 뼈를 깎아냅니다.

그 옆에 서 있는 의사는 환자 무릎을 잡고 있습니다.

정형준/ 원진녹색병원 재활의학과장
"(영업사원이) 이렇게 깎는다는 거는 이거는 말도 안 되는 일이죠.
이건 당연히 수술 과정의 문제가 없고, 이 사람이 아무리 시술을 잘했다고 하더라도, 환자의 실제 임상 증상 하고 연관이 되어서 수술을 한 게 아니기 때문에
의료적인 문제에서 아주 심각한 문제가 있는 거예요."

수술을 마치고 손을 씻는 영업사원.

옷을 갈아입더니, 도망치듯, 병원을 빠져나갑니다.

병원 관계자/
"사복 입으시니까 못 알아보겠어요."

공익제보자는 영업사원이 매일 같이 병원으로 출근해 수술실 근처에 있는 방에서 상주했다고 증언했습니다.
공익제보자/
"워낙 일상화되어 있다 보니까 다들 쉬쉬하는 거죠."

■ 일상화된 '대리수술'
<스튜디오>

남현종 MC/
대리 수술을 듣기는 많이 들어봤는데 이렇게 실제로 영상은 처음 봤습니다.
이해가 되지 않는 게, 어떻게 이 의료기기를 판매하는 영업사원이 수술을 할 수 있는 건지 도통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고, 도대체 어떤 의료기기를 판매하길래 이럴 수가 있는 거죠?

강예슬 취재기자/
영상에 나오는 망치나 드릴을 판매 하는 건 아니고요. 더 비싼 고가의 의료기기를 판매합니다. 하지만 이런 비싼 의료기기를 판매하더라도 포장을 뜯어주거나 사용 방법을 설명만 해야지, 이렇게 직접 수술을 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상황입니다.

남현종/
사실 이런 십자인대나 인공관절 수술이 그렇게 막 드문 수술은 아니잖아요.
대체 이런 대리 수술이 지금 얼마나 많이 퍼져 있는 거죠?

강예슬/
제보자 말을 들어보면 예전에 자신이 일했던 병원에서는 이렇게 많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다른 병원은 어떠냐, 이렇게 물었더니 또 있다, 이렇게 얘기를 하더라고요.
정리하자면 일상적으로 모든 병원에서 일어나는 건 아니지만, 또 적지도 않은 수준이다, 이렇게 볼 수 있겠습니다.

이번에 저희 KBS가 대리 수술 영상 30건을 입수해서 살펴봤습니다.
이 중에서는 영업사원이 수술 도구를 잡는 경우도 있었지만,
간호조무사가 수술 도구를 잡는 장면도 포착됐습니다.

■ 간호조무사도 '대리수술' 동원

이번에는 어깨 관절 수술 장면입니다.

해당 의사들이 경험이 많다는, 이른바 ‘전공 수술’입니다.

수술실을 둘러보니, 영업사원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의사는 수술 중에 갑자기 수술복을 벗더니, 수술실을 나가버립니다.

수술 중 옷을 벗고 나가는 의사


그래도 환자 어깨에는 봉합수술이 계속됩니다. 봉합하는 사람, 간호조무삽니다.

의사가 나간 후, 수술 부위를 봉합하는 간호조무사
공익제보자/
“수술하다가 의사가 다른 진료를 보거나 다른 수술 하러 나가버리거든요. 그러면 간호조무사가 다 봉합을 하는 거예요.

혹시라도 이런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지 않도록, 내부감시가 철저했다고 합니다.
공익제보자
“공항검색대에서 검색하듯이 그거 있죠. 검색대에서 쓰는 거, 그것도 구매해서 수술방안에 비치되어 있어요."

강예슬 기자/
"촬영 같은 걸 방지하기 위해서?"

해당 영상에 나오는 의사들을 찾아가 봤습니다.
대리수술 의혹 의사/
"정말로 저희도 대리수술한 병원에 대해서 비난을 하거든요? 그건 잘못된 거기 때문에 당연히 하면 안 되는 거거든요? 근데 지금 이 부분이 저희가 진정으로 그게 의심을 할 만한 상황인지 저희는 그거에 대해서는 좀 동의하기는 어렵고…"

취재진은 영상을 보여줬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그럴 리가 없다며 부인합니다.

대리수술 의혹 의사/
"제가 10년 전부터 어깨 수술할 때는 아예 기구상 이 이런 정보들이 나가지 않게 하기 위해서 아예 들어오지도 못하게 하고…"

전체 영상을 보고, 의사 얼굴과 영업사원 얼굴까지 확인했다고 하자, 말이 달라졌습니다.
대리수술 의혹 의사/
"보통 인공관절도 어시스트 아까 얘기했다시피 업체가 들어오는 경우는 많지는 않고 새로운, 기구나 그런 거 있을 때 들어오긴 하거든요? 그런 상황이고."

망치질하고, 드릴로 뚫는 것보다 무릎을 잡고 있는 게 더 중요한 일이라고 주장합니다.
대리수술 의혹 의사/
"가이드를 따라서 드릴이 들어갈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러니까 가이드를 잘못 잡으면 그 드릴은 그쪽으로 갈 수밖에 없어요. 이거를 누구한테 맡길 수가 없는 거예요. 드릴은 그냥 드릴만 하면 되는데…"

■ 대리수술이 아닌 '수술보조행위' ?

인터뷰 이후, 의사들은 법률대리인을 통해 추가적인 입장을 보내왔습니다.

영업사원이 한 행위는 집도’가 아니라 ‘수술 보조 행위’에 불과해 의료법 위반이 아니라는 주장입니다.

의사가 KBS 취재진에 보낸 입장문


정말 ‘수술 보조행위’가 맞는지, 다른 의사들을 찾아가 물어봤습니다.

정형준 / 원진녹색병원 재활의학과장
"이건 동영상이 너무 분명해서 지금 뭐, 벌써 깎고 있는데 뭐, 이게 어떻게 보조행위라니요. 보조행위도 의료인이 아니고 보조행위를 하는 것은 상당히 위험해요.
만약에 이 사람이 최소한도 보조행위라고 하더라도 뭐, 간호사나 이런 자격증이라도 있어야 되는 거고요, 최소한."

의료 전문 변호사도 비슷한 의견이었습니다.
신현호 / 변호사 (의료소송 전문)
진료 보조행위라는 거는 수술칼을 집어준다거나 뭐, 이렇게 하는 건데, 원래는 트래킹이라 저 이거 벌려 주고 견인해 주는 거나 거기에 그 혈관을 잡아 주거나 피를 닦아 주거나 이런 것들도 다른 의사들이 해야 되거든요.”

특히 간호조무사에게 수술을 맡긴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오선영 / 보건의료노조 정책국장 (마취과 간호사)
"환자 옆에는 다 의사들이 있어야 되는 거고요. 그게 전문의든 전공의든 인턴이든 이렇게 되는 거고.
간호사들은 거기에 의사들이 사용할 기구를 설치하기 위한 대가 있어요.
거기에 기구들을 다 모아놓고 기구를 건네주는 그리고 건네받는 역할들 그 수술에 대한 완전히 보조적인 역할들을 하는 거고 간호조무사들은 저 수술방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 대리수술 반복되는 이유는?
<스튜디오>

남현종/
아니, 대리 수술하고 있는 걸 영상을 찍어서 직접 보여줬는데도 인정하지 않는
게 참 뻔뻔해서 어이가 없습니다. 아니, 그런데 왜 이렇게 영상을 직접 찍어서 보여줬는데도 부인하고 있는 거고, 그러면서도 이 대리 수술이 근절되지 않고 있는 이유는 뭘까요?

강예슬/
제보자도 그렇고 전문가들도 그렇고, 공통적으로 ‘돈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제보자 이야기 먼저 한 들어보시죠.

공익제보자/
"한정된 시간 안에 많은 수술을 하려다 보니 그런 것 같습니다.
(하루에 수술을 몇 건 정도나 하나요?) 많을 때는 5~6건, 수술을 시간 내에 끝내야 되다 보니까, 관절 수술 같은 경우는 1시간 반 정도… 그 시간 동안 의사가 다 참여하면 그 옆 방은 곤란하니까 도움을 받는 거죠."

남현종/
수술 도중에 의사가 가운을 벗고 간호조무사나 영업사원에게 수술을 맡기는 게 지금 다 돈 때문이라는 거죠. 참 돈이 세상에서 제일 무섭다고 하는게 씁쓸하네요.

강예슬 기자/
일반적으로 정형외과 전문의 인건비는 대략 한 달에 1,500만 원에서 2,000만 원 정도입니다.

영업사원이나 간호조무사가 의사 역할을 대신할 경우 그만큼 이 지출이 줄어드는 겁니다. 영업사원이 수술을 하는 동안 의사가 진료를 보거나 또 다른 수술을 집도하면서 더 큰 이익을 보고 있는 겁니다.

정형준 / 원진녹색병원 재활의학과장
"(대리수술이) 병원에 엄청난 초과 이익을 남겼을 거예요. 왜냐하면 그 수술을 하기 위해서 정형외과 의사를 더 고용했어야 되는 거죠, 신경외과 의사나. 그만큼 의사를 덜 고용하니까 임금을 그만큼 덜 쓰게 되는 거잖아요."

남현종/
사실 가장 걱정되는 건 환자들의 건강, 생명이잖아요. 저렇게 대리 수술을 하다가 환자가 잘못될 수도 있는 거 아닙니까?

강예슬 기자/
실제로 이런 사례들이 많습니다.

2018년에는 영도에서, 부산 영도에서 대리 수술을 받은 환자가 사망하는 일이 발생했고요. 2021년 인천 21세기병원에서도 척추 수술을 병원 행정과장이 대신 하다가 환자가 다치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대리 수술, 얼마나 뿌리 깊은지 저희가 직접 대리 수술을 했다는 의료기기 영업 사원을 한번 만나봤습니다.

■ 전직 영업사원, "대리수술은 업계 관행"

한 의료기기 업체의 영업사원으로 10년 가까이 근무했다던 영업사원 두 명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처음엔 의료기기만 잘 팔면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뜻밖에도 출근 첫날부터 수술실에 들어가 수술 장면을 봐야 했습니다.

전직 의료기기 영업사원/
"지켜보면서 눈으로 그 순서를 배우는 거예요. 그리고 기본적인 이거를 여기 이렇게 손대면 안 된다, 된다. 이런 거를 교육을 많이 받고요."

입사한지 한 달 만에 대리수술에 투입됐다고 했습니다.
의학 지식이라곤, 어깨너머로 보고 배운 수술 장면이 전부였습니다.
강예슬 기자 /
"하루에 수술을 몇 번 정도 하셨어요?"

전직 영업사원/
"많을 때는 4개, 5개 정도."

강예슬 기자/
"거의 매일 해야 되는 건가요?"

전직 영업사원/
매일 상주했습니다. 병원, 사무실도 안 가고
병원으로 아침 출근하고 퇴근을 병원에서 했어요.

의료장비 영업을 위해 필수적인 업무라고 했습니다.
전직 영업사원/
" 저희한테 항상 교육하고 수술은 서비스다. 하면서 그냥 가서 물건 팔아주고 가는 거예요."

언론에 해당 병원의 ‘대리 수술 의혹’이 보도되고, 경찰이 수사에 나서자, 회사는 거짓 진술을 하라고 요구했다고 합니다.
전직 의료기기 영업사원/
"수술실에 들어가지 않고 그냥 관리만 했다. 그리고 기구 조립만 봐줬다. 이런 식으로 얘기하라고."

차마 거짓을 말할 수가 없었다는 두 사람.

진실을 말한 대가로 업계를 떠나야 했습니다.

지금도 병원과 업체 측의 협박에 시달리고 있다고 합니다.

전직 의료기기 영업사원/
"저는 이쪽 업계에 취직을 못 하죠. 왜냐하면, 어딘가 이력서를 내려고 하면 고발한 놈이다. 이런 소문도 당연히 있고. 그리고 (병원 측에서) 고소까지 준비한다니까."

■ 대리수술 근절 방법은?
<스튜디오>

남현종/
이미 업계 관행처럼 자리를 잡은 듯한 대리 수술인데,
이 대리 수술을 근절할 방법은 없을까요?

강예슬/
반복되는 대리 수술을 막기 위해 9월부터 수술실 안에 CCTV를 설치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 CCTV 설치만으로는 대리 수술을 완전히 끊어내기는 어렵다, 이렇게 보고 있는데요. 설치하더라도 찍지 않을 이유를 만들어서 피해 가거나 또 공개를 거부할 수도 있다는 겁니다.

남현종/
아무래도 추가적인 대책이 더 필요해 보입니다.

강예슬/
네, 그렇습니다. 전문가들은 처벌 강화가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지금은 대리 수술 자체가 내부 고발이 아니면 적발되기도 힘들뿐더러 이렇게 적발이 되더라도 처벌이 매우 미미하다는 건데요.

지난해 무면허 의료행위 관련 행정처분 현황을 살펴봤습니다.

전체 71건 중 22건이 의사면허 자격정지 1달 이하, 기소유예고요. 면허나 자격이 취소한 된 건 단 6건에 불과했습니다. 대리 수술이 돈은 되는데 처벌은 미미하니까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는 겁니다.

남현종/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대리수술에 연루된 의사에 대해서 형사처벌을 강화하는 법안, 여전히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고요?

강예슬/
지난달 최혜영 의원실에서 법안심사소위원회 회부를 요청했으나 여야간사 회의에서 배제됐다고 합니다.

저희가 왜 그런가 취재해봤더니 최근 의사 면허 취소 요건 강화 등 의료법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의사들의 반발이 심한 데다가 간호법 개정안 등 다른 의료법 사안보다 시급하지 않다고 판단돼 보류된 상황이라고 합니다.

■ 압수수색에도 보란듯 영업

KBS 뉴스 보도 이후 경찰은 압수수색을 통해 수술 일지와 수술실 주변 CCTV 등을 확보했습니다.

KBS가 제공한 영상을 바탕으로 수술을 집도한 인물들의 신원을 특정하는 등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경찰의 압수수색이 들어왔는데, 병원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여전히 영업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환자/
"대리수술 이 병원 인건가요?"

병원 관계자/
" 그런 말이 있더라고요. 근데 아니거든요."

공익제보자는 병원 내 분위기를 전해왔습니다.

아직도 영업사원들은 술실을 출입하고 있다.
의사들은 여론이 잠잠해질 몇 달 뒤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정형준/원진녹색병원 재활의학과장

"이런 일이 발생했을 때는 다시는 이제 이 일을 할 수가 없고,
그리고 그런 거를 운영했던 사람들, 그리고 거기서 일했던 사람들도
다 문제가 된다는 걸 보여 줘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는 국민들이 의사를 믿지 못하게 되고,
그럼 당연히 진짜 아픈 사람들이 제때 수술 못 받게 된다. 라는 거죠"

취재기자: 강예슬
촬영기자: 장준영, 김기태
영상편집: 이상미
자료조사: 강예진, 신용하
조연출: 정현주, 유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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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예슬 기자 (yes365@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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