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인 뺨치는 이차전지…주가 하루 수십조씩 ‘왔다갔다’ [이슈+]

조성민 2023. 7. 30. 2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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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프로·포스코그룹 주가 요동…1시간에 60조원 날아가기도
개미들, ‘시세조종’ 주장하며 금감원 집단 민원…주가 예측 불가
“FOMO 수급 vs 공매도 간 세력 다툼…차분히 쉬어갈 타이밍”
증권사들 분석 멈춘 상황…“적정한 가치 평가하기 어려워졌다”

연초 이후 국내 증시를 주도했던 이차전지 종목들이 최근 극심한 변동성을 보이면서 수십조원 규모의 시가총액이 증발했다가 불어나는 등 혼란스러운 양상을 이어가고 있다. 충격에 빠진 투자자들이 이차전치주에 대한 ‘주가 조작’을 의심하며 금융감독원에 민원을 제기하는 등 증권가가 소란스러운 가운데 이들 종목의 주가 향방은 당분간 안갯속을 떠돌 것으로 보인다.

최근 일주일간 에코프로그룹과 포스코그룹은 주가가 요동치며 시가총액 수십조원이 ‘왔다갔다’하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변동성이 극심했던 지난 26일엔 주가가 신고점을 달성했다가 일제히 곤두박질치며 시가총액 60조원 규모가 약 1시간 만에 날아가기도 했다. 이처럼 주가가 롤러코스터를 타자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주식시장인지 코인시장인지 모르겠다’는 반응이 나온다.
국내 2차전지 대표 종목인 에코프로를 비롯한 관련주들이 일제히 급등과 급락을 반복하면서 증시에 혼돈을 가져오고 있다. 뉴스1
◆롤러코스터 같은 이차전지 주가

30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24일 약 72조원 수준(종가 기준)이던 에코프로그룹의 시가총액은 25일엔 9조원이 불어나며 81조원을 기록했으나 26과 27일, 이틀 연속 주가가 급락하며 64조원으로 쪼그라들었다. 28일엔 에코프로가 ‘황제주’ 자리를 되찾는 등 반등에 성공한 영향으로 70조원 수준을 회복했다. 지난 21일 처음으로 그룹 시총 100조원을 넘어선 포스코그룹은 24일 115조원, 25일 122조원으로 늘어났다가 이틀 뒤인 27일엔 105조원으로 감소했다. 역시 28일엔 반등에 성공해 112조원으로 불어났다. 두 그룹의 시총 합산액은 25일부터 27일까지 이틀간 34조원이 증발했다가 28일 하루 만에 13조원을 되찾은 셈이다.

유독 주가가 요동을 쳤던 26일 하루만 놓고 보면 변동성은 더욱 두드러진다. 당시 에코프로·포스코그룹 주가는 낮 12시40분∼오후 1시10분쯤 고점을 찍었는데 당시의 그룹 시총은 포스코그룹의 경우 144조8000억원, 에코프로그룹은 99조7000억원에 달한다. 이때 포스코그룹은 삼성, LG, SK에 이어 그룹사 시총 4위인 현대차 그룹(130조원대)의 시총을 잠시 뛰어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곧바로 이들 기업의 주가는 급전직하하기 시작하며 오후 2시쯤 저점에 도달했다. 이 시각 기준 에코프로그룹주와 포스코그룹주 시가총액은 각각 73조, 110조원으로 감소했다. 두 그룹의 시총 합산액 60조원이 순식간에 날아간 것이다.

에코프로·포스코그룹주에 대한 공매도 역시 쏟아졌다. 이달 26∼27일 POSCO홀딩스의 공매도 거래대금은 5686억원으로 코스피 종목 가운데 가장 많았고 그다음은 3천461억원을 기록한 포스코퓨처엠이었다. 같은 기간 코스닥시장에서는 에코프로비엠이 4955억원으로 1위, 에코프로가 1951억원으로 2위였다. 특히 26일 포스코퓨처엠(2360억원)과 에코프로비엠(4133억원) 각각 역대 최대 공매도 거래대금을 기록하기도 했다.

지난 26일 에코프로 형제와 포스코그룹주 등 이차전지 기업들의 주가들이 장중 일제히 급락하자 이른바 ‘개미’ 투자자들은 공매도 세력의 시세조종이 의심된다며 금융당국에 이를 조사해달라는 집단 민원을 넣고 있다. 개인의 수급이 쏠리며 이차전지 종목들의 주가가 급등하자 증시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밸류에이션(평가가치) 고평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고, 이는 평소 개인투자자들이 기관·외국인 등 공매도 투자자에 대해 갖고 있던 반감과 뒤섞여 ‘개인 대 세력과의 전쟁’으로 번지는 분위기다.

이차전지로만 시장의 수급이 쏠리자 사업목적에 ‘이차전지’만 들어가도 주가가 급등하는 현상도 관찰된다. 대표적인 사례가 코스닥 상장사 자이글이다. 자이글은 본래 가정용 전기 그릴을 만드는 회사였으나 이차전지 사업 관련 공시를 내기 시작하며 지난 3월 한 달간 주가가 8∼9배 폭등했다. 이후 거품이 꺼져가는 듯했으나 미국 이차전지 합작 벤처 지분을 취득했다는 공시에 지난 28일 다시 상한가를 기록했다.

테라사이언스는 지난 4월 이차전지 핵심 원료인 리튬 생산·판매 사업을 사업목적에 추가하기 위한 임시주총 소집 공시 내자마자 곧바로 가격제한폭까지 올랐다. 최근 언론에서 이 회사가 전남 신안 압해도에서 개발 중인 리튬 사업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자 사측은 “악의적인 추측성 보도”라고 반발하며 주주들을 상대로 ‘국민
검증단’을 모집하고 나섰다. 한 업계 관계자는 “요즘 증권가에서 이차전지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일들은 마치 예전 코로나19 유행 당시의 바이오주 투자 광풍이나 신라젠 소액주주 팬덤을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반면 예전의 ‘닷컴버블’이나 바이오주 열풍과 이번은 다르다는 해석도 있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과거 버블(거품)이 끼었던 기업들은 실체가 없고 허상을 좇는 경우가 많았지만, 에코프로 등 현재 화제의 중심에 있는 이차전지 기업들은 수천, 수조원에 달하는 공장 등 유형자산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기초 체력 대비 주가가 쇼트 스퀴즈 등 때문에 많이 올라 비정상적인 건 맞지만 허상을 좇는다고는 할 수 없다”며 “솔직히 전문가들이 개미들의 이차전지 투자를 비하하는 측면이 있다”고 덧붙였다.
지난 2022년 3월 17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2차전지 등 배터리 전문 전시 '인터배터리 2022' SK온 부스에서 현대 제네시스 차량에 들어가는 배터리 셀을 형상화한 전시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차전지 주가 향방은…“예측 불가 상태”

전문가들은 이차전지 종목들의 주가 향방을 가늠하기 어려운 상태라고 입을 모은다. 올해 이차전지 주가를 끌어 올린 건 개인이었다. 1월부터 지난 28일까지 개인이 가장 많이 순매수한 종목은 유가증권시장에서는 포스코홀딩스, 코스닥시장에서는 에코프로로 나타났다.

정용택 IBK투자증권 수석이코노미스트는 “경기도 안 좋고 기초여건(펀더멘탈)도 어려운 시기에 뚜렷한 재료가 형성돼있는 게 이차전지밖에 없어서 거기로 수급이 쏠린 측면이 있다”고 분석했다. 이후 가격이 고평가됐다는 판단 아래 공매도를 한 외국인, 이에 대해 반발하며 더 많은 추격 매수에 나선 개인, 평가손실을 버티지 못하고 공매도를 청산하는 쇼트스퀴즈 움직임, 상승장에서 뒤처지거나 소외된 것 같은 두려움인 ‘포모’(FOMO·Fear Of Missing Out)를 느끼는 투자자 등 많은 변수가 뒤엉켜 있는 상태다. 익명을 요청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특히 최근의 주가 급등은 개인이 아니라 외국인이 만들었다”며 “공매도를 한 외국인이 손실을 확정하며 쇼트 커버링으로 유입될지는 아무도 알 수가 없기 때문에 더더욱 주가 예측이 불가능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전례를 찾기 힘든 사례이다 보니 각종 진기록도 나오고 있다. 메리츠증권이 과거 국내 증시의 수급 현황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전체 거래대금에서 수급 쏠림 현상을 겪는 업종이 차지하는 비중은 30% 전후 수준에서 최고점을 형성한 경우가 많았으나, 이차전지는 40%대를 훌쩍 뛰어넘었다. 2004∼2007년 시장을 주도했던 조선 업종의 경우 코스피 거래대금의 20%를 차지하는 수준에서, 2014∼2017년 주도주인 셀트리온 등 제약업종은 코스닥 거래대금의 30% 수준에서 비중 정점을 형성했다. 이차전지 업종의 거래대금은 이미 지난 1월과 4월 코스피·코스닥 합산 거래대금의 30% 수준을 기록했고, 이달 26일에는 47.6%까지 잡아먹으며 유례가 없을 만큼 급격한 쏠림을 나타냈다.

시총 측면에서도 이차천지 업종은 독특한 기록을 쌓았다. 이진우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이달 25일 기준 삼성전자 시총(보통주)은 418조원이었고 이차전지 기업의 시총 합산액은 472조원에 육박했다”며 “국내 주식 시장에서 단일 테마가 삼성전자의 시총을 넘어선 적은 2000년 이후로는 없었다”고 설명했다. 교보증권은 8월 주식시장이 ‘FOMO’ 현상으로 인한 수급 유입과 높은 밸류에이션 부담으로 인한 공매도 투자자 간의 세력 다툼으로 변동성이 여전히 클 것으로 내다보며 한차례 쉬어갈 것을 추천했다. 강민석·김형렬 연구원은 “급등과 급락하는 주가를 따라 7월 한 달 동안 열심히 달려온 투자자들은 잠시 ‘쿨다운’하는 시간을 가져야 할 타이밍”이라며 “단기 수급을 따라가기보단 차분히 산업과 기업들의 펀더멘탈을 다시 한번 살펴보는 시간을 가져보자”고 권했다.
서울 강남구 포스코센터 내 포스코홀딩스 안내문 모습. 연합뉴스
◆일부 이차전지, 성장주보다 고평가

일부 이차전지 관련주는 시장에서 국내 대표 성장주보다 고평가될 정도로 급등해 적정한 가치평가를 하기 어려워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유가증권시장 시가총액 순위를 보면 이차전지 열풍을 타고 주가가 급등한 POSCO홀딩스가 5위에 올라 LG화학(6위), 삼성SDI(7위), 현대차(8위) 등의 대기업보다 앞서있다. POSCO홀딩스 시총 규모는 지난 28일 종가 기준으로 52조3496억원이다. 다음으로 LG화학 45조8850억원, 삼성SDI 45조5909억원, 현대차 41조6294억원 등 순이다. 액면가 5000원의 현 주가 수준을 비교해보면 현대차가 19만6800원으로 POSCO홀딩스(61만9000원)의 3분의 1수준이다.

주가를 주당순이익으로 나눈 주가의 수익성 지표인 주가수익비율(PER)을 보면 POSCO홀딩스가 24.54배로 현대차(5.99배)의 네 배가넘는다. 그러나 에프앤가이드가 집계한 현대차의 올해 2분기 잠정 순이익은 3조3468억원으로 POSCO홀딩스 8000억원의 네 배에 이른다. 작년 연간 순이익을 보면 현대차가 7조9836억원으로 POSC0홀딩스 3조5605억원의 두 배가 넘는다.

교보증권은 POSCO홀딩스 목표주가를 시가보다 낮은 45만원으로 제시해 사실상 매도 의견을 시사했다. 백광제 교보증권 연구원은 “친환경미래소재 등으로 변모해 수익성 대비 기업가치(멀티플) 상향 요인이 존재하지만, 전통적인 가치평가(밸류에이션) 방식이 시장가치 변모를 설명하기 힘든 점을 아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시총 9위의 포스코퓨처엠은 올해 2분기 잠정 영업이익과 순이익이 각각 521억원과 431억원으로 집계됐다. 2분기 추정 영업이익을 보면 ▲LG화학(6위) 6156억원 ▲삼성SDI(7위) 4502억원 ▲현대차(8위) 4조2379억원 ▲NAVER(네이버·10위) 3684억원 ▲기아(11위) 3조4030억원 ▲카카오(12위) 1244억원 등이다. 이들 시총 상위 기업 모두 포스코퓨처엠보다 최소 두 배가 넘는 영업이익을 거뒀다. 그러나 포스코퓨처엠의 주가 지표를 보면 주가수익비율(PER)이 326.09배, 주가순자산비율(PBR)은 15.89배로 각각 산정됐다. 이 종목의 PER 지표는 국내 대표 성장주인 네이버(53.74배)와 카카오(176.92배)보다 훨씬 높다. PBR 지표도 네이버 1.48배와 카카오 2.11배를 크게 웃돈다.

코스닥시장 시총 1위와 2위 업체인 에코프로비엠과 에코프로도대표적인 이차전지 과열 종목으로 꼽힌다. 두 종목의 PER 지표는 각각 142.43배와 77.35배 수준이다. 에코프로비엠의 2분기 영업이익 추정치는 1147억원이지만 시총 규모는 39조8500억원으로 유가증권시장(코스피)에서 9위 수준이다.

증권사들은 이들 종목의 주가가 가치평가 수준을 넘었다며 목표주가를 제시하지 않거나 시가를 밑도는 목표주가를 제시해 사실상 매도 의견을 피력한 것이 전부이다. 증권사의 에코프로 분석 보고서는 지난 5월19일 이후 한 건도 없다. 김지산 키움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이차전지는 주가 부담이 크고 실적도 예상치를 밑돌아 독주를 지속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중국 배터리 업체들도 상당한 조정을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차전지만 올라가는 기형적인 시장 장세보다 실적 호전이나 경기 저점 통과 쪽에 초점을 맞춘 업종 중심으로 매수세가 분산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최유준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투자자들이 이차전지에 대한 차익실현 나서면서수급 지배력이 완화하고 시장은 균형을 찾아갈 것”이라며 “소외업종이 반등하면 기초여건(펀더멘털)이 주요 변수로 부상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노근창 현대차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앞으로 반도체·자동차·바이오 등으로 수급이 확산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조성민 기자 josungm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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