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환율 전문가 “기업 자본 해외도피 늘어나 엔저 장기화할 것”

윤지원 기자 2023. 7. 30.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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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카마 미즈호은행 수석이코노미스트
가라카마 다이스케 미즈호은행 수석시장이코노미스트. 본인 제공
“기업들, 일본 내 투자할 곳 찾지 못해 해외에 24조엔 쌓아두고 관망
고령화 불가피하지만 청년층 부담 줄이지 못하면 일본 경제 어두워”

원·엔 재정환율이 100엔당 900원대를 찍는 역사적인 엔저(엔화가치 약세) 시대가 도래했다. 일본과 수출경합도가 높은 국내 중소기업은 달갑지 않지만, 여행객과 투자자들에게 엔저는 반가운 현상이다. 관광객들은 값싼 일본 여행을 즐기고 있고, 개인 투자자는 환차익을 노린 엔테크, 일본 주식 매입 등으로 투자 포트폴리오를 넓혔다.

일본 내에서는 엔화의 기록적 약세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앞으로도 엔저로 향할까, 아니면 엔고로 갈까. 30일 가라카마 다이스케 미즈호은행 수석시장이코노미스트와 서면 인터뷰를 통해 엔저 시대에 대한 종합적 의견을 물었다. 가라카마 이코노미스트는 일본경제연구센터, 유럽위원회 경제금융총국, 미즈호은행 외환시장 경제·금융 분석팀 등을 거친 일본 내 대표 환율 전문가다.

국내에서 알려진 엔저 현상의 원인은 세계 주요국과의 금리 격차다. 코로나19 이후 물가 상승 우려가 커진 상황에서 일본은 마이너스 금리(-0.1%)를 고수했다. 반면 미국은 기준금리를 5.50%까지 올리며 대응했다.

미국 및 유럽연합(EU)과 일본 간 금리 차가 계속 확대되면서 최근 달러당 엔화 가치는 140엔대까지 떨어졌다.

가라카마는 단순히 금리 격차만이 엔저 현상을 부른 것은 아니라고 본다. 그는 “물가 격차를 조정한 실질환율로도 엔저가 현실적으로 장기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의 실질실효환율(reer)은 이미 2021년 말 1973년 변동환율제 도입 직후 수준으로 떨어졌다. reer은 한 나라의 화폐가 세계 60개국의 물가와 교역 비중을 감안해 얼마큼의 구매력을 갖는지, 실질적 가치를 보여주는 종합적 지표다. 이를 감안할 때 엔저는 달러 강세로 인한 상대적 효과로 생긴 게 아닌 그 자체로 실질 구매력이 낮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가라카마는 ‘31년 연속 세계 1위 규모’로 알려진 일본의 대외순자산 구조도 최근 엔저 상황과 연계해 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2011년을 기점으로 일본 기업이 해외 기업을 매수하는 ‘직접투자’가 전체 대외순자산에서 절반 비중으로 대폭 증가했다. 직접투자는 유동성이 높은 증권투자보다 엔화로 쉽게 바뀌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밖에서 돈을 벌어도 외화로 되돌아오지 않는 엔화 비율이 더 늘었다는 의미다.

가라카마는 최근 출간된 그의 저서 <엔화의 미래>에서 “직접투자 비율이 증가한 것은 일본 기업이 계속 축소되는 국내시장에 투자하기보다 해외 기업 매수나 출자를 통해 시간과 시장을 사는 편이 중장기적 성장으로 이어진다고 판단한 결과”라며 “단순히 자금의 흐름만 파악하면 일본 기업의 자본 도피”라고 말했다.

또 “일본 경제에 투자했을 때 기대 수익률이 여전히 높다면 간단히 ‘해외로 나가겠다’는 판단에 이르지 않았을 것”이라며 “결국 저출생, 고령화를 배경으로 축소되는 일본 국내시장이라는 인구동태적 요인이 있는 한 해외로 향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가라카마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의 대외순자산 중 직접투자 수익은 27조5950억엔이었는데 이 중 47%인 13조410억엔이 재투자 금액으로 해외에 머물렀다. 여기에 해외에서 재투자될 가능성이 큰 증권수익 채권 이자까지 합하면 총 24조엔이 지난해 일본으로 돌아오지 않았다고 가라카마는 주장했다.

가라카마에 따르면 최근 일본 내에서 엔저에 대한 불만이 본격화하고 있다. 그는 “일본은 이미 10년 전부터 무역 적자국이어서 수입해야 하는 재화나 서비스가 많다. 환율 하락으로 기업들이 손해를 입기 쉬운 것은 당연하다”고 설명했다.

일본 경제 자체에 대한 그의 전망도 밝지 않다. 일본 기시다 후미오 정부는 ‘두꺼운 중산층’을 부활시키겠다는 목표를 내세우고 있다. 시간당 최저임금을 평균 1000엔까지 끌어올려 경기를 부흥시키겠다는 방침이다.

가라카마는 “아무리 급여를 올려도 고령화로 사회보험료 부담이 해마다 늘어나는 상황에서 소비와 투자 의욕이 살아나기 어렵다”며 “인구동태상 고령자를 위한 지출이 늘어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청년층 등) 현역 세대가 짊어지는 부담을 손대지 않으면 일본 경제의 지속적인 발전은 어렵다고 본다”고 말했다.

윤지원 기자 yjw@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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