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우크라 평화회의 개최…미·러 사이에서 ‘몸값’ 올린다
브라질 등 중립국 대거 참석
러 불참 속 서방에 판 깔아줘
사우디아라비아가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과 평화 방안을 논의하는 국제회의를 주최하며 몸값 올리기에 나섰다. 특히 사우디 당국은 이번 회의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줄곧 중립을 표방한 국가를 대거 초대해 미국 등 서방이 여론전을 펼칠 수 있도록 판을 깔아줬다는 평가가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9일(현지시간) 미 고위 외교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우크라이나 평화 국제회의가 다음달 5~6일 사우디 제다에서 열린다”고 보도했다. 회의엔 브라질과 인도, 인도네시아, 이집트, 멕시코 등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러시아에 대한 각종 제재에 참여하지 않은 중립국을 포함해 30개국 정부 관계자가 참석한다. 러시아는 불참한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은 이번 회의를 우크라이나가 요구하는 종전과 평화 조건을 설명하고 지지를 얻는 기회로 삼을 계획이다. WSJ는 “미국과 유럽은 러시아를 배제한 이번 회의가 우크라이나에 유리한 국제 지원으로 이어질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에선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회의에 참석할 가능성이 크다.
외신들은 이번 회의를 주최한 사우디 역할에 주목하고 있다. 사우디는 전쟁 발발 이후 원유 감산 조처로 높은 유가를 유지하며 국제사회로부터 러시아 편에 섰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하지만 지난 5월 제다에서 열린 아랍연맹(AL) 정상회의에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초청한 데 이어 미국 등 서방이 중립국 지지를 끌어낼 수 있는 장을 열어줬다. 더 나아가 사우디가 우크라이나 사태 변수로 꼽히는 중국을 회의장에 불러낼 가능성도 제기된다. WSJ는 서방 외교관들의 말을 인용해 “러시아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온 중국을 설득하기 위해 사우디가 회의 개최지로 선정됐다”고 전했다. 중국은 지난 6월 덴마크 1차 회의엔 불참했다.
사우디는 중동 패권을 되찾기 위한 미국의 간절함도 십분 활용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설리번 보좌관은 지난 27일 사우디 제다를 찾아 고위 인사들을 만났다. 그의 사우디 방문은 지난 5월에 이어 두 달 만으로, NYT는 “사우디와 이스라엘의 외교 정상화를 통해 중동 정세 재편을 추진하려는 미국이 시험대에 올랐다”고 평가했다. 미국은 지난 3월 중국의 중재로 앙숙인 이란과 사우디가 손을 잡은 이후 예멘 내전 종전 협상과 시리아의 AL 복귀 등에 대해 예전만큼의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이에 사우디와 이스라엘의 관계개선을 통해 분위기 전환을 시도하는 상황이다.
사우디는 이 과정에서 꽃놀이패를 쥐고 미국을 압박하고 있다. 우선 사우디는 이스라엘과의 외교 정상화 조건으로 미국이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수준의 안보를 보장하고,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등 미국이 보유한 첨단 무기에 접근할 수 있는 권리를 요구하고 있다. 특히 우라늄 농축을 포함한 민간 원자력 프로그램 구축과 관련한 지원을 받아내겠다는 심산이다.
상황은 녹록지 않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의 우려에도 사법부 무력화 법안을 강행 처리하며 둘의 관계에 파열음이 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NYT는 “미국과 이스라엘 간 마찰이 심한 가운데 사우디와 이스라엘의 관계 개선 협상이 이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손우성 기자 applepi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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