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시마 오염수 고체화가 최선…일본, 가장 싼 방류 택해”
후쿠시마 과학자문단 참여 ‘알프스’ 처리 후 분석 작업
“오염수 피해 ‘0’이 될 수 없고 주변국엔 아무 이익 없다”
핵물리학자가 본 ‘쟁점’ 7가지
일본 정부의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가 임박했다. 일본 언론들은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8월 중 방류 개시를 지시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도쿄전력은 후쿠시마 제1원전 탱크 1000여개에 들어 있는 133만t 이상의 오염수를 다핵종제거설비(알프스·ALPS)로 정화한 후 바닷물로 희석해 30년 동안 배출할 계획이다.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한국 정부의 태도다. 일본 계획 그대로 오염수 방류를 승인한 윤석열 정부는 해양 생태계에 미칠 악영향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괴담’으로 치부한다. 일본 아닌 한국 정부가 ‘과학 VS 미신’이란 프레임을 씌우고 있다.
그러나 괴담이나 미신과는 거리가 먼 과학자들도 후쿠시마 오염수의 안전성을 우려한다. 핵물리학자인 페렝 달노키베레스 미국 미들베리국제대학원 교수(사진)는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최종보고서가 오염수 해양 방류의 위험성을 의도적으로 축소하는 방향으로 진행됐다고 비판했다. 또 오염수를 처리하는 최선의 방법은 오염수를 콘크리트로 고체화해 보관하는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이 값싸고 손쉬운 방류를 택한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다음은 달노키베레스 교수와 인터뷰한 내용을 바탕으로 후쿠시마 오염수를 둘러싼 논란과 궁금증들을 정리한 것이다. 인터뷰는 지난 11~20일 e메일로 이뤄졌다. 그는 태평양 18개 섬나라를 회원국으로 하는 태평양도서국포럼(PIF)의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대응 과학자문단의 일원으로 도쿄전력이 2017년 10월부터 2023년 2월까지 ALPS로 처리한 원전 오염수를 분석하는 작업에 참여했다.
① 한국 정부의 오염수 방류 지지는 우리에게도 어떤 실익이 있기 때문인가.
오염수 방류의 안전성에 대한 의견은 과학자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핵연료와 직접 접촉한 오염수는 아무리 ALPS 처리를 거쳤다 하더라도 그 피해가 결코 ‘0’이 될 수 없다. 주변국에는 아무런 이익이 없다는 뜻이다. 이는 ‘그 행위(방류)로 인한 이익이 피해보다 커야 한다’는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안전지침 GSG-8 요건에 위배된다.
그러나 이번 방류 결정에서 GSG-8 원칙은 검토조차 되지 않았다. 달노키베레스 교수는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가 GSG-8 원칙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나쁜 선례가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도쿄전력, 뼈에 침착되는 핵종은 쉬쉬…선택적 안전 홍보”
② IAEA는 국제기구인데 왜 주변국 돌며 일본 오염수 방류를 설득하나.
특정국 입장 대변 부적절
방문에 집중, 보고서는 뒷전
라파엘 그로시 IAEA 사무총장은 지난 7일 한국을 찾은 데 이어 지난 11일에는 PIF 의장국인 쿡제도를 방문하는 등 오염수 방류 영향권 나라들을 상대로 설득 작업을 벌였다. 한국에서는 일본의 오염수 방류 계획이 “국제 안전기준에 부합한다”는 IAEA 최종보고서 내용을 되풀이해 과학적 설명 대신 정치적 플레이만 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달노키베레스 교수가 “매우 부적절하다”고 비판하는 것도 바로 그 지점이다. 공신력 있는 국제기구인 IAEA가 특정 회원국의 입장을 다른 회원국보다 선호하는 것처럼 보여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달노키베레스 교수는 “보고서가 나오자마자 한국과 뉴질랜드 등 주변국 순회 방문을 시작하는 바람에 방문 자체에 관심이 쏠리면서 보고서를 충분히 소화하고 검토할 여유를 주지 않은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③ 방류해도 아무 문제없다는 IAEA의 보고서 내용은 신뢰할 만한가.
‘알프스 처리’ 오염수 영향
너무 적은 어종으로 모니터링
달노키베레스 교수는 “핵 비확산과 안전에 기여한 IAEA의 노력과 우크라이나 자포리자 원전에서의 활동에 경의를 표한다”고 말문을 연 뒤 “그러나 IAEA 보고서의 분석 방식에는 우려를 불러일으키는 문제점들이 있다”고 답했다.
첫번째 문제점은 ALPS(알프스) 처리된 오염수가 해양 생태계에 미칠 영향을 모니터링하는 데 사용된 어종의 숫자가 너무 적은 데다 여기에 여과 섭식자를 포함시키지 않았다는 점이다. 여과 섭식자는 물속의 부유물질을 걸러 먹는 조개, 크릴, 해면동물 등을 일컫는다.
달노키베레스 교수는 “먹이사슬망을 통한 (방사능) 축적 위험을 평가할 때 방사능 물질에 노출됐을 가능성이 있는 작은 물고기들 대신 일반 사료를 먹임으로써 방사능 축적 가능성을 의도적으로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실험이 진행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방사선환경영향평가(REIA)에서 침전물에 의한 방사성 핵종 흡수 문제를 다루는 방식에도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침전물의 방사성 물질 흡수량은 방류량이 늘어날수록 단계마다 증가할 것이고 이러한 흡수량은 핵종과 침전물의 종류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는데, IAEA의 분석은 이러한 요소들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은 채 이뤄졌다는 것이다.
달노키베레스 교수는 “그동안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에 이 같은 요소를 고려해 실험을 설계해야 한다고 여러 차례 조언했지만, 그들은 우리의 제안을 반복적으로 거부했다”면서 “나는 도쿄전력에 대한 신뢰를 크게 상실했다”고 밝혔다.
④ 그래도 ALPS 처리를 거친 오염수에서 방사능 수치가 낮게 나왔다면 괜찮은 것 아닐까.
‘시료’ 도쿄전력이 제공
침전물 섞는 작업도 안 거쳐
IAEA의 보고서는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탱크 1070개 가운데 3개에서 채취한 시료 3건 중 1차 시료만 분석한 결과를 담고 있다. 오염수 방류를 우려하는 측은 시료 3건 모두 IAEA가 직접 채취한 게 아니라 도쿄전력이 제공한 것이고, 2·3차 시료를 채취할 때는 탱크 내 바닥에 있는 침전물을 포함해 위아래 전체 오염수를 섞는 교반작업도 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이에 대해 바다에 방류되는 것은 ALPS 처리된 물인 데다 IAEA 분석 결과 그 물의 방사성 물질 함유량이 낮게 나왔다면 문제될 것이 없다는 반론이 있다.
그러나 달노키베레스 교수가 샘플 채취 방식을 문제 삼는 이유는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탱크마다 방사성 핵종 혼합이 서로 다른 데다 일부 탱크는 방사성 농도가 높은 반면 다른 탱크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일본이 방류하려는 오염수의 규모와 방사성 핵종의 다양성은 전례가 없는 수준”이라며 “IAEA가 분석한 탱크 샘플의 분석결과는 양호하게 나왔다 하더라도 탱크 내 방사성 핵종의 다양성이 클 때, 또 처리해야 하는 물의 양이 많을 때 ALPS 시스템이 어떻게 작동할지 불분명하다”고 말했다.
달노키베레스 교수는 도쿄전력이 삼중수소의 안전성을 홍보하는 데 주력하고 있지만, 탱크에서 고농도로 검출된 스트론튬-90과 같이 뼈에 침착되는 다른 방사성 핵종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면서 “이러한 선택적 서술은 문제의 실제 중요한 측면으로부터 주의를 돌리기 위한 전술로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e메일에서 자신이 ‘방류(release)’라는 말 대신 줄곧 ‘투기(dumping)’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데 주목해달라고 했다.
“통에 담아서 바다에 던지는 것이 아니라 배수관을 통해 내보낸다 하더라도 이러한 방사능 오염수를 바다에 버리는 것은 폐기물 해양 투기를 금지한 1996년 런던협약 위반”이라는 것이다.
⑤ 방류 외에 다른 대안 없지 않나.
콘크리트화 방안으로 처리 땐
5년 내 탱크 다 비울 수 있어
그렇지 않다. 해외 과학자 및 일본 내 원전 전문가 등은 매우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그중 가장 강력하게 지지받는 대안이 ALPS 처리된 오염수를 시멘트, 모래 등과 섞어 고체로 만들어 보관하는 방안이다.
달노키베레스 교수는 콘크리트화 방안의 장점을 세 가지로 꼽았다. 첫째, 탱크를 빠르면 5년 내에 모두 비울 수 있다. 이는 오염수를 30년에 걸쳐 바다에 방류하겠다는 일본의 계획보다 훨씬 빠르다. 둘째, 삼중수소의 베타선은 섭취할 경우 내부피폭 우려가 있지만 피부를 뚫지는 못하기 때문에 콘크리트 밖으로 빠져나갈 수 없다. 셋째, 콘크리트로 만들면 오염수가 국경을 넘지 않는다는 점에서 주변국은 물론이고 일본 어민들에게도 이익이다.
달노키베레스 교수는 “정치적 의지만 있다면 콘크리트화 방안을 선택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면서 “이 같은 아이디어가 있는데도 일본의 의사결정권자들은 희석과 방류라는 쉽고 값싼 해결책을 선택했고, IAEA는 문제가 없다면서 이를 승인해줬다”고 비판했다.
그는 2016년 도쿄전력이 오염수 처리에 대한 6가지 아이디어를 발표하면서 가장 저렴한 방안인 해양 방류와 매우 분명한 단점을 가진 다른 대안들을 섞어 제시했다고 지적하면서 “이는 마케팅 기법일 뿐 과학이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이어 “도쿄전력이 (콘크리트화 방안을)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은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⑥ 방류하면 얼마나 위험한가. 생선을 먹으면 안 되나.
‘위험’ 부풀리기 옳지 않아
생선 섭취 따른 건강 이익 커
달노키베레스 교수는 오염수 방류를 반대하지만, 오염수의 위험을 과장하는 것 역시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한다.
그는 “오염된 생선에 대한 잠재적 위험보다는 생선 섭취에 따른 건강상 이점이 전반적으로 훨씬 크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대중에게 드리고 싶은 조언은 과학에 대한 인식은 의도적이든, 실수이든 쉽게 조작될 수 있기 때문에 모든 측면에 귀를 기울이되 과학적 논의에서 정치와 산업의 영향력을 분리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바다는 이미 기후변화와 산성화 등으로 인해 심각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면서 “바다에 투기하지 않아도 되는 해결책(콘크리트화)이 존재하는데 그것을 선택하길 바라는 것이 과연 지나친 요구인가”라고 되물었다.
⑦ 방류를 피할 수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방사능 낮은 순으로 천천히
높은 건 삼중수소 붕괴 후에
달노키베레스 교수는 “(일본이) 이웃 국가의 바다와 시민들에게 끼치는 피해를 최소화하려면 방사능이 가장 낮은 탱크의 오염수를 첫 수십년 동안 먼저 투기하고 방사능이 높은 탱크에서는 삼중수소가 붕괴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속적인 감시도 필수적이다. 앞서 그로시 사무총장은 “최후의 처리수(오염수) 한 방울이 안전하게 방류될 때까지 IAEA는 후쿠시마에 머물 것”이라고 약속한 바 있다.
문제는 도쿄전력을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느냐다. 도쿄전력은 후쿠시마 원전 2호기에서 발생한 고농도 방사능 오염수가 2014년부터 바다에 유출된 사실을 은폐했고 2021년에는 ALPS 여과망이 손상된 사실도 숨겼다.
달노키베레스 교수는 “IAEA가 얼마나 철저히 감독할 수 있을까”라면서 “도쿄전력이 앞으로 긴 시간 동안 아무런 사고를 내지 않을 것이라고, 그리고 사고가 났을 때 이를 숨기지 않을 것이라고 믿을 수 있을까”라고 말했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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