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라노] “서이초 사건 남일 같지 않다”… ‘아동학대 협박’에 추락한 교권
교사 "아동학대 논란에서 자유롭고 싶어"
교육당국, 본질 파악 못해 엉뚱한 대책만
뉴스레터 ‘뭐라노’의 마스코트 라노입니다. 어린 시절 라노와 함께 깔깔거리며 놀던 친구들이 하나둘씩 사회에 첫 발을 내딛고 있어요. 영원히 어리기만 할 줄 알았는데 사회인이 되어가는 친구들을 보고 있으면 감회가 새로워요. 라노의 주변에는 선생님을 하고 있는 친구들도 많아요. 각자의 직업에 대한 고충을 토로하는 것을 보고 있으면 선생님은 감정노동자 같다는 생각을 해요. 미성숙한 인간을 교육하고, 교정하며, 사회에 내보낼 준비를 하는 것은 아주 쉽지 않은 일이에요. 그 과정에선 훈육이 동반될 수밖에 없는데요. 하지만 이를 참지 못하고 민원을 넣는 학부모가 종종 선생님들을 힘들게 하는 것 같아요.
▮학부모 악성 민원에 ‘몸살’
최근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에서 근무하던 초등교사가 학교 안에서 극단적 선택을 한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학부모의 악성 민원과 갑질이 원인이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죠. 23세의 초임교사가 피해를 당하고 있지만 특별한 제재도, 도움도 없었다는 사실이 밝혀져 안타까움이 더해졌습니다. 이에 많은 교사들이 분노했습니다. “내가 피해자가 될 수도 있었다”라고 입을 모아 말했죠. 우리나라 교육의 미래를 책임질 초임교사들은 절망감과 무력감에 빠졌습니다.
초등학교에서 근무하는 A 교사는 “모든 또래 교사들이 ‘저 선생님은 나 같다’라고 말한다”며 “남일 같지 않다”고 울분을 토했습니다. 학부모의 악성 민원은 모든 교사들이 한 번씩은 겪는 일이지만 개선사항도, 대처방안도 없다는 것. 교사들은 악성 민원과 아동학대 신고를 피하기 위해 학생들을 고객처럼 잘 데리고 있다가 보내는 것 밖에는 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A 교사는 “교사가 아니라면 이 고통을 공감하지 못할 것”이라며 “손발이 묶여있는 것 같다”고 전했습니다.
초등학교에서 근무하는 B 교사는 “또래의 신규 교사여서 더 안타깝고 마음이 아팠다”며 “그 자리에 가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과 고통이 동반됐을지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더욱 우울해졌다”고 말했습니다. 교사의 권리가 존중받지 못하는 현실이 절망스럽기도 하다고 전했죠. B 교사는 “언젠간 내 동료 교사 또는 나에게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 무섭다”라고 털어놨습니다.
▮무분별한 아동학대 신고가 교권 추락 불러
현직 교사들은 교권 추락의 원인으로 무분별한 아동학대 신고를 꼽았습니다. 아동학대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이 교사를 옥죄는 데 악용된다는 것.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10조에서는 “누구든지 아동학대 범죄를 알게 된 경우나 그 의심이 있는 경우 신고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학생과 학부모가 법을 악용하게 되면 교사는 속수무책이 될 수밖에 없죠.
아동학대의 범위는 포괄적입니다. 객관적 기준이 없죠. 어떤 상황에서도 아동학대가 적용될 수 있는지 라노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학생 한 명이 기분이 상해 수업 시간임에도 교실을 뛰쳐나갔다는 상황을 설정해 볼게요. 교사가 같이 뛰어나가 학생을 잡아 세우면 ‘신체적 학대’가 되는 것이고, 그 학생에게 “멈춰!”라고 소리를 지르면 ‘정서적 학대’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가만히 보고만 있으면 ‘방임’이 됩니다. 교사들은 이도 저도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되는 것.
실제로 경기교사노조가 지난 3월 전국 시도교육청을 통해 조사한 결과를 보면, 최근 5년간 교사가 아동학대 혐의로 고소·고발돼 수사 받은 사례가 1252건에 이릅니다. 이 가운데 경찰이 자체 종결하거나 불기소 처분을 받은 사례가 676건으로 53.9%에 이릅니다. 일반적인 아동학대 사건에 대한 경찰의 종결 및 불기소 처분 비율이 14.9%인 것에 비해 3배나 높은 수치죠.
교사가 아동학대로 신고를 당하면 어떻게 될까요? 교사는 즉시 학생들과 분리조치 됩니다. 학생들이 있는 반에 들어갈 수 없죠. 아동학대로 신고된 교사는 본업에 충실할 수 없고, 정신적 타격과 상실감을 겪게 됩니다. 아동학대가 아니었다고 밝혀져도 교사는 아무것도 하지 못합니다. 아동학대는 무고죄 적용이 안되기 때문입니다.
교사들은 입을 모아 아동학대 논란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다고 말합니다. 교사의 사소한 행동도 아동학대로 신고하겠다고 협박하는 일부 학부모들로 인해 교사들은 항상 스스로를 검열할 수밖에 없고, 교육행위에 있어 위축됩니다. 지금 교권을 회복하기 위해서 언급되는 법들은 전부 아동학대 신고를 받은 후 대처에 불과할 뿐이라고 지적합니다.
교사들은 아동학대 신고를 받지 않을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한 것. A 교사는 “아동학대 무고죄 성립이 가능해져야 하고, 아동학대의 객관적 기준을 마련해야한다”며 “교육행위에 있어서 아동학대 기준을 확립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습니다. B 교사는 “학생인권을 중요시 여기는 만큼 교권도 함께 존중받는 교육 체계가 형성돼야 한다”며 “아동학대 논란에서 교사가 자유로워질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부산교사노동조합은 “무고성 아동학대 신고를 처벌하거나 막을 수 있어야 한다”고 전했습니다.
▮교권 추락 본질 파악해야
하지만 교육당국은 교권 추락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교육당국이 교권 추락의 원인으로 ‘학생 인권이 지나치게 강조되는 상황’을 지적하며 학생인권조례 때리기에 나섰기 때문입니다.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지난 21일 “학생인권이 지나치게 강조되며 교권은 땅에 떨어지고 교실 현장은 붕괴되고 있다”며 “지도 교육감들과 협의해 학생인권조례를 재정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학생의 인권과 교사의 권리는 서로 양립할 수 없는 것일까요? 학생의 인권과 교사의 권리가 서로 반비례하는 관계는 아닐 텐데요. 교사들이 정말로 힘들어하는 부분은 ‘아이들을 훈육하지 못하는 상황’ 그 자체가 아니라 ‘정당한 교육행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동학대로 신고당하는 상황’입니다. 교사의 사소한 행동을 아동학대로 신고한다고 말하는 일부 학부모들 때문에 악성 민원에 시달리고, 교육행위가 위축되는 것이 진짜 문제라고 봤죠. 현직 교사들은 학생인권조례가 교권 추락의 결정적 원인이 아니라고 지적합니다. 애초에 교권 침해 문제를 힘의 논리로 생각하고, 대치되는 것으로 파악한 것이 문제라고 말했죠.
부산교사노동조합은 “교사들이 정말 필요로 하는 것은 따로 있다”고 말했습니다. 학부모와 교사 간의 직접적인 연락을 차단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달라는 것. 학부모와 교사 간의 직접적인 연락만 차단해도 악성 민원이 어느 정도 해결된다는 것입니다. 부산교사노동조합은 ▶교사의 개인번호 공개 금지 ▶학급 전화 녹음 기능 도입 ▶학부모와 교사 간의 연락 방법 하나로 통일 등의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부산교사노동조합은 “학부모와 교사 간의 직접적인 연락을 차단하는 법은 즉각 도입하기에도 좋다”며 “하루빨리 시행돼야 할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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