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북한의 남한인권보고서
윤석열 정부가 지난 3월 ‘2023 북한인권보고서’를 발간했다. 2016년 북한인권법이 제정된 후 처음으로 일반에 공개된 이 보고서에 북한은 꽤 충격을 받은 듯하다. ‘모략’ ‘날조’라고 반발하더니, 얼마 전 노동당 통일전선부 산하 평양출판부가 <인권동토대>라는 책자를 발간했다. ‘남조선인권실상을 파헤쳐본다’는 소제목이 붙은 걸 보면 한국의 인권보고서에 대한 맞불 대응인 셈이다.
북한의 보고서는 ‘여지없이 말살되는 사회정치적 권리’ ‘무참히 짓밟히는 경제문화적 권리’ ‘범죄와 여성 천시, 패륜패덕의 난무장’ ‘침략자의 군화 밑에서 신음하는 인권’ 등 4개 항목으로 나눠져 있다. ‘시민적·정치적 권리’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 ‘취약계층’ ‘정치범수용소·국군포로·납북자·이산가족’으로 세분한 남측 보고서와 조응하는 체계다. 이 ‘맞불 보고서’에서 북한은 남측의 높은 자살률을 물고 늘어졌다. 또 일부 사례를 들어 취업난, 산업재해, 여성·장애인 차별, 아동학대가 만연한 것처럼 기술했다. 과장된 측면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지만, 아주 없는 이야기들도 아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권고 사항으로 지적해온 문제들이고 한국사회가 사회적 약자의 권리증진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할 대목들이다.
하지만 북한의 인권상황은 한국과 같은 반열에서 비교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국제인권단체 프리덤하우스가 발표한 ‘2023 세계자유보고서’에서 북한은 자유지수 100점 만점에서 3점에 그친 반면 한국은 미국과 동일하게 83점을 받았다. 북한이 한국의 작은 약점을 꼬집는다고 해서 세계 최하위권 인권국이라는 자신들의 결정적 약점이 가려질 순 없다.
인권 상황에서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지만 남북 정권이 인권을 냉전적 대결의 수단으로 이용하려는 점은 비슷하다. 북한의 핵무력 강화와 윤석열 정부의 한·미 동맹 강화가 맞부딪치는 한반도의 일촉즉발 상황 속에서 북한이 ‘맞불 인권보고서’를 낸 것은 우스꽝스러운 희극이 아니라 서글픈 비극에 가깝다.
윤석열 정부가 북한인권 향상에 힘쓰겠다고 다짐하는 만큼, 한국사회 취약계층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것이 북한인권 개선에도 기여하게 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윤호우 논설위원 ho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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