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자신이 없어요…” 정년 앞둔 베테랑 교사도 학부모 ‘갑질’ 감당 못했다 [송민섭의 통계로 본 교육]

송민섭 2023. 7. 30.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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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차 교사의 극단 선택과 닮은 서이초 사건
정년 앞둔 교사, 6년 전 학부모와 갈등에
“학생·학교 측이 날 괴롭혀” 심한 우울증
새내기 교사도 민원·격무 시달려 고충 커
학생·교사·부모 상생 교육공동체 회복되길

“괴롭다”, “힘들다”, “한 아이를 잘못 만나 내 인생이 파괴되었다”.

지금으로부터 6년여 전인 2017년 3월 강원도 한 모텔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초등학교 교사의 유서 중 일부입니다. 1978년 6월 교직에 들어선 고인은 2016년 서울지역 한 초등학교에서 4학년 담임을 맡았습니다. 하필 담임을 맡은 반에 무례한 행동과 폭언을 일삼는 학생이 있었습니다. 반성문을 쓰도록 했으나 개선될 기미조차 없어 학생에게 욕설을 했는데 학부모가 이를 문제 삼았습니다. 5개월 동안 수차례 교장에게 전화하고 국민신문고, 교육청 등에 수차례 민원을 넣어 교사의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을 요구했습니다. 동료 교사들은 고인이 담임교사 회의 등에서 종종 ‘한 학생 때문에 너무 힘들다’고 토로했다고 전했습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고인과 학부모 간 갈등은 2016년 10월 극에 달했습니다. 학생 지도방안을 놓고 부모, 교감 등이 5자 대면을 했는데 상담 과정에서 학생 아버지가 주먹으로 아들 담임인 고인의 얼굴을 치려고 한 것입니다. 교감의 만류로 맞진 않았지만 고인은 큰 충격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2017학년도엔 그 학생을 피하려 4학년 반 잔류를 희망했지만 5, 6학년 교과 교사에 배정됐습니다. 고인이 심하게 우울증을 앓게 된 것은 이때부터인 듯합니다. 관련 행정소송 판결문에서 재판부는 “망인은 학생 지도 과정에서 학생 본인 및 학부모와 극심한 갈등을 겪었고 자신의 지도방법이 학교장이나 교감으로부터 지지를 받지 못한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아 우울증을 앓게 됐다”고 했습니다.
고인은 새 학기 개학을 불과 이틀 앞둔 2017년 2월28일 교장에게 사직서를 제출합니다. 정년퇴직을 불과 한 학기 앞둔 시점이었습니다. 6학년만 가르치게 돼 그 학생과 마주칠 일은 없었지만 “자신이 없다. 아이들이 모두 ○○과 같을 것이라고 생각이 들어 불안하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하지만 사직서 수리가 안 돼 병가를 냈습니다. 사직 만류차 걸었을 교감 전화를 “나를 또 괴롭히려고 한다”고 오해해 집을 뛰쳐나온 교사는 2017년 3월7일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입직 40년차 초등교사의 죽음은 최근 2년차 초등교사의 죽음과 참혹할 정도로 닮았습니다. 서울 서초구 서이초 1학년 담임교사는 목숨을 끊기 3주 전 일기장에 “업무폭탄에, ○○ 난리가 겹치면서 그냥 모든 게 다 버거워지고 놓고 싶다는 생각이 마구 들었다. 숨이 막혔다. 밥을 먹는데 손일 떨리고 눈물이 흐를 뻔했다”고 고통스러워했습니다.

교직 입문 첫해를 마치고 학부모들에게 손편지를 보내 “2022년은 저에게 참 선물 같은 해”라며 “1년이라는 시간 동안 가르치며 아이들의 몸과 마음이 쑥쑥 자라나는 모습을 보니 참 대견하고 흐뭇했다”고 되레 감사해한 그였습니다. 불과 5개월 사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일단 업무 과다와 학생지도에 대한 부담, 학부모 민원 응대에 대한 고충 등이 거론됩니다. 학부모의 ‘갑질’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 마련과 함께 새내기 교사에게 경력이 상당한 교사들도 꺼려한다는 1학년 담임과 학교폭력·나이스(NEIS) 업무를 연달아 맡겨 죽음으로 내몬 뒤 급기야 “(떠도는) 부정확한 내용들은 고인의 죽음을 명예롭지 못하게 한다”는 입장까지 낸 학교 측 책임을 물어야 할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학생 인권이 지나치게 강조되면서 교사들 교권은 급격하게 추락했으며 공교육이 붕괴되고 있다”고 진단한 교육부 장관의 정략적 대증처방은 수십년째 악화하고 있는 ‘헬교실’을 개선하는 데 별다른 의지나 소신이 없는 것 같아 마음이 무겁습니다.

고백컨대 기자에게 상기 40년차 교사의 죽음은 판결문을 접하기 전엔 2017학년도 정년·명예퇴직, 의원면직 등의 사유로 퇴직한 8367명 중 1명에 불과했습니다. 교육부 관계자에게 이분은 당연퇴직, 직권면직, 해임, 사망을 포함하는 ‘기타’ 사유로 분류된 퇴직교원 269명 중 1명에 그칠 수도 있습니다. 아무쪼록 이번 서이초 교사의 죽음은 2023학년도 기타 사유의 퇴직교원 1명에 머물지 않고 학생·교사·학부모 모두가 상생하는 교육공동체를 만드는 초석이 되길 기원해 봅니다.

송민섭 기자 stsong@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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