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포격전 맞먹는 서방 vs 러시아 ‘외교 포섭전’
러시아는 아프리카 정상들 불러 구애
“바그너, 폴란드 국경에”… 확전 우려
우크라이나 남부에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폭격 공방이 격화하는 와중에 우군 확보를 위한 서방과 러시아의 외교 각축전이 치열해지고 있다. 러시아 용병그룹인 바그너가 폴란드, 리투아니아 등 서방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취약 지역을 노리면서 확전 조짐마저 나타났다.
29일(현지시간)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대 30개국 정부 관계자가 참석하는 ‘우크라이나 평화 회의’가 내달 5, 6일 사우디아라비아 제다에서 열릴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미국과 유럽연합(EU) 등 서방은 이 회의가 ‘글로벌 사우스’(개발도상국 그룹) 내부에서 우크라이나가 제시한 평화안에 대해 긍정 여론이 조성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WSJ는 설명했다.
회의 성패의 관건은 러시아 우방인 브릭스(BRICS·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 회원국을 얼마나 포섭할 수 있느냐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러시아를 뺀 브릭스 4개국이 남미·아프리카·동남아시아의 다른 개도국들과 함께 초청국 명단에 포함됐는데, 이들을 설득해 러시아를 향한 외교적 지원을 줄여야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협상장에 나온다는 게 서방의 믿음이라고 FT는 분석했다.
서방이 내세운 중재자는 사우디다. 러시아와 가까운 중국의 참여를 유도하는 데 사우디가 역할을 하리라는 게 서방의 판단이라고 WSJ는 전했다. 사우디도 욕심이 없지 않다. 미국과 러시아, 중국과의 관계에 균형을 유지하며 중동 밖에까지 영향력이 미치는 중견국의 위상을 사우디가 추구해 왔다는 게 FT의 관찰 결과다.
러시아의 구애 대상은 아프리카다. 푸틴 대통령은 27, 28일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아프리카 국가 정상들을 불러 회의를 열었다. 푸틴 대통령은 “신식민주의에 함께 맞서 싸우자”고 주문했다. 서방 대신 러시아 편을 들어 달라고 노골적으로 요청한 것이다. 아프리카 역시 중국, 사우디 등과 더불어 최근 중재자 경쟁에 뛰어든 지역 중 하나다.
작심한 푸틴, 등 돌린 오데사
17일 러시아의 ‘흑해곡물협정’ 탈퇴 뒤 격전지가 된 곳은 우크라이나 남부다. 우크라이나 곡물 수출의 핵심 항구 도시 오데사가 하루가 멀다 하고 러시아 폭격을 당한 지는 보름이 다 돼 간다. 29일에는 흑해 인근인 헤르손주(州) 베리슬라프의 곡물 수송 시설이 공습을 받았다고 미 뉴욕타임스(NYT)가 보도했다. 러시아의 공격 범위가 커지는 양상이다.
푸틴 대통령은 작심한 듯하다. 원래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의 종교적·문학적 전통이 보존된 오데사를 파괴하지 않은 채 차지할 요량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아니다. 우크라이나군 남부사령부의 나탈리아 후메니우크 대변인은 “흑해 곡물 거래 독점권을 누리고 싶어 하는 러시아가 2, 3개월 안에 우크라이나 항구를 하나도 남겨 놓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말 예카테리나 2세 동상 철거를 포함한 ‘탈러시아’ 시도에도 러시아에 미련을 뒀던 오데사 민심이 완전히 러시아에 등을 돌린 것은 최근 공세 이후다. 연일 밤 불안감에 지친 이들한테서 증오가 자라나 러시아의 흔적을 지우고 있다고 NYT가 29일 전했다. 법적 성탄일 변경(1월 7일→12월 25일)을 통한 러시아 정교회와의 결별, 러시아 인물 미화 지명(地名) 금지 입법 등은 지난주 이뤄진 조치다.
푸틴 대통령은 그러나 아랑곳없다. 러시아 서남부 우크라이나 인접 항구 도시 타간로크 등에 가해진 미사일 공격 등이 빌미다. 얼마 전 아프리카 정상들의 평화 협정 제안을 거부하며 그가 했던 반문이 “공격 주체가 우크라이나인데 왜 러시아에 휴전을 요구하느냐”였다고 NYT 등이 보도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의 휴전을 모색하기는커녕 나토와도 아슬아슬해지고 있다. 마테우슈 모라비에츠키 폴란드 총리가 29일 기자회견에서 “바그너 부대가 폴란드·리투아니아 국경 인근 벨라루스 서부 도시 흐로드나(그로드노) 근처로 이동했다”고 밝혔는데, 이는 요충지 장악을 통한 발트 3국과 나토 간 차단 의도일 수 있다고 미 CNN방송은 해석했다. 푸틴 대통령이 러시아·아프리카 정상회의 뒤 기자회견에서 “시리아 등에서 나토와 군사적 충돌이 벌어지는 것을 원하지는 않지만 모든 시나리오에 대비하고 있다”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김현종 기자 bel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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