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호우 피해 대비’ 더 나아졌는지 선제적 보도 했더라면
전국에 물폭탄을 뿌린 장마로 올해에도 큰 인명 피해가 났다. 열흘 넘게 이어진 집중호우는 우리가 기후위기 시대에 살아가고 있음을 다시금 깨닫게 해줬다. 한국에 물난리가 덮친 사이, 유럽에선 폭염으로 1만명이 넘는 이들이 숨졌다. 기후재난에 대비하고 적응하는 일은 이제 우리의 생존을 위해 절실한 과제가 됐다. 지난 24일 오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8층 대회의실에서 열린 11기 열린편집위원회 세번째 회의에서는 한겨레의 기후재난 및 기후위기 보도를 집중적으로 점검했다. 이날 회의에는 제정임 시민편집인 겸 열린편집위원장(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장), 김우경 에스케이(SK)이노베이션 피아르(PR) 담당 부사장, 김종진 일하는시민연구소장, 심창식 <한겨레:온> 편집위원, 이윤소 한국여성민우회 성평등미디어팀장, 이준형 신촌문화정치연구그룹 연구원, 이채현 부산대 학생(전 부대신문 편집국장)이 참석했다. 한겨레에서는 이종규 저널리즘책무실장, 이주현 뉴스룸국 뉴스총괄, 전정윤 뉴스룸국 인사교육부국장, 이세영 전국부장이 참석했다.
제정임 오늘은 기후재난, 그리고 기후위기와 관련한 한겨레 보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 보자.
김종진 이번 집중호우 피해 관련 기사들을 보면, 한겨레를 포함해 대부분의 언론에서 피해 규모 등 단선적, 현상적 보도가 많았던 것 같다. 재난 상황에서는 국가와 행정기관의 역할이 뭔지 보도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집중호우나 수해에 대비해 각 부처가 갖고 있는 매뉴얼에는 뭐가 있는지, 그런 매뉴얼이 제대로 지켜졌는지, 외국에선 어떻게 하는지 등을 좀 더 자세하게 다뤄줬으면 어땠을까 싶다. 앞으로 태풍으로 인한 물난리가 또 발생할 수 있으니 한겨레가 이런 부분에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 이번에 충북 오송 사고와 견줘 경북 지역 산사태 관련 보도가 상대적으로 적었는데, 도시 중심의 보도 관행 탓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김우경 저희 회사가 정유 사업을 하다 보니, 아무래도 한겨레 등 진보 매체로부터 ‘기후 악당’이라는 지적을 많이 받고 있다. 아프게 받아들이고 있다. 다만, 에너지 전환에는 시간이 많이 필요한데 한겨레가 너무 앞서 나가면서 기업들을 비판만 하는 것 같아서 좀 아쉬웠다. 지금 기업들도 미래 에너지 개발 등 이에스지(ESG, 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을 위해 고민하고 있다는 점도 감안해줬으면 좋겠다. 이산화탄소 포집·저장(CCS) 기술에 대해서도 ‘그린워싱’이라고 비판을 하는데, 그럼 현실적인 대안이 뭔지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심창식 김 위원이 말씀하신 것과 관련해, 한겨레가 최근 보도한 기후소송 기사가 떠오른다. 앞으로는 정부뿐만 아니라 기업을 상대로도 기후소송이 제기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네덜란드에서는 환경단체가 에너지 기업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승소했다고 한다. 이번 집중호우 기사와 관련해서는, 윤석열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방문과 김건희 여사의 명품 쇼핑은 둘다 재난에 대한 대통령 부부의 태도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안임에도 한겨레가 매섭게 지적하지 않아서 아쉬웠다.
이채현 최근 한겨레에서 ‘수해방지법이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는데, 그렇다면 그 법이 왜 통과가 안 됐는지 등을 좀 더 자세하게 다룬 기사가 없어서 아쉬웠다. 앞에서 김종진 위원도 말씀하셨는데, 경북 지역 산사태 피해는 덜 다뤄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제가 사는 곳과 가깝다 보니 아무래도 경북 지역 산사태를 자세하게 다룬 기사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상대적으로 부족했던 것 같다. 기후위기 보도와 관련해서는, 홈페이지에 인터랙티브 기사들이 있던데 데이터 시각화 효과가 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윤소 기후위기 기사들을 보면서, 우리는 앞으로도 계속 듣도 보도 못한 상황들에 놓이게 될 텐데 기후변화 탓만 하면 되나, 이런 생각이 들었는데 한겨레 기사들 중에는 현장 대응 개선 등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어서 좋았다. 기후변화로 기상을 예측하기가 더 어려워졌기 때문에 더욱 강화된 재난 매뉴얼이 필요할 것 같은데, 한겨레가 그런 얘기들을 잘 해주고 있다고 본다.
제정임 한겨레가 이번 집중호우 관련 보도를 꼼꼼하게 잘 했다고 생각한다. 어디에서 대응이 잘못됐는지, 우리가 되새겨야 할 것은 뭔지 등을 잘 짚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런 참사의 반복을 막기 위해 언론은 어떤 역할을 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해 반지하 침수 등 물난리 참사를 겪으면서 앞으로 기후변화로 이런 일이 더 잦아지고 강도도 세질 것이라는 인식을 우리가 공유했으니, 언론이 선제적으로 점검할 필요가 있지 않았을까? 올여름 기후재난에 대비해서 우리 사회는 작년보다 나은 대응을 하고 있는지를 짚는 심층기획을 한겨레가 해줬으면 어땠을까 싶다. 지난 6월 한겨레에 물막이판 등 침수방지시설 설치 현황을 점검한 기사가 실렸을 때 후속 기사를 기대했는데 단발성 보도로 끝나 아쉬웠다. 계속 반복될 가능성이 큰 재난에 대해서는 언론이 선제적으로 들여다보고 문제 제기를 해서 정부와 국회, 지방자치단체가 움직이도록 해야 한다.
이준형 이번 집중호우 기사들을 보면서, ‘한겨레에 왜 이런 기사가 없지’ 하고 생각했던 게 있다.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는 이상 강우 현상이 기후위기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설명해주는 기사다. 정부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도 물론 필요한 일이지만, 이번과 같은 이상 기후 현상이 일어나는 원인을 거시적으로 얘기해줘야 하는 시점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후위기와 지금 우리가 피부로 느끼고 있는 재난이 연결돼 있고, 그걸 극복하려면 시민들의 인식 변화도 필요하다는 점을 한겨레가 계속 짚어줬으면 좋겠다.
제정임 한겨레는 국내 언론사 중 처음으로 기후변화팀을 만들어 기후위기 관련 보도를 열심히 하고 있다. 그런데 기후변화팀 외에 뉴스룸국 전체 구성원들이 얼마나 기후위기라는 문제의식을 갖고 각자 맡은 분야에서 열심히 취재를 하고 있는지 점검을 해봤으면 좋겠다. 한겨레 사장, 뉴스룸국장 등이 이 문제 해결을 회사의 중요한 미션으로 여기고, 리더십 자체를 그런 방향으로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세영 기후위기라는 거시적 문제를 짚었어야 한다는 의견을 말씀해 주셨는데, 사실 국가는 기후위기 같은 상수화된 위험을 예측하고 대처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재난을 개인이나 공동체 전체의 윤리 문제로 돌릴 경우 책임 소재가 불명확해질 위험이 있다. 그래서 국가와 지자체의 책임을 따지는 일이 중요하다고 봤다. 기후위기라는 거시적인 위험의 문제를 재난과 어떻게 연결해 보도할 수 있을지 고민하겠다.
이주현 제정임 위원장께서 기후위기 보도와 관련해 리더십 변화가 필요하다고 하셨는데, 그 말씀 들으면서 반성을 하게 됐다. 한겨레가 젠더 관점으로 이슈를 바라보려고 애쓰는 데 비해 상대적으로 기후 문제에 대해서는 아직 많이 부족한 것 같다. 뉴스룸국 차원에서 인식이 공유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정리 이종규 저널리즘책무실장 jklee@hani.co.kr
열린편집위원들의 ‘단소리 쓴소리’
열린편집위원들은 그달 주제에 대한 논의가 끝난 뒤, 한겨레의 논조와 기사 쓰는 방식, 뉴스 서비스 등 콘텐츠 운영 전반에 대해서도 독자 눈높이에서 비판과 제언을 쏟아냈다. 회의에서 나온 위원들의 목소리를 싣는다.
▪“한겨레의 일부 열성 독자들은 윤석열 정부를 좀 더 신랄하게 비판해 주기를 원한다. 물론 객관적 보도가 중요하지만, 독자들의 이런 갈증을 좀 충족시켜줄 필요도 있다.”(심창식 위원)
▪“최근 최저임금이 결정됐다. 이런 이슈는 한겨레가 미리 준비를 해뒀다가 공세적으로 다뤘으면 어땠을까 싶다. 실업급여 문제는 앞으로도 계속 논란이 될 테니 준비를 잘 해서 대응해 줬으면 좋겠다.”(김종진 위원)
▪“티브이 수신료 등 미디어 이슈의 경우, 한국의 정치 지형과 미디어 지형 등 맥락을 심층적으로 다뤄줬으면 좋겠다. 한국 언론에 대한 성찰적 보도도 필요하다고 본다.”(이준형 위원)
▪“최근 ‘영아 살해’ 기사가 많이 실렸는데, 온라인 기사 대부분에 아기의 발 사진이 들어가 있더라. 이게 ‘어린 생명을 죽인 여성’이라는 프레임을 만드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사진은 안 썼으면 한다.”(이윤소 위원)
▪“출생통보제 법안이 최근 국회를 통과했는데, 이게 정말 답이 될지, 부작용은 없을지 등에 대해 집중적으로 다룬 기사들이 안 보여서 좀 아쉬웠다.”(김우경 위원)
▪“기사를 읽다 보면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이라는 표현이 자주 나온다. 사실 모든 기사가 한겨레 취재를 종합한 결과 아닌가? 기사의 신뢰도를 높이려면 정보의 출처를 구체적으로 밝혀야 한다. 이런 표현을 계속 쓸지 심각하게 고민해 봤으면 좋겠다.”(제정임 위원장)
▪“한겨레 모바일 앱을 써보니 좋던데, 홍보가 좀 부족한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앱을 깔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알렸으면 좋겠다. 매일 아침에 주요 기사들을 알림 형식으로 보내줘도 좋을 것 같다.”(이채현 위원)
열린편집위가 뽑은 ‘이달의 좋은 기사’
열린편집위원들은 7월 <한겨레>가 생산한 콘텐츠 가운데 23건의 ‘좋은 기사’를 추천했다. 이 가운데 위원들이 가장 좋은 평가를 한 콘텐츠는 ‘첫 임신 동성 부부’ 김규진·김세연씨 이야기와 프랑스 시위 현장 르포 기사였다.
1. 이 아이의 세상 바꿀래…언니, 나랑 엄마될래요?
스페셜콘텐츠부 장수경 오세진 기자
한줄평: “대안적 가족의 모습을 담담히 그려냄” “아이의 미래가 무한한 가능성으로 채워지길 바라게 되는 기사”
2. “이민자는 프랑스인이 될 수 없는 현실…사회구조가 폭력적”
국제부 노지원 특파원
한줄평: “프랑스 시위 현장의 목소리와 맥락을 생생하게 전달” “여전히 상존하는 인종차별 현실을 잘 짚은 기사”
3. 네덜란드처럼, 우리도 ‘기후소송’ 이길 수 있을까요?
스페셜콘텐츠부 기민도 기자
한줄평: “기후위기 예방의 사회적 책임과 대응방식”
4. 교통사고 사망 45%가 노인…“보호구역·면허 반납제 개선을”
전국부 송인걸 기자
한줄평: ‘노시니어존’만 거론하기 바쁜 요즘에 고민해 봐야 할 문제를 잘 짚어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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