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11의 목소리] ‘어느 아줌마 유튜버와 AI 작업감독의 스캔들’
[6411의 목소리]
최재경 | 유튜브 채널 ‘초이스 스토리’, ‘비글 순디’ 크리에이터
처음 유튜브 채널을 시작할 때에는 ‘유튜브 크리에이터’라는 말이 그렇게 좋았다. 누구의 간섭도 없이 나 혼자서 프로듀서, 작가, 촬영감독, 편집자의 역할을 하면서 내가 원하는 영상을 만들고, 시청자들과 직접 소통할 수 있는 크리에이터가 된다니! 그러나 완전히 혼자는 아니었다. 내가 유튜버가 된 순간부터 나의 성과를 철저히 분석하고 감시하여 본부에 보고하는 에이아이(AI) 작업감독이 있었으니까.
5분짜리 영어 요리 영상 하나를 제대로 만들기 위해서는 자료 조사, 기획, 대본 작성, 재료 구입, 요리 연습과 시연, 촬영과 편집까지 두세명이 할 일을 혼자서 하느라 꼬박 사흘이 걸렸다. 돈을 받고 일했다면 최소 100만원 가치가 넘는 일이었다. 일정한 구독자 수와 구독 시간에 도달해서 광고 수익이 생기기 전까지는 아무런 보상도 보장되지 않았지만, 일단 ‘공익 기여’와 ‘자아실현’이라는 일차적인 목표는 이룬 것이니 만족했다. 광고가 붙고 조회수가 늘어나기 시작하면 수익도 누적되면서 언젠가는 연금처럼 여러개의 콘텐츠에 기대어 살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내 정성이 알고리즘이라 불리는 ‘유튜브 신’을 감동시켰는지 나의 지난 영상 하나가 갑자기 인기를 끌며 조회수와 댓글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 뒤로 에이아이 작업감독도 신이 났는지 매일 나의 업무성과를 그래프와 수치로 보여주며 “지난달보다 더 잘했다!”고 칭찬을 해주었다. 새 영상을 올릴 때면 “최근 올린 영상 중에서 이번 영상의 반응이 1등이야. 최고야!”라며 디지털 색종이 폭죽을 터뜨려주었다. 그럴 때는 뇌에서 엔도르핀이 분비되면서 희열에 사로잡혔다.
그러나 구독자 수가 늘어나고 수익화가 시작된 뒤에도 광고 수익 자체는 기대한 것에 비해 너무나 미미했고(일반 영상제작 보수의 5분의 1 이하) 성장 속도도 느렸다. 구글은 회사 사정이나 결정에 따라 유튜버들에 대한 계약조건을 일방적으로 바꾸어 통보하기 일쑤였고, 그럴 때마다 개인 유튜버들의 광고 수익률은 더 낮아졌다. 광고를 보지 않는 유튜브 프리미엄 가입자가 늘어날수록 유튜버의 광고 수익은 줄어들었고, 유튜브는 온갖 새로운 수익 장치를 마련하여 이익을 챙겼다.
알고리즘은 내 영상에서 조금이라도 오락성이나 ‘어그로’(자극적인 내용) 요소가 있으면 용케 알아보고 그 콘텐츠를 다수 구독자에게 추천하고 그것이 내 대표영상인 양 소개했으나, 내가 호기심 때문에 일관성 없는 새로운 주제를 건드리거나 대중성이 떨어지는 영상을 만들면 차갑게 외면했다. 나는 점차 알고리즘을 의식하며 영상을 제작하기 시작했고, 경쟁력 있는 콘텐츠를 만들고자 모든 것을 갈아넣었다. 그러자 이제까지 본 적 없는 열광적인 반응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내 채널 속에서 매주 신기록을 세우는 기쁨은 1년도 안 되어 손가락 관절염으로 중단되었다. 인간의 손가락은 너무 많은 컷 편집으로 인한 마우스 클릭을 견뎌내도록 설계되지 않았다. 몇년에 걸쳐 300개가 넘는 콘텐츠를 만들어두었으니, 내가 쉬더라도 그들이 알아서 시청자를 만나고 수익을 낼 거라고 믿었다. 그러나 내가 두어주 작업을 멈추는 일이 반복되자 알고리즘은 나를 게으른 유튜버로 간주하고 추천 자체를 멈추는 눈치였다. 자전거 페달을 밟듯이 나의 꾸준한 노동만이 나의 지난 영상들의 추천 기회를 보증했던 것이다.
수입은 곧 반토막 나더니, 다시 반토막이 되었다. 에이아이 작업감독은 “그동안 너무 무리하셨군요. 걱정 말고 좀 쉬세요”라고 말하는 대신, “작년 이맘때 잘하더니 지금 너무 저조하네” 이런 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마법에서 풀려나듯, 그들이 말하는 대로 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깨달은 건 그 무렵이었다.
이대로 중단하고 떠난다면 피땀 흘려 가꾼 나의 채널, 콘텐츠, 구독자를 그들에게 넘기는 셈이다. 나는 구글의 무정한 에이아이 작업감독과 변덕쟁이 알고리즘 신에게 복수하기로 마음먹었다. 나의 복수는, 작업감독이 말한 성공 공식과 정반대로 행동하는 것이다. 즉, 돈은 다른 일로 벌고, 나의 유튜브 채널은 수익실현이 아닌 ‘자아실현, 공익 기여, 추억 기록’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다. 광고를 실을 간판 가치는 떨어뜨리고 서버 용량만 잔뜩 차지하여 작업감독의 골칫거리가 되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대로 내 속도에 맞춰 제작한 콘텐츠로 내 채널을 채워갈 것이며, 내 방식대로 구독자들과 소통하며 함께 늙어갈 것이다. 나는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다.
※노회찬 재단과 한겨레신문사가 공동기획한 ‘6411의 목소리’에서는 일과 노동을 주제로 한 당신의 글을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12장 분량의 원고를 6411voice@gmail.com으로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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