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다움을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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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청소년들과 책 읽는 모임을 몇 개 하고 있다.
비록 작지만 자칭 괴산의 대표 서점이니 내가 사는 지역에서 책방의 역할을 다하고 싶어 시작한 일이다.
내가 괴산으로 이주한 때와 비슷한 시기에 서울을 떠나 지역으로 갔던, 로컬의 미래와 희망을 꿈꾸던, 내겐 거울 저편의 꿈과도 같았던 이들 예술집단의 좌절을 보며 농촌 청소년들이 첫 번째로 꼽은 인간다움의 정의를 오래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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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말고]
[서울 말고] 백창화 | 괴산 숲속작은책방 대표
지역 청소년들과 책 읽는 모임을 몇 개 하고 있다. 비록 작지만 자칭 괴산의 대표 서점이니 내가 사는 지역에서 책방의 역할을 다하고 싶어 시작한 일이다. 요즘 어린이 청소년들이 책을 안 읽는다지만 그래도 책을 좋아하고 때론 글도 쓰고, 아주 가끔은 작가가 되기를 꿈꾸는 학생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 학생들에게 시골 마을 작은 책방이 해줄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학습 목표가 없고 청소년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시작한 모임이라 토론은 제법 활발하다. 이번 달 중학생들과 가진 모임에선 ‘인간성이란 무엇인가’라는 묵직한 질문이 나왔다. 아마도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는 어떤 특징을 말하는 것일 텐데 그게 무엇일까 각자의 생각을 말해보자 했다. 한 학생이 본능대로 살지 않고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한다는 점이라고 말하자 그렇다면 이성적인 판단이란 무엇인가 질문이 뒤따랐다.
인간이 자기가 주인인 줄 착각해 지구를 망치지 말고 자연과 더불어 잘 사는 쪽을 선택하는 것이라는 답이 즉각적으로 튀어 나왔다. 장맛비가 연일 쏟아지고 있었고 지역에 큰 수해가 이어져 윗집 아랫집 피해가 잇따르던 날이었다. 청소년들도 최근의 이상 기후와 그로 인한 피해가 이미 위기의 상태를 넘어 재난이 된 것을 실감하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그 배후에 자신들이 생각하는 ‘이성적 인간’과 거리가 먼 파괴적인 인간들이 있다는 걸 자각하고 있는 것이다.
어린 학생들과 대화를 마치고 돌아오면서 나의 ‘인간성’에 대해 곰곰 생각해보았다. 생명 있는 것들을 존중하고 연민하는 마음,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 양보하고 배려하는 마음, 옳고 그름을 판단할 줄 아는 마음. 이런 마음을 갖춘 고귀한 인간이 되었으면 했고 그런 이들이 모여 사는 세상을 꿈꾸었다. 그러나 나도 그런 인간이 되지 못했고 그랬으므로 당연히 내가 사는 세상도 그리되지 못했다.
최근에 안타까운 소식을 들었다. 지역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던 예술인 집단이 십 여년 동안 꾸려왔던 터전에서 쫓겨날 위기에 내몰렸다는 소식이다. 시골 폐교를 활용해 극장을 만들고 연극이라곤 평생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마을 주민들과 함께 공연을 올리고 아트 레지던시에 참여한 세계 유명 예술가들과 함께 마을 축제를 만들어온 이들이다.
‘극단 뛰다’에서 ‘예술텃밭’으로, 지금은 또 ‘궁리소 묻다’로 이름은 바뀌었지만 그들이 한결같이 바라보는 지점은 인간 중심이 아니라 ‘나무와 풀과 구름과 하늘과 땅이 그대로 존재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괴산 청소년들이 ‘인간성’의 근본으로 뽑은 덕목을 지키고 실천해온 이들인 것이다. 지난 10여 년의 시간은 이방인이었던 청년들이 지역에 들어와 가정을 꾸리고 뿌리를 내리며 마을의 이야기를 일구고 주민들의 삶 속에 예술이 스며들게 했던 시간이었다. 지자체가 폐교 임대를 지원해주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렇게 일궈낸 기억의 공간과 시간들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세계의 예술가들이 이곳에 모여들어 지역주민과 한땀 한땀 일궈낸 유무형의 성과와 이야기들이 한순간에 허공으로 사라지게 될지 모른다. 돈이 없는 자, 땅을 비워주고 나가야 하는 게 자본주의 원칙이라지만 그동안 얼마나 많은 지역의 단체와 활동가들이 곳곳에서 내몰려 왔나. 헐고 부수는 일은 쉽지만 쉽게 사라져서는 안 될 인간의 마음이라는 것과 예술의 흔적이란 것도 꽤나 가치 있는 것임을 관계자들이 한 번만 더 생각해주면 좋겠다.
내가 괴산으로 이주한 때와 비슷한 시기에 서울을 떠나 지역으로 갔던, 로컬의 미래와 희망을 꿈꾸던, 내겐 거울 저편의 꿈과도 같았던 이들 예술집단의 좌절을 보며 농촌 청소년들이 첫 번째로 꼽은 인간다움의 정의를 오래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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