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철의 까칠하게 세상읽기] 농부 대통령, 입시전문가 대통령
중국을 통일한 진나라 시황제가 죽은 뒤, 어린 아들 호해가 왕위를 물려받았다. 당시 환관 조고는 "아주 귀한 말을 얻었다"며 사슴 한 마리를 왕에게 선물한다. 호해가 "그것은 사슴이 아니냐"고 묻자, 조고는 말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주변 신하들도 조고의 위세에 눌려 사슴을 가르켜 "말"이라고 답했다. 그렇게 사자성어 '지록위마(指鹿爲馬)'가 생겨났다. 옳고 그름을 바꾸는 행위를 일컫는다.
지록위마는 옛날 전제주의나 독재정권에나 존재하는 유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21세기 대한민국 권력주변에서 옳고 그름의 왜곡은 여전해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 시절인 2020년 4월 대통령이 퇴임을 대비해서 경남 양산의 토지를 매입했는데 그 중 절반가량이 농지였다. 즉, 경남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 땅 1115평 중 566평의 지목이 전(田)이었다. 당시 언론과 야당이 농지법 위반이라며 문제 삼자,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양산의 매곡동 사저에서 문 대통령이) 틈틈이 밭을 일궜다. 휴가 때 내려가면 한다. (김정숙) 여사도 밭을 가꾸곤 했다"고 해명했다. 당시 인터넷에서는 문 대통령 부부가 헬기타고 농사지었냐는 비아냥거림이 퍼져나갔다.
'전직 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에서도 권력에 대한 아부가 묻어난다. 1975년 소득세법에서 전직 대통령의 연금을 비과세 소득으로 포함시킨 뒤, 불합리하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지적되어 왔지만 수정되지 않았다. 국민연금, 공무원 연금 등에 대해서는 소득세를 부과하면서도 전임 대통령에 대해서는 예외로 하고 있다. 재임시절 보수의 95%인 금액을 받으면서 세금을 내지 않는 것은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헌법 11조,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납세의 의무를 진다'는 헌법 38조에 위배된다. 전직 대통령에 대해서 예우를 하고 싶다면 소득세의 예외가 아니라 다른 방식을 고민해야 했다. 하지만 최고 권력자의 기분을 상하게 할지 모른다며 누구도 해당 법률을 바꾸려고 나서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의 탈원전 정책에 대해서 고위 공직자가 나서서 반대했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적자 상태인 한국전력이 거액을 들여 나주에 에너지공과대학을 설립, 운영하는 것도 마찬가지. 대통령의 한 마디에 모두 일사천리 진행되었다. 소득주도성장 정책, 과도한 최저임금 인상, 투기 세력 탓만 하는 부동산정책 등에서도 청와대 내부 자성의 목소리는 없었다. 그 결과는 정권교체였다.
윤석열 정부에서는 좀 달라지길 희망했다. 하지만 변한 것은 그리 없는 듯하다. 지난 6월 수능 킬러문항에 대한 대통령의 지시가 논란을 빚자, 국민의힘 정책위원장인 박대출 의원은 "대통령은 대입 제도에 대해 누구보다 해박한 전문가"라고 말했다. 그 근거로 검사시절에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의 대입 부정사건 수사를 지휘한 점을 제시했다. 이주호 교육부 장관도 "수능 문제에 대해서 대통령과 많은 대화를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고, 저도 전문가이지만 놀랐다"고 거들었다. 대통령이 교육문제에 대해 관심이 많고 고민이 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입시전문가라고 말하기는 민망하지 않았을까.
윤석열 대통령은 당선된 지 벌써 500여일이 넘었다. 윤 대통령의 당선 후 첫 발표는 대통령 집무실을 청와대에서 용산으로 옮기는 것이었다. 당시 제왕적 대통령이 되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 출·퇴근길에 기자들을 만나서 적극 소통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MBC기자의 무례한 언사를 이유로 도어스테핑(door stepping)으로 불리던 약식 기자회견을 중단했다. 기자는 대통령의 말을 국민에게 전달하면서 동시에 여론을 대통령에게 전하는 창구이다. 그렇기에 도어스테핑을 재개해 국민의 목소리가 대통령에게 직접 전달되도록 해야 한다.
29일 발표된 한국갤럽의 여론조사에서 윤 대통령에 대한 긍정평가는 35%인데 반해 부정평가는 55%에 달했다. 긍정평가가 1년 전 28%에서 7%포인트 올랐다는데 기뻐해야할까. 아니면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지지도가 29%에 불과하다는 사실에 위안을 삼아야할까. 대통령실이나 국민의힘, 민주당 모두 국민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들만의 권력에 취해 있다고 국민은 여기고 있다. 이러한 국민의 정치 불신은 권력의 자성을 촉구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옳고 그름을 왜곡해서 전달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대통령의 눈과 귀를 가리는 사람은 없는지 면밀히 살펴 경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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