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에너지 보급 빨라지는데···ESS 확충 2031년 이후로 미뤄

세종=심우일 기자 2023. 7. 30.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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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도 더딘 '백업설비 투자 로드맵'
2036년까지 26GW 필요하지만
설비 투자 2031~2036년에 몰려
사실상 차차기 정부서 본격 확충
ESS 부족땐 전력수급 불안 초래
조기 투자 등 육성 정책 마련해야
[서울경제]

탄소 중립 달성을 위한 재생에너지 보급이 빠르게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정작 에너지저장장치(ESS)처럼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을 보완할 백업 설비 투자는 더딘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2036년까지 26GW가 넘는 백업 설비가 필요할 것으로 추산하면서도 이 중 83%를 2031년 이후로 미뤄놓았다. 재생에너지 설비가 향후 13년 내 3배 넘게 급증하는 상황에서 ESS 같은 백업 설비가 제때 마련되지 못할 경우 전력 수급 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30일 홍정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산업통상자원부로부터 받은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른 재생에너지 백업 설비 투자 로드맵’에 따르면 2036년까지 필요한 재생에너지 백업 설비는 총 26.26GW로 추산된다. 산업부는 올해부터 2026년까지 0.21GW에 불과하던 백업 설비 소요량(누적 기준)이 2027~2030년 4.26GW에 이어 2031~2036년에는 26.26GW로 급증할 것으로 계산했다. 2036년까지 필요한 백업 설비의 83%(21.79GW)가 사실상 차기 정부 말부터 차차기 정부 임기 내인 2031~2036년 구간에 쏠려 있는 셈이다. 10차 전기본에 명시된 정부의 재생에너지 확대 계획과 비교할 경우 상대적으로 백업 설비 확충이 더딘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10차 전기본에 따르면 재생에너지 설비 용량은 올해 32.8GW에서 2030년 72.7GW로 늘어나는 데 이어 2036년에는 108.3GW까지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재생에너지 설비 확대 속도를 백업 설비가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다.

날씨나 시간대에 따라 발전량이 들쑥날쑥한 재생에너지의 특성상 이를 보완할 백업 설비 확충은 필수적이다. 특히 송배전 수요는 늘어나는데 송전탑 설치에 대한 주민 수용성이 낮은 만큼 ESS의 중요성은 갈수록 커지는 상황이다. 하지만 정부 로드맵에는 2031년 이후에나 ESS 같은 백업 설비를 본격적으로 늘리겠다는 구상이 담겼다. 국내의 한 에너지 기업 대표는 “송전망은 건설에만 10~20년이 걸리기 때문에 중간에 ESS를 함께 늘리는 방식으로 전력망을 보강해줘야 한다”며 “이 때문에 ESS 보급 확대 속도가 재생에너지보다 빨라야 할 수도 있는데 정부 로드맵은 속도가 너무 느리다”고 지적했다. 홍 의원도 “재생에너지 설비 증가로 계통 불안정성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10년 뒤에나 백업 설비 확충에 나서겠다는 것은 안이한 대처”라고 꼬집었다. 설상가상 ESS는 화재 위험 가능성 때문에 지난해 설치량(0.2GW)이 2018년(3.8GW)의 20분의 1 수준까지 줄어들었다.

이에 대해 산업부는 수요 대비 초과 공급 시 발전을 강제로 멈추는 출력 제어 상황 등을 고려하면 당분간 에너지 저장 수요가 그리 크지 않다는 입장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특정 임계점을 넘어선 뒤에야 태양광발전 증가와 함께 일정 비율로 에너지 저장 설비 수요도 함께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재생에너지 확대 추세와 향후 ESS 산업의 성장성을 함께 고려하면 정부의 백업 설비 확충 로드맵을 보다 구체적이고 현실화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블룸버그신에너지금융연구소에 따르면 세계 ESS 시장 규모는 2021년 110억 달러(약 14조 원)에서 2030년 2620억 달러(약 335조 원)로 9년 만에 20배 넘게 급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현 정부가 ESS 보급 확대에 명확한 신호를 주지 못하면서 배터리 제조 업체들은 국내 ESS 시장을 외면하고 전력 시스템 관련 벤처기업들은 값싼 중국산 배터리를 찾는 악순환이 이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업계 안팎에서는 현 정부가 원전 확대에 힘을 쏟으면서 상대적으로 재생에너지 백업 설비 보급 확충에 소홀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도 지우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11차 전기본에 백업 설비 투자 계획을 앞당겨 반영하는 동시에 구체적인 ESS 육성 정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한 에너지 업계 관계자는 “관급 주도의 ESS 입찰 조건에 산업 경쟁력 확보 방안을 담는 등 민간 ESS 시장을 활성화할 방안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진단했다. 홍 의원은 “윤석열 정부는 ESS 등 백업 설비 설치를 임기 내에 본격적으로 시작할 수 있도록 11차 전기본에 이 같은 내용을 포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종=심우일 기자 vit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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