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은실 한국 문화예술교육 진흥원장 "AI·메타버스 활용···누구나 누릴 문화예술교육 만들 것"

서지혜 기자 2023. 7. 30.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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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이만난사람]박은실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장
유네스코와 미래 문화예술교육 '프레임 워크' 개발 주도적 역할 맡아
첨단기술 기반 시니어까지 수혜 대상 확대···'보편적 문화 복지' 실천
꿈의 오케스트라 등 우수 정책사업, 매뉴얼화 통해 국내외 보급·확산
사진=권욱 기자
[서울경제]

“미래 사회에 우리에게 필요한 역량은 명문화된 지식이 아니라 상황에 대응하는 창의력과 유연한 사고입니다.”

28일 서울 마포구의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에서 서울경제신문과 만난 박은실 원장은 시종일관 ‘보편적 문화예술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국가가 문화예술 교육을 진흥해 창의적 사고를 촉진하고 삶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다양한 관점을 학습하도록 해야 한다”며 “국민의 문화 기본권 측면에서 누구나 전 생애에 걸쳐 문화예술 교육을 받을 기회가 보장돼야 한다”고 말했다.

박 원장은 추계예술대 문화예술경영대학원 교수로 재임하던 지난해 9월 진흥원 원장으로 임명됐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위원 등 문화예술 교육과 관련한 글로벌 무대 경험이 많은 점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실제로 이 같은 경력은 올 5월 프랑스 파리 유네스코 본부에서 열린 ‘다자 회담’에서 큰 역할을 했다.

이 회담은 미래 문화예술 교육 프레임워크를 논의하기 위한 취지로 문화체육관광부와 진흥원의 후원하에 개최됐다. 한국은 이미 2010년 ‘서울 어젠다:문화예술 교육 발전 목표’를 발의하고 유네스코와 협력해 ‘세계 문화예술 교육 주간’ 선포를 이끈 바 있다. 하지만 이후 문화예술계에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메타버스→인공지능(AI)으로 이어지는 급격한 변화의 파도가 몰아쳤다. 13년 전 논의는 유의미하지 않았고 새로운 교육 방식이 요구되고 있다. 이에 따라 ‘서울 어젠다’를 보완하기 위한 후속 프로젝트로 문화예술 교육 프레임워크 개발이 추진되기 시작했다. 한국, 특히 진흥원은 오랜 시간 유네스코와 협력하며 이 프레임워크 개발에 적극적으로 기여해왔다. 5월 열린 다자 회담은 유네스코 회원국을 포함한 국제기구와 정부 간 기구, 기관, 교사, 예술가, 전문가가 모여 미래 교육 방안을 고민하는 자리였다. 한국은 이 자리에서 AI를 통해 국제사회가 미래 문화예술 교육 어젠다를 점검하는 세션을 주도적으로 이끌었다. 당시 박 원장은 ‘디지털과 AI 포커스 세션’에서 “디지털 기술, AI를 활용한 국제 공동 협력 프로젝트를 함께 기획하고 추진하자”고 제안했고 각국 전문가들로부터 긍정적인 호응을 얻었다.

문화예술 교육은 일반 교과와 달리 학생과 교사 간 상호작용 과정이 필수적이다. 이 분야에 비대면에 가까운 AI가 왜 적용돼야 하는지 의문이 남는다. 이에 대해 박 원장은 “물론 일반 교과에 비해 한계가 있지만 기초적 이론 학습 및 개인화된 피드백, 가이드 제공 등 개인 맞춤형 지점에서 AI의 접목이 유의미하다”고 설명했다.

문화예술 교육 분야의 디지털화는 ‘개인화’에 좀 더 집중한다. 박 원장은 “AI의 발달은 삶을 총체적으로 변화시키고 있으며 문화예술 분야도 예외는 아니다”라며 “예전에는 시청각적 경험을 수동적으로 소비하는 방식으로 문화예술을 향유했지만 이제는 적극적 창작 방식으로 바뀌었다”고 최근의 경향을 전했다. 그는 “문화예술 분야는 특히 개별 향유자의 수준과 특성·성향에 맞는 맞춤형 교육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며 “디지털 접근은 문화예술 교육 분야의 격차를 해소하는 데 유의미한 도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나아가 AI 기술이 문화예술 교육 분야에서 ‘계층 간 격차 완화’라는 시대적 과제를 해소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박 원장은 “교육 당국이 2025년부터 학교 교과서를 전면 디지털 교과서로 바꾸려 하는 현 상황에서 계층 간 문화예술 교육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문화예술 교육 분야를 디지털과 AI에 적용하는 방법을 서둘러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기존에는 학교 및 복지 시설 등 취약 계층 중심의 문화예술 교육 프로그램이 절반 이상이었고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도 시공간적 제약 때문에 참여하기 어려운 분들이 많았다”며 “향후 AI·메타버스 등의 기술을 활용한 디지털 기반 문화예술 교육 환경이 조성된다면 누구나 더 가까이, 더 깊게 누리는 문화예술 교육을 실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AI 기술을 통해 문화예술 교육의 진입장벽이 낮아진다면 교육 수혜자의 대상도 넓어진다. 지금까지 진흥원의 문화예술 교육은 대체로 취약 계층과 학교 예술 강사 지원에 한정돼 있었다. AI 도입을 통해 진흥원은 다양한 지역별·계층별·세대별 요구와 특성에 기반한 문화예술 교육을 지원할 계획이다. 박 원장은 “인구구조 변화, 지방 소멸 등 사회적 현안에 발맞춘 문화예술 교육의 역할과 방향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이 같은 계획을 설명했다. 누구나 공평하게 문화예술 교육을 누릴 수 있는 보편적 문화 복지를 실천하기 위해 생애 주기 관점에서 사업을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특히 박 원장은 시니어를 대상으로 한 문화예술 교육의 발전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한국은 현재 급속도로 저출산·고령화 사회에 진입하고 있다. 이에 따라 진흥원은 지난해 시니어를 위한 비대면 문화예술 교육 지원 사업을 진행해 디지털 취약 계층으로 분류되는 노인을 대상으로 한 사업을 확대하기도 했다. 디지털 소외 계층으로 여겨지는 시니어를 오히려 디지털을 통해 문화예술 교육의 향유자가 되게 한 셈이다. 박 원장은 “국민이 일상 속 문화예술 교육을 체감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향후 노인·장애인 등 문화 취약 계층의 문화예술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기획 사업을 강화해나가려 한다”고 말했다.

한편 박 원장은 남은 임기 동안 진흥원의 위상을 제고하기 위해 고민하고 있다. 진흥원은 오랜 시간 계층 간 문화예술 교육 기회 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해 시민들에게 제공해왔다. 그간 진흥원에서 개발하거나 실행한 프로그램은 1000여 가지에 이른다. 수능 위주의 한국 교육 특성상 문화예술 교육은 ‘높은 비용’이 수반되는 분야로 여겨진다. 이 때문에 학생들의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전공생이 아니라면 문화예술 교육을 포기하고 국어·영어·수학 위주의 교육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박 원장은 “이런 분위기는 성인이 돼 문화 생활의 격차, 나아가 삶의 질 차이로 이어진다”며 “어린 시절부터 전 생애에 이르기까지 공적 영역에서 문화예술 교육이 폭넓게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진흥원은 그간 유초등생을 대상으로 ‘꿈의 오케스트라’ 등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해 시민들에게 제공해왔다. 꿈의 오케스트라는 베네수엘라의 엘 시스테마 철학을 바탕으로 아동·청소년들이 오케스트라 합주 활동을 통해 건강한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문화예술 교육 지원 사업이다. 2011년부터 시작해 올해 13주년을 맞은 꿈의 오케스트라는 현재 49개 거점 기관에서 2700여 명의 단원이 활동하고 있다. 5월 열린 다자 회담에서 공연한 ‘꿈의 댄스팀’은 수많은 글로벌 정책 담당자와 전문가들에게 큰 감동을 주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우수한 프로그램이 국내에 잘 알려져 있지는 않다. 들인 비용과 활동에 비해 홍보가 부족한 탓이다. 박 원장은 “진흥원이 개발한 ‘꿈의 오케스트라’ ‘예술꽃 씨앗학교’ 등은 국내뿐 아니라 외국에서도 인정받은 우수한 정책 사업”이라며 “K문화예술교육의 매뉴얼화, 아카이브를 통해 국내외 보급과 확산에 주력해 국제 무대에서 한국 문화예술 교육의 위상을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나아가 정책 기획의 전문성과 독립성을 높여 문화예술 교육을 선도하는 정책 진흥 기관으로 성장하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그는 “2025년이면 문화예술 교육 정책이 시작되고 기관이 설립된 지 20주년이 된다”며 “특정 대상을 위한 문화예술 교육에서 탈피해 모든 국민이 일상 속에서 더 가까이 문화예술 교육을 누릴 수 있도록 정책을 전환하려 한다”고 말했다. 또 “미래 사회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역량은 명문화된 지식이 아니라 상황에 적응하고 대응하는 창의력과 유연한 사고, 수많은 정보 속에서 여러 가지를 꿰뚫어보며 판단하는 통찰력”이라며 “국민의 문화 기본권 측면에서 누구나 전 생애에 걸쳐 살아가면서 문화예술 교육을 통해 성장하고 예술의 힘을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보장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지혜 기자 wis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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