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명] 누가 '괴물'을 키웠나
'참담한 교권침해' 끊이지 않는데
학부모 민원 등이 절반가량 차지
'첫번째 학교' 가정의 변화 없으면
좋은 대책 나와도 큰효과 없을것
“친구들한테 욕하면 안 돼. 항상 말을 조심해라.”
“저요? 선생님, 학교 잘리고 싶으세요?”
서울의 한 초등학교 6학년 교실에서 교사와 학생이 주고받은 대화다. 지인의 아내인 초등학교 교사가 직접 겪은 일이다. 교사는 할 말을 잃어 그냥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서이초교 교사의 극단적 선택 이후 교권 보호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참담한 수준의 교권 침해 사례들이 언론 보도를 통해 쏟아지고 초등학교에 이어 중·고등학교 교사들의 ‘미투’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 주말에는 35도를 웃도는 폭염에도 주최 측 추산 3만 명의 교사가 거리로 나와 “교권 보호”를 외쳤다.
사실 교권 침해가 문제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코로나19로 비대면 수업이 늘어 교권 침해가 다소 줄었지만 엔데믹 전환 이후 대면 수업이 회복되자 다시 코로나19 이전의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가 매년 5월 발표하는 ‘교권 보호 및 교직 상담 활동 보고서’를 보면 그런 양상이 확연하다. 교총이 올 5월에 발표한 보고서와 코로나19 이전인 2020년에 발간한 보고서를 보면 놀랍게도 비슷해 어느 보고서가 올해 것인지 헷갈릴 정도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교총에 접수된 교권 침해 상담 건수는 520건으로 2019년의 513건과 비슷했다. 이 중 학부모가 저지른 교권 침해는 지난해 241건, 2019년 238건으로 전체의 절반가량을 차지했다. 교총은 올해 보고서에서 “악성 민원을 제기하는 학부모에 대해 학교교권보호위원회가 강제력 있는 엄정한 조치를 내릴 수 있도록 권한을 부여해달라”고 요청했다. 3년 전 보고서에도 같은 내용이 담겨 있다.
묵묵부답이던 정부와 정치권은 꽃다운 청춘의 한 교사가 죽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부랴부랴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교권 침해 행위를 생활기록부에 기재하는 방안, 생활지도에 아동 학대 면책권을 부여하는 방안, 교권보호위원회 활성화, 학생인권조례 개정 등 내용도 다양하다. 교육부는 이런 방안들을 검토해 다음 달까지 대책을 발표할 예정이다. 교육계가 수년째 요청해왔던 교권 보호 방안이 이번에는 제대로 이뤄져 서이초교 교사의 죽음이 헛되지 않기를 바란다.
다만 걱정스러운 것은 거론되는 대책들이 교사·학생·학부모의 권리 균형에 집중하는 ‘대증요법’이라는 점이다. 다시 교총의 보고서로 돌아가 보자. 교권 침해의 절반은 ‘악성 민원’을 일삼는 학부모가 저지른다. 또 다른 한 축은 학생이다. 학부모와 학생으로 구성된 ‘가정’이 교권 침해의 주범인 셈이다. 근본적이고 지속적인 변화가 가정에서부터 시작돼야 하는 이유다. 학생의 책을 찾아주다 책을 학생의 손목에 떨어뜨린 교사를 아동 학대로 신고하고, 수업을 방해하는 학생에게 “선생님 머리 아프게 하지 마라”고 말한 교사를 정서 학대로 고소하는 학부모들의 반성과 변화가 먼저다. 아울러 자신의 자식을 소중히 여기는 만큼 교사도 누군가의 자식이라는 점을 인식하고 그들을 존중해야 한다. 부모가 교사와 학교를 존중하지 않으면 ‘부모의 거울’인 자식은 부모를 그대로 닮는다. 수업 방해를 지적하는 교사를 때리고, 수업 시간에 대놓고 잠을 자고, 수업을 시작해도 교실로 들어가지 않는 ‘괴물’이 되는 것이다. 학교와 교사에 대한 존중과 친구들에 대한 배려를 가르치는 가장 첫 번째 ‘학교’는 가정이다.
아무리 좋은 제도라도 토대가 마련돼야 제대로 효과를 발휘한다. 교사·학생·학부모로 구성된 교육 3주체들이 근본적으로 변화해야 교권 보호 대책이 성과를 낼 수 있고 또 다른 비극을 막을 수 있다. 교사는 물론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을 서로 배려하고 존중하며 민폐를 끼치는 것은 부끄러운 일임을 가르치는 가장 중요한 첫 학교는 바로 가정이다. 집에서 새는 바가지는 밖에서도 샌다. 이뿐 아니라 다른 바가지도 깬다. 그리고 그 바가지는 부모의 거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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