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기후에 '철없는 농산물'이 경쟁력 된 대형마트
'제철 식재료' 개념 모호해져
폭우가 떠나니 이번에는 폭염이다. 모든 기상 현상 앞에 ‘최악의’ ‘이례적인’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 이상기후의 시대. 계절별 먹거리인 ‘제철’ 개념이 점차 무색해지면서 유통 업체들은 날씨에 영향을 덜 받는 스마트팜 기술이나 관리·저장 기술 투자로 ‘철 없는 신선’ 강화에 공을 들이고 있다.
30일 유통 업계에 따르면 이마트는 전국 주요 매장에서 이달 7일부터 여름 딸기를 팔고 있다. 딸기는 저온성 작물로 여름에 생산이 어려워 그동안 백화점 같은 소수 유통 채널에서만 비교적 비싼 가격에 판매해왔다. 그러나 기존 철인 겨울·봄 외에도 맛 좋은 딸기를 찾는 고객 수요가 늘자 이마트는 스마트팜 농가와 계약을 맺고 올해부터 여름 상품을 판매하기로 했다. 현재 선보이는 딸기는 강원도 평창 대관령 해발 600m 지역에서 고랭지 농법으로 생산한 아라베라 품종이다. 8월 초에는 프리미엄 딸기로 인기가 많은 ‘금실 딸기’도 추가 도입해 10월까지 선보일 계획이다. 이를 위해 이마트는 경남 사천에 있는 스마트팜 천장에 특수 냉동기를 설치해 낮 평균온도 23~25도, 야간 10도를 유지하도록 했고 그 결과 겨울 생산 상품과 같은 당도를 그대로 실현할 수 있었다.
외국에서 연구원을 초빙해 선도 관련 교육을 받고 판매 품목을 확대하기도 한다. 이마트는 최근 ‘바로 먹는 아보카도’ 상품을 출시했다. 그동안 국내 주요 마트에서는 아보카도의 높은 선도를 위해 청색 아보카도 상품을 위주로 판매해왔다. 기존 청색 아보카도는 구매 후 가정에서 3~4일 정도 후숙하고 먹어야 한다. 고객 입장에서는 시간·편의상 구매력이 떨어지는 ‘덜 익은 상품’일 수 있다. 바로 먹을 수 있는 아보카도를 팔기 위해 이마트는 올 6월 외국 아보카도 협력사 연구원을 직접 초빙해 아보카도 후숙 기술을 별도로 배웠고 현재 이마트 매장에는 청색 아보카도와 후숙도가 높은 갈색 아보카도 두 종류를 함께 판매하고 있다. 선택지가 늘면서 아보카도 7월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5.4% 증가했다.
계약 농가를 늘려 전용 납품처와 품목도 확대하고 있다. 홈플러스는 ‘홈플러스 신선 농장’을 운영하고 있다. 신선 농장은 농가와 손잡고 재배부터 수확·유통까지 협업하는 프로그램으로 현재 과일 품목은 10개를 운영 중이며 올 3월 기준 700곳인 농장 수를 연내 1000곳까지 늘릴 계획이다. 이 같은 협업 확대 속에 홈플러스의 여름철 대표 과일에도 최근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홈플러스 고객 소비 데이터에 따르면 올 6월 체리·살구의 매출 신장률이 수박·참외를 앞질렀다. 올 6월 8~21일 과일 전체 품목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약 22% 신장한 가운데 체리가 523%, 살구가 382% 늘었고 천도복숭아 58%, 배 43%, 사과 40% 순으로 신장률이 높았다. 물론 판매량으로는 여전히 수박이 상위 품목이지만 지난해에는 매출 상위 목록에 없었던 봄가을 제철 과일들이 두루 포진되며 변화한 고객들의 수요와 공급 환경이 판매 결과로 모두 반영된 것이다. 김종열 홈플러스 과일팀장은 “때 이른 무더위가 작황에 영향을 준 데다 본격적인 장마철을 앞두고 6월 초 과일 당도 보장 프로젝트 등을 시행하면서 이 같은 결과가 나타났다”며 “고온·장마 등 날씨 변화에 예민한 과일을 일 년 내내 제공할 방법을 계속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가장 신선할 때’ 대량으로 사들여 그 상태로 오래 보관하다 팔기도 한다. ‘CA(Controlled Atmosphere)’라는 기술을 적용한 저장소 운영을 통해서다. CA는 온도·습도·공기 중의 산소와 이산화탄소의 농도를 조절해 농산물의 노화를 억제하고 수확했을 때의 맛과 신선도를 유지한다. 대기 중 산소 농도는 낮추고 이산화탄소 농도는 올려서 원물의 품질 변화를 최소화한다. 현재 국내에서는 이마트와 롯데마트가 이 창고를 운영하고 있으며 각각 1000억 원 이상이 투입됐다. 이마트는 2012년 자체 농산물 직영 센터인 후레쉬센터를 만들면서 저장 기술 중 하나로 CA를 적용했는데 총 19개의 저장 룸에 5000톤 물량을 보관할 수 있다. 이 외에도 병충해에 강한 농법을 적용한 농산물, 자연재해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산지의 물량을 확보하는 등 대체·이색 품종을 발굴하는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 식품 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상기후로 농산물 시세가 급등해 물량이 달리는 사례가 많다”며 “미리 산지와 물량을 확보하고 가격 상승기에 저렴하게 방출·판매하는 체계적인 연간 사이클이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고 전했다.
송주희 기자 ssong@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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