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시행후 한곳서 6명 사망···"대기업도 버거운데 中企는 어쩌나"
제조·건설업 비중 33% 달하는 韓
산재사고사망률 OECD 하위권
원·하청 구조속 고령자 취업 늘어
1년 내 사망사고 재발률도 38%
"사후 처벌 강화만으론 효과 없어
사회 전반 재해예방 체계 갖춰야" 중>
지난해 3월 근로자 A 씨가 이동하던 전선 드럼에 맞아 목숨을 잃었다. 4월에는 다른 근로자 B 씨가 굴착기와 철골 기둥에 몸이 끼어 사망했다. 같은 해 8월에는 콘크리트 펌프카 붐대가 부러지면서 근로자 C 씨와 D 씨가, 10월에도 이동식 크레인에 부딪힌 근로자 E 씨가 목숨을 잃었다. 올해 7월 콘크리트 타설 장비에 깔려 숨진 F 씨까지 2년도 안 돼 근로자 6명이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믿기 어렵지만 이들 사고는 모두 시공 능력 순위 3위인 굴지의 대형 건설사 1곳에서 2년도 안 돼 일어난 중대재해들이다. 고용노동부가 지난해 네 차례에 걸쳐 이 건설사의 시공 현장을 감독했지만 사고 재발을 막지 못했다. 고용부 안팎에서는 “대형 건설사가 이 정도인데,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건가”라는 우려가 나올 정도다.
내년 1월 27일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 확대 시행(50인 근로자 사업장·공사 금액 50억 원 미만 건설 현장)된다. 문제는 인력과 시스템을 갖춘 대형 건설사들도 중대재해 사고를 막지 못하는데 모든 것이 부족한 중소기업들이 제대로 대처할 수 있겠는가 하는 점이다. 중소기업은 대기업에 비해 현장 관리 범위는 적더라도 인력·체계·정보·문화 등 안전사고 예방 능력이 낮다. 기업이 잘못해서만은 아니다. 단기간에 개선하기 힘든 산업구조적 문제가 배경에 깔려 있다. 처벌만으로 중대재해를 줄이기 힘들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30일 고용부에 따르면 한국의 지난해 산재 사망자는 874명으로 사고사망만인율(근로자 1만 명당 사망자 수)은 0.43%에 달한다. 9년째 0.4~0.5%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2021년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으로 보면 38개국 중 34위다. 1970년대 영국(0.34%)보다도 못하고 독일·일본과 비교해도 30년이나 뒤떨어진 수준이다.
산업 현장의 사망 사고가 줄지 않는 데는 기업의 잘못도 있지만 산업구조적인 측면도 배제할 수 없다. 제조·건설업은 기계를 다루고 위험한 공사 현장에서 작업을 하는 만큼 사고 빈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중대재해의 70%는 제조·건설업에서 발생한다. 문제는 우리나라의 제조·건설업 비중이 다른 나라와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높다는 점이다. 2020년 기준 한국의 제조·건설업 비중은 33%로 독일(25.8%)과 일본(25.9%)을 크게 앞서고 영국(15.4%)보다는 2배 이상 높다. 그만큼 재해 발생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만연한 원·하청 구조도 위험을 가중시킨다. 위험을 외주화하다 보니 하청 업체에서 발생하는 사망 사고는 40%에 이른다. 고령자와 외국인 근로자 비율이 늘어나는 것도 문제다. 고령층(55~79세)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60.2%나 되고 외국인 근로자(E-9 비자)도 내년에는 역대 최대인 11만 명으로 늘어난다. 경영자만 처벌하면 사망 사고 위험이 줄어들 것으로 기대하기 힘들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한 번 중대재해가 일어난 기업에서 다시 사고가 발생한다는 점도 문제다. 고용부가 2001~2021년 첫 근로자 사망 사고 발생 후 1년 이내 재발 사고 비율을 조사한 결과 37.9%에 달했다. 2001~2020년 중대재해가 발생했던 사업장의 사고 재발 확률도 일반 사업장의 6.7배로 나타났다.
중소기업은 고질적인 인력난에 이직·퇴직도 대기업에 비해 잦다. 기존 직원으로 안전 시스템을 만들더라도 신규 직원이 들어오면 사고 예방 체계를 다시 숙지해야 하는 상황이 무한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한 중소기업 직원은 “중대재해처벌법은 사고를 예방할 수 있는 노력이 있다면 처벌을 안 받는다고 들었다”며 “업종·장비·인력 모두 제각각일 텐데 정말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고 인정되는 게 맞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정부와 국회는 급한대로 중소기업 스스로 안전 예방 능력을 높이는 지원에 방점을 찍은 분위기다. 올 6월 국민의힘은 정부가 안전 취약 계층의 사고 예방 사업 비용을 지원하는 중대재해처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국회는 이 법안이 시행되기 위한 정확한 비용 추계조차 하지 못했다. 2020년 기준 중소기업이 728만여 개에 이르기 때문이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중대재해는 기업 차원의 대응과 사후 처벌만으로 크게 효과를 보기는 쉽지 않다”며 “무엇보다 (사회 전반의) 재해 예방 체계를 마련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양종곤·신중섭 기자 ggm11@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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