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데스크] 중국 청년들의 아우성

이향휘 기자(scent200@mk.co.kr) 2023. 7. 30.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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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청년 실업률 21.3% 고공행진
'탕핑'족에 '전업자녀'까지 등장
청년들 절망 넘어 무기력 상태
시진핑 '중국몽' 최대 시험대

"2년간 일하지 않았다. 놀기만 했지만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스트레스의 주요 원인은 남과의 비교, 어른들의 낡아빠진 생각이다."

2021년 4월 중국 포털 바이두에 '탕핑이 곧 정의'라는 제목의 게시물이 올라왔다. '탕핑'이란 중국어로 '평평하다'는 뜻. 바닥에 드러누워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한다. 노력이 배신하는 시대에서 '숨만 쉬고 살겠다'는 일대선언이 중국 MZ세대를 파고들며 하나의 저항정신으로 굳어졌다.

요즘엔 탕핑보다 더 비관적인 '바이란(擺爛)'이라는 말도 등장했다. 사회가 썩어가도록 그냥 내버려두겠다는 뜻이다. 부모에게 마냥 기생하는 캥거루족이 아니라 당당하게 근로계약서를 쓰고 부모 밑에서 일하는 '전업자녀'도 출현했다고 한다. 이 같은 신조어들은 하나같이 유교식 출세주의를 정면 부정한다. 노자식(式) 무위자연이라고나 할까. 그만큼 중국 사회가 어지럽다는 뜻일 것이다.

실제 중국 경제는 빠르게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지난 6월 청년실업률은 다시 한번 고점을 갈아치웠다. 공식 수치만 21.3%다. 한때 살인적인 청년실업으로 고전하던 유럽도 현재 15%를 넘지 않는다. 중국만이 20%를 넘고 있다.

중국 청년들은 지난해 11월만 해도 이러한 절망감을 '백지시위'로 표출했다. 이제는 분노와 절망의 단계를 넘어 체념과 무기력 상태로 빠져드는 듯하다. 청년들은 '아Q정전'으로 유명한 루쉰의 소설 '쿵이지(孔乙己)'를 소환해 자신들의 처지를 한탄한다. 소설에서 쿵이지라는 서생은 날마다 좀도둑질로 연명하며 살지만 절대로 남루한 장삼만큼은 벗지 않는다. 대학 졸업장을 갖고도 취업에 번번이 실패한 젊은이들은 "열심히 공부한 끝에 쿵이지처럼 됐다"며 쓸데없이 너무 많이 공부했다고 한탄한다.

최근 장단단 베이징대 교수팀은 중국의 청년실업률은 공식 수치의 2배인 40%가 훌쩍 넘는다고 진단했다. 중국의 16~24세 청년 인구는 총 9600만명인데 이 가운데 3200만명은 노동인구고 6400만명은 비(非)노동인구다. 비노동인구 중 학생 4800만명을 빼면 구직 의지 자체가 없는 이들, 즉 탕핑족은 1600만명에 달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직업이 없으면 결혼도 출산도 꿈꿀 수가 없다. 자연스럽게 사회 불만 세력이 늘어난다. 경제학자들은 '히스테리시스'라는 개념을 통해 노동시장에서 오랫동안 이탈하면 복귀하기가 어렵다고 지적한다. 탕핑족이 '중국몽'을 꿈꾸는 시진핑 체제에 '트로이의 목마'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중국 정부는 관영매체를 통해 '탕핑 정신'은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것이라고 공격하더니 이제는 느닷없이 청년들의 농촌행을 권유하고 있다. 지난 2월부터 중국에서는 '농사를 짓자'는 예능 프로그램이 방영되고 있다. 이른바 신(新)하방(下放·도시 청년을 농촌으로 내려보낸 정치 캠페인) 운동의 일환이라는 평가다. 지난 5월 시진핑 주석은 청년들을 향해 다섯 차례나 "스스로 찾아서 고통을 곱씹으라"고 촉구했다. 그 역시 1969년 하방돼 7년 동안 농민들과 일했다.

하지만 '라떼(나 때)는 말이야'가 중국에서만 통하리라는 법은 없다. 청년들이 원하는 일자리는 양복을 벗고 소매를 걷어붙이고 땀 흘리는 육체노동이 아니다. 에어컨이 빵빵 터지는 근사한 건물에서 안정적인 고소득이 보장된 정보기술(IT)이나 금융 업계 일자리를 원한다. 얼마 전까지 시진핑 정부가 규제의 칼날을 들이밀었던 업종이다. 더구나 '반간첩법' 시행에 외국 기업들은 언제든 짐을 쌀 준비를 하고 있으니 자업자득인 셈이다.

올여름 중국 고용시장엔 1100만여 명의 졸업생이 추가로 쏟아진다. 청년들에게 매력적인 일자리를 제시하지 않는 한 '꼼수'는 통하지 않을 것이다. 더 많은 탕핑족과 쿵이지를 소환할 뿐이다.

[이향휘 글로벌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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