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초라도 이런 감사원은 없었다’···역대급 수준의 전 정권 고위직 감사 [감사원, 누가 감사하는가②]
사무처 중심, 감사위 패싱 두드러져
“저희가 나름 독립적으로 어느 시대나 임무에 충실하고 있다. 다만 지금 초기 시기는 전 정부가 감사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이 지난 14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한 발언은 원론적으로 맞는 말이다. 착수부터 감사위원회의 공개 의결까지 수개월 이상 소요되는 감사 특성상 정권 초기 감사 결과 발표는 전 정권 관련 내용이 다수일 수 있다.
문제는 전 정권 감사 정도가 원론적 수준을 넘어선다는 점이다. 경향신문이 30일 이명박 정부부터 현재까지 정권 초 진행된 감사를 되짚어 본 결과 통상 ‘전 정권 인사’로 불리는 고위직 상대 수사요청·고발 사례는 윤석열 정부 들어 압도적으로 많았다. 게다가 이전 정권 초기 감사원의 수사요청·고발은 대부분 비위와 관련된 반면 현 정부 들어서는 업무와 관련된 것도 다수 포함됐다. 감사원은 또 감사원 내 법원 격인 감사위원회의 세부 의결도 없이 특별조사국의 상시 감찰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정권 초 특성이란 말로 뭉뚱그릴 수 없는 ‘정치적 감사’라는 비판이 제기되는 것은 이런 이유들 때문이다.
■두드러진 전 정권 인사 수사요청·고발
감사원이 매년 5월 국회에 제출하는 ‘국가결산검사보고’를 보면 감사원은 이명박 정권 초기인 2008년 32건·106명, 박근혜 정부 초기인 2013년 52건·72명, 문재인 정권 초기인 2017년 35건·75명, 윤석열 정부 초기 지난해는 24건·60명에 대해 수사요청 및 고발한 것으로 집계됐다. 윤석열 정부 들어 수사요청·고발 숫자가 줄어든 것처럼 보이는 결과다.
하지만 전 정권 인사로 초점을 맞추면 숫자의 허상이 드러난다. 윤석열 정부 들어 현재까지 1년 2개월 남짓 동안 감사원은 최소 5명의 지난 정부 고위급 인사를 수사요청하거나 고발했다. 서훈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서욱 전 국방부 장관·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전현희 전 국민권익위원장 등이 대상이다. 주로 거론된 이들의 혐의는 직무유기, 직권남용, 허위공문서 작성 등으로 대부분 업무와 관련돼 있다.
야당 인사를 포함하면 범위는 더 넓어진다. 감사원은 윤석열 대통령 당선 후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활동 기간인 지난해 4월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을 수사요청했다. 김석준 전 부산시교육감은 해직교사 부당 특채 혐의를 들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고발했다. 전 정권 인사라 할 만큼 고위직은 아니지만 비영리 민간단체 감사, 태양광 사업 비리 감사 등 소위 현 정권 ‘코드 감사’에 따른 수사요청도 이어졌다. 이들 감사의 착수 시기는 윤석열 대통령 취임 이후였다.
■MB 정부·문재인 정부 때도 없던 수준
이전 정부 감사원은 달랐다. 이명박 정부 감사원에선 전 정권 핵심 인사 상대 수사 요청 또는 고발 사례가 딱히 없었다. 관할 청장·공기업 사장 등이 주 대상이었고, 혐의도 업무와 큰 관련이 없는 개인 비위가 두드러졌다. 다만 특별 감사에 따라 정연주 당시 KBS 사장 해임 요구를 한 적은 있다.
오히려 감사원이 현 정권 청와대 수석을 조사하는 이례적 장면도 보였다. 이명박 정부 당시 임명된 박병원 경제수석은 공적자금이 투입된 금융기관 일제 감사 과정에서 감사원 조사 대상에 올랐고, 이 사실이 알려진 며칠 뒤 사의를 표했다. ‘보수 정권 재창출’ 격이었던 박근혜 정부 때는 눈에 띄는 전 정권 인사 상대 수사요청·고발 사례가 딱히 없었다. 새정치민주연합 소속이던 김학규 경기 용인시장을 부동산 개발업자에게 뇌물을 받고 개발허가를 내준 혐의로 수사요청한 것 정도다.
정권 교체 후 ‘적폐 청산’ 구호를 앞세운 문재인 정권에서도 전 정권 인사 상대 수사 요청은 많지 않았다. ‘최순실 게이트’ 연장 선상에서 수사 요청 대상이 된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 정도가 눈에 띄는 사례다. 전 정권 인사는 맞지만, 2016년 12월 여야 합의에 따른 감사 결과여서 전 정권 인사를 타기팅한 사례로 보기도 어렵다. 국정농단 수사 후속성인 신규면세점 사업자 선정 관련 감사에서는 천홍욱 당시 관세청장이 사업계획서 파기 혐의로 고발됐다. 감사원은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살리기 마스터 플랜’과 관련해 절차상 하자 등을 발견했으나 공소시효 경과를 이유로 별도 징계 요구나 수사요청은 하지 않았다. 야당 인사 상대 감사는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당시 자유한국당) 비서관 김모씨의 부당취업 의혹 관련 최흥집 강원랜드 전 사장을 수사요청한 것이 눈에 띄는 정도다. 박근혜 정부 시절 대북확성기 사업 등에 대한 감사도 했다.
■5건 수사 요청 모두 ‘감사위 패싱’ 경로
윤석열 정부 감사원이 수사요청·고발로 나아간 사례는 모두 감사원 내 법원 역할을 하는 감사위원회의를 ‘패싱’할 수 있는 경로를 따랐다. 김 전 장관 수사요청으로 이어진 4대강 감사는 ‘공익감사청구’에서 시작됐다. 공익감사청구는 감사원 사무처가 감사 개시 여부를 결정할 수 있어 감사원의 정치적 판단이 개입될 여지가 크다.
감사위를 거치지 않을 수 있는 또 다른 경로인 특별조사국의 감찰이 적극 활용됐다는 점도 특징이다. 감사원이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감사원은 지난해 감사위 의결 없이 총 6건 특정사안감사에 나섰다. 주기적으로 실시하는 ‘공직비리 기동감찰’, ‘선거철 공직기강 점검’을 제외하면 ‘비영리민간단체 지원실태’, 전 전 권익위원장 감사로 알려진 ‘공직자 복무관리실태 등 점검’, ‘서해 공무원 피살사건 관련 점검’, ‘KBS 수신료 부과 관련 감사제보사항’이 전부다. KBS 감사를 제외하고는 모두 특별조사국이 맡았다.
특별조사국은 감사계획과 별도로 움직일 수 있어 감사원 내 ‘기동대’라 불리는 조직이다. 감사원은 감사위에서 ‘상시 공직 감찰’을 포함해 ‘연간 감사 계획’을 의결하기에 특조국 감찰은 문제가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감사원 내에서는 “특조국 감찰도 감사위의 구체적인 의결을 받아야 하며, 서해 피격 사건의 경우 상시 공직 감찰과는 성격이 다르다”는 비판이 나온다.
최근 김숙동 특별조사국 제1과장이 특조국장 자리에 올랐다. 김 국장은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과 월성원전 감사를 함께한 측근이다. 지난해 8월 부이사관으로 승진한 지 1년이 채 되지 않아, 감사원 역사상 가장 빠른 승진 사례로 꼽힌다.
조문희 기자 moon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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