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 칼럼] 베트남은 모두에게 황금의 땅이 아니다
지난달 23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한·베트남 비즈니스 포럼'이 열렸다. 포럼에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등 4대 그룹 회장과 양국 기업인 그리고 윤석열 대통령과 팜민찐 베트남 총리가 참석했다.
포럼에서는 공급망, 기후변화, 디지털 분야에 대한 협력과 양국 간 상생 생태계 구축을 위한 논의가 이어졌다. 양국 정부는 2030년까지 교역 규모를 1500억달러로 확대한다는 목표도 내놨다.
이날 기업인들은 이구동성으로 베트남이 최적의 투자처라고 말했다. 베트남은 중국과 미국에 이은 한국의 3대 교역국이며, 한국은 베트남의 1위 해외직접투자(FDI) 국가다. 지난해에는 수교 30주년을 맞아 양국 관계가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로 격상됐다.
이처럼 베트남은 우리에게 황금의 땅이자 기회의 땅이다. 하지만 모두에게 기회가 있는 것은 아니다. 베트남 사업의 현실은 "겉으로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다"란 의미의 사자성어 '견자비전(見者非全)'에 비유할 수 있다.
삼성전자는 베트남에 6개의 생산·판매법인과 연구개발(R&D)센터를 두고 있으며 전 세계에 판매되는 삼성전자 스마트폰 물량 절반 이상이 베트남에서 생산되고 있다. LG전자는 올해 베트남 R&D센터를 법인으로 승격시켰으며 전장사업도 키우고 있다. 외부에 보이는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의 모습이다.
그런데 한국 기업들의 생태계에 좀 더 깊숙이 들어가 보면 피눈물 흘리며 베트남을 떠난 중소기업들도 있다. E사는 A대기업과 한국에서 거래하던 회사였다. A사에 포장재를 납품하는 E사는 A사의 권유로 베트남 호찌민 진출을 결정했다. 150억원을 투자해 A사 공장 인근에 생산설비를 만들었다. 공장장과 직원 7명을 A사 공장에 두 달간 파견하는 등 납품에 차질이 없도록 준비했다. A사 베트남법인 협력회사 등록 절차도 진행했다.
하지만 등록 과정이 절반가량 끝난 시점에 거래를 못하겠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A사 출신들이 만든 협력사와 거래하겠다는 이유에서다. E사는 본사에 하소연했지만 소용없었다.
하지만 E사는 여기에서 포기하지 않았다. 다시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 대기업 B사를 뚫었다.
웃음도 잠깐. 비극은 또다시 찾아왔다. B사는 베트남에서 만든 모듈 제품을 러시아에 있는 공장에 공급해 완제품을 생산하는 회사였다. 그런데 2022년 2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했다. 전쟁 여파로 러시아 공장이 문을 닫으면서 B사는 베트남에서 철수를 결정했다. B사와 거래하던 E사도 베트남 사업을 접을 수밖에 없게 됐다.
E사와 같은 사례가 최근 베트남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고 한다. 대기업 성장 뒤에 가려 숨겨진 그늘이다. 정부와 대기업은 베트남에서 올린 성과 알리기에 앞서 중소기업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기를 바란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건전한 동반자 관계와 정부의 지원이 해외에서 K산업 생태계를 조성하는 데 필요하다.
K기업가정신의 한 축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 수행이다. 요즘 유행하는 ESG경영(환경·책임·투명경영)이다. K기업가정신이 베트남에도 스며들어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함께 웃으며 성장하는 사례가 나오길 기대한다.
[정승환 재계·ESG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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