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춘추] 51을 주고 49를 갖기
나는 해양학자다. 정확히는 해양생태학자다. 해양생태학은 사회학과 유사하다. 사회와 인간의 관계를 보듯 해양 환경과 해양생물의 관계를 탐구한다. 나라 안팎으로 난제가 많은 사회처럼 바다도 마찬가지다. 서식지 훼손, 생물다양성 파괴, 환경오염, 기후 열대화, 수산자원 감소 등 풀어야 할 숙제가 산더미다.
'학제 간 연구'는 19세기 들어 과학자들이 '관점'보다 '문제'를 우선시하는 인식으로부터 출발했다. 초학제, 교차학제, 다학제 등과 혼용되나 여러 학문 간 병렬 결합은 학제 간 연구로 보기 어렵다. 이는 융합연구다. 이런 점에서 해양학도 융합과학 성격을 갖는다. 다양한 기초 분야가 동시에 필요하기 때문이다. 종합과학인 해양학도 이제 학제 간 연구가 대세가 됐다.
나의 해양학 학제 간 연구는 엉뚱하게 시작됐다. 해양오염을 연구하며 접했던 독성학을 계기로 박사 후 캐나다 서스캐처원대 독성센터에 취직했다. 거기서 엉뚱한 천재 물리학자를 만났다. 그는 내게 원초적이나 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했다. 독성센터에 있다고 하니 '독성'이 무엇인지 물었던 것이다. 지금 나는 그 물리학자와 함께 독성을 연구한다. 독성을 물질의 반응 관점에서 물리화학적으로 이해하는 연구다.
물질의 독성이 정해진 것이라면 믿을까? 마치 인간 유전자처럼 말이다. 우리는 최근 '제1원리 기반 밀도범함수이론'을 이용하여 새로운 독성예측모델을 발표했다. 야구로 비유해서 '볼'은 물질, '글러브'는 생물 내 수용체라 하자. 투구의 구종은 '패스트볼' '커브' '슬라이드' '포크볼' 등 다양하다. 그래서 구질마다 볼의 속도, 방향이 다르고 글러브에 잡히는 순간의 볼 위치, 방향, 모양 등도 다르게 된다. 우리는 물질이 수용체와 결합할 때 물질의 구성 원자 간 결합, 구조의 전기적 특성(쌍극자모멘트) 및 방향을 계산하여 독성 원인과의 인과관계를 밝혔다.
최근 과학계 대세는 인공지능(AI)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작년 출시된 챗GPT는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과학기술계는 물론 일상생활까지 바이러스처럼 퍼지고 있다. AI의 핵심은 방대한 '학습 데이터'다. 그래서 해양학 분야도 예측이 어려운 기후, 생태계 분야에서 빅데이터 수집과 분석이 한창이다. 해양 데이터로부터 정보, 나아가 지식, 지혜로 발전한다면 해양 난제의 답도 찾을 수 있을 거라 기대된다.
나의 학제 간 연구 마라톤은 만 15년 만에 겨우 전환점을 맞았다. 학제 간 연구는 개별 전문 연구보다 훨씬 어려웠다. 주제, 관점, 기술 간 상충 요소가 많았기 때문이다. 성공 열쇠는 '소통'이었던 것 같다. 연구자 간 솔직한 인정과 상대방 의견에 대한 존중이 답이었다. 내게는 숫자로 말하는 개똥철학이 몇 개 있다. 그중 하나가 '51 vs 49' 룰이다. 풀어보면 상대방에 51을 주고, 49를 갖자는 것이다. 매우 어렵고 용기도 필요해서 잘 지키지는 못했다. 그래서 개똥철학이다. 1만큼의 양보가 때론 건전한 사회와 건강한 바다에 큰 도움이 될 거라 믿고 싶다.
[김종성 서울대학교 지구환경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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