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제동원 피해자 김재림 할머니 별세…향년 93세

고귀한 기자 2023. 7. 30.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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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화순 능주초 졸업 후 미쓰비시중공업 동원돼
2차 소송 원고 참여…日 사과 못받고 끝내 눈감아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김재림 할머니. 일제강제동원 시민모임 제공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인 김재림 할머니가 30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3세.

30일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에 따르면 김 할머니는 1930년 전남 화순군 능주면 관영리에서 1남 4녀 중 넷째로 태어났다. 1944년 능주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같은 해 5월 미쓰비시중공업 나고야항공기제작소에 동원됐다.

김 할머니는 ‘일본으로 가면 밥을 배부르게 먹게 해 주겠다. 공부를 시켜주겠다’는 일본인 모집자의 말에 속아 일본행을 택했다. 하지만 그는 미쓰비시에서 온종일 군용 비행기 부속품을 깎고 페인트칠을 하는 등의 노역을 해야 했다.

김 할머니는 생전 “하루 종일 기계에 매달리다 저녁이 돼 숙소에 돌아오면 몸을 제대로 가누기 힘들 정도로 피곤했다”며 “힘든 내색을 하면 ‘괜히 일하기 싫어 꾀를 부린다’며 밥을 주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고 밝혔다.

해방 후 한국으로 돌아온 김 할머니는 일본에 사과를 받고 싶어 했다. 그는 “그때 일을 잊을 수가 없다”며 “어떻게 그 어린아이들한테 그런 일을 시켰던 것인지, 왜 지금까지 잘못했다는 말 한마디가 없는 것인지 이해가 안 된다”고 생전에 말하기도 했다.

김 할머니는 2014년 2월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낸 두 번째 손해배상 소송에 원고로 참여했다. 2018년 12월 광주고등법원 재판부는 김 할머니에게 1억원을 배상하라는 원고 승소 판결을 했지만 미쓰비시중공업 측 상고로 현재 상고심이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슬하에는 아들 1명과 딸 1명이 있다. 빈소는 광주광역시 서구 국빈장례문화원에 마련됐다. 발인은 8월 1일 오전 8시 30분, 장지는 국립서울현충원이다.

고귀한 기자 g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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