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이효석 문학상] 혐오의 세계에서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의 연대
김병운 '세월은 우리에게 어울려'
뒤늦게 들은 삼촌의 생존 소식
엄마는 왜 삼촌 죽었다 했을까
다른 세대 소수자의 만남 일궈
엄마는 장희에게 진무 삼촌이 죽었다고 했었다. 분명히 전화로 걸려온 비보였다. 엄마는 안방 문을 닫은 채로 길게 통화하더니 나와서 이렇게 말했다. 진무 삼촌이 죽었다고, 그렇게 하지 말라는 짓만 골라서 하더니 결국 더러운 병에 걸렸다고. 사인(死因)은 '에이즈로 인한 합병증'이었다.
시간이 흘러 엄마가 세상을 떠났다. 그런데 죽었다던 진무 삼촌이 보낸 한 남자가 조문을 온다. 진무 삼촌은 죽은 게 아니라 살아 있었던 것이다. 장희는 엄마에게 속았다는 걸 깨닫는다. 고개를 숙이는 조문객에게서 장희는 진무 삼촌의 생존 소식을 듣는다. 삼촌이 예전부터 장희 얘기를 많이 했었다고 그는 말한다.
김병운의 단편 '세월은 우리에게 어울려'는 성적 소수자 진무 삼촌의 삶에 관한 이야기다. 장희 엄마는 아들이 대학교 1학년이었던 오래전, 진무 삼촌의 죽음을 허위로 알렸다. 진무 삼촌이 방문할 때마다 '장희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 것만 같은 공포'가 엄마에게 거짓말을 하게 했다.
대개의 거짓된 말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정위치된다. 장희는 아직 살아 있다는 진무 삼촌을 만나기 위해 부산으로 향한다. 소설은 장희와 함께 부산으로 떠나는 화자 '나'의 시선으로 진행된다.
장희는 부산으로 가서 간병인이었던 이영서 씨에게 삼촌의 삶에 대해 먼저 듣는다. 진무 삼촌은 해변에서 폭죽을 팔았다. 추우나 더우나 한결같이 나와서 폭죽을 팔았고, 그 기간은 무려 10년이었다.
장희와 '나'가 진무 삼촌이 폭죽을 팔았던 시절의 이야기를 듣는 내내 해변에선 불꽃놀이가 이어지고 있다. 해변 근처 요양병원 사람들은 해변의 폭죽 소리를 성가셔 했지만 진무 삼촌은 일을 그만둘 수 없었다. 익명의 타인이 성가셔 하지만 멈출 수는 없는 것. 그건 소수자를 향하는 세계의 시선과 닮았다.
이영서 씨는 장희에게 삼촌에 대해 말한다. 삼촌은 절대로 부끄러운 삶을 살지 않았다고. 곁에 있는 사람을 하루라도 더 살고 싶게 만드는 사람이 삼촌이었다고.
장희와 진무 삼촌은 결국 병상에서 만난다. 삼촌은 이제야 죽음을 앞두고 있다. 삼촌이 사망했다고 알렸던 엄마가 먼저 세상을 떠났고 여전히 삼촌은 살아 있는 것이다.
유년 시절을 추억하면서 둘은 이야기를 나눈다. 삼촌은 조카인 장희에게 애정이 깊었다. 월미도로 드라이브를 갔던 이야기, 삼촌 친구의 성별을 여자로 바꿔 말한 이야기 등 오래전 기억의 미로를 걸어다니며 둘은 이야기한다.
매년 혐오가 갈라놓은 세월 때문에 두 사람은 이제야 만나 어린 시절을 회상한다. 소설은 '혐오의 세상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소설적 성취를 이룬다.
심사위원인 심진경 소설가는 "서로 세대가 다른 게이의 만남, 다른 세대의 게이를 만나게 해준다는 점에서 이를 지켜보게 만든다. 에이즈에 대한 이야기도 거북하지 않게 집어넣었다"고 말했다. 박인성 평론가는 "모일 것 같지 않은 사람들을 모이게 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소설"이라고 덧붙였다.
김병운 소설가는 2014년 '작가세계' 신인상을 수상하며 데뷔했다. 제13회 젊은작가상을 수상했다.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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