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 차량 많다고…폭염 속 경비원 세워둔 대형 아파트
기온이 30도를 웃돌던 지난 26일 오후 6시 인천 남동구의 한 대형아파트 단지 입구. ‘방문객용’이라고 적힌 차단기 옆에 경비노동자 A씨가 서 있었다. 방문 차량이 차단기로 다가올 때마다 A씨는 운전석 쪽으로 허리를 숙이고 방문 목적과 방문 동·호수, 차량 번호를 받아적었다. 뒤로 줄 선 차량이 늘어나자 방문증을 건네는 A씨의 손이 바빠졌다. 차가 오지 않는 틈에는 ‘security(경비)’라고 쓰인 검은 모자 안에 찬 땀을 훔쳤다. 방문 차량과 입주자 차량이 뿜어내는 열기에 갇혀있던 A씨는 꼬박 1시간 만에 똑같은 옷차림을 한 다른 경비원과 교대했다.
“외부차량이 많아서 한다고는 하는데, 솔직히 형식적인 것 같지만 위에서 시키니까 그냥 하는 거예요.” 기자가 방문한 오후 2시30에는 차단기 인터폰을 통해 방문자를 확인하다 오후 5시부터는 수기로 방문증을 주는 이유를 묻자 A씨가 이같이 답했다.
A씨가 말하는 ‘위’는 입주자대표회의를 가리킨다. 단지에 아파트 주민이 아닌 외부 방문 차량이 많아져 주차공간이 부족해지자 입주자대표가 경비원들에게 직접 방문증을 받으라고 지시했다는 것이다. 이에 해당 아파트 경비원들은 비와 눈이 오는 날을 제외하면 출퇴근 시간대인 오전 7시30분부터 오전 8시30분, 오후 5시부터 오후 8시까지는 수기로 방문증을 적어 건네고 있다.
경비원들과 주민들은 ‘수기 방문증도 인터폰을 사용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방문자가 방문하겠다고 말한 세대에 경비원이 직접 전화해 재차 확인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A씨는 “운전자들도 귀찮아하고, 신호 잡히면 (차가) 밀리니까 어디 방문하는지 꼬치꼬치 묻기도 힘들다”고 했다.
단지에서 8년째 살고 있는 주민 박모씨(36)는 “아침 8시에 방문 차량이 많은지도 모르겠다”면서 “경비원을 굳이 좁고 양옆으로 차가 다니는 곳에 서 있게 하는 것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했다. 박씨는 “고용노동지원청에 민원을 넣었더니 관리사무실 측이 ‘8월 5일까진 날씨가 더우니 경비원을 세우지 않겠다’고 했다던데 폭염주의보가 내린 지난 20일에도 경비원들이 나와 있었다”고 말했다.
“우리는 시키면 시키는대로 하는 사람들이니까 아무런 의사표시를 할 수가 없어요.” 같은 날 같은 아파트 입구 앞 건널목에서 신호정리를 하던 경비원 B씨가 말했다. B씨는 횡단보도 초록불이 켜지면 빨간 형광봉을 들고 멈춰있는 차량을 굳이 막아서는 일을 하고 있었다. 신호등에 빨간불이 켜지면 잠시 나무 그늘로 몸을 피하던 B씨는 A씨를 가리키며 “그래도 우리는 괜찮은데 (차들 사이에 있어야 하는) 저 분이 진짜 힘들 것”이라고 했다.
“옛날처럼 이곳이 평생 다닐 직장이라면 ‘이런 것을 왜 하느냐’ 따지겠지만 이제 출세할 것도 아니잖아요” 다니던 직장에서 정년퇴직한 뒤 경비 일을 시작했다는 A씨가 사무실로 발길을 옮기며 말했다.
해당 아파트 관리소장은 “외부 차량이 많이 들어오는 아파트의 특수한 상황 때문에 수기로 방문차량 관리 업무를 지시한 것이고, 고장난 방문증 발급기는 8월~9월까지 교체할 것을 지시한 상황이었다”라며 “정당한 관리 업무 지시였다”고 말했다.
김송이 기자 songy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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