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청나게 거칠고, 믿을수 없게 가벼운… '삿대질' 논평 경쟁에 남는 건 '비호감'
10건 가운데 9건은 비난·비아냥
어떤 일에 대해 논하여 비평하는 걸 논평이라고 한다. 나름의 관점에 따라 시비를 따지고, 때론 질책하고 대안을 제시한다. 사안이 생소한 자에겐 무슨 일이 진행됐는지 설명하는 기능을 하고, 사안의 당사자에겐 귀담아들을 만한 얘기를 해준다.
특히나 세상사를 다루는 정당의 논평이라면 예의를 갖췄지만 촌철살인의 비평과 대안 제시가 있을 거라는 기대를 받는다. 고르고 고른 선량의 모임이고 입법이란 묵직한 역할을 맡은 집단이 정당 아닌가. 공식적으로 내놓는 말과 글에 품격을 담는 건 기본일 거다. 그런데 웬걸. 지금 정당들의 논평은 이런 기대를 무참히 짓밟는다. 요즘 여야가 내놓은 논평의 제목과 내용 일부를 소개한다. 먼저 국민의힘이다.
"'전문선동꾼' 민주당은 '광우병 사태'를 돌이켜보고 '학습 능력'을 갖추라."(7월 2일)
"민주를 사칭한 반민주세력, 이것이 민주당의 민낯입니다."(7월 5일)
"'더러운 가짜 평화' 이면에는, 북한에 '더러운 뇌물' 조공 바칠 준비한 이재명 대표가 있었다."(7월 19일)
다음은 더불어민주당의 논평이다.
"국민의힘에 부끄러움을 느끼는 뇌세포가 이미 사라진 게 아닌지 의심스럽습니다."(7월 3일)
"윤석열 대통령, '핵 폐수 안전교' 포교 중입니까?"(7월 8일)
"사과할 줄 모르는 대통령과 정부·여당, 이런 뻔뻔한 집권세력은 없었습니다."(7월 19일)
여야 논평엔 멸시와 비아냥이 담겼다. 원래 비평에는 잘못한 점을 지적하고 잘한 점을 드러내는 내용이 다 포함된다. 그러나 칭찬은커녕 비판, 더 나아가 비난이 가득하다. 위에 소개한 논평에 담긴 주장과 내용대로라면 한 정당은 전문선동꾼인데 학습 능력이 떨어지는 존재요, 반민주세력이다. 다른 정당의 의원 일부는 뇌세포에 문제가 생겼고, 대통령과 정당은 뻔뻔한 세력이다. 비난도 이런 비난이 없다.
7월 한 달 동안 나온 논평을 얼핏 훑어봤는데도 이런 내용이 즐비하다. 이쯤 되면 여당인 국민의힘에 제1야당인 민주당은, 반대로 민주당에 국민의힘과 대통령은 상종 못 할 적이고 저주의 대상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한 달에 300건 육박 쏟아내기도
올해 1~7월(7월은 23일까지) 국민의힘과 민주당 홈페이지에 올라온 논평·브리핑(이하 논평)을 전수조사했다. 국민의힘은 당 대변인·부대변인 명의로 작성한 논평과 원내대변인 명의의 논평이 대상이다. 민주당은 대변인과 원내대변인의 브리핑, 부대변인의 논평이 대상이다. 각 정당은 대변인과 원내대변인을 복수로 두고 있으며, 부대변인은 10명 이상이다. 우선 월별 논평 건수를 보자. 국민의힘은 1월에 177건의 논평을 냈고, 2월에는 164건이었다. 그 뒤로 200건을 넘기는데, 3월 214건, 4월 208건을 기록했다. 5월부터는 급증해 274건, 6월에는 296건으로 300건에 육박했다. 7월에는 석 주간(1~23일)만 따졌는데도 206건이나 됐다. 민주당은 1월과 2월에 199건과 189건이었다가 역시 3월에는 231건으로 급증한다. 이어 4월과 5월에 각각 215건과 213건이었고, 6월 들어서는 260건에 달했다. 7월에는 석 주간 이미 215건의 논평이 나왔다. 휴일 등을 감안하면 평일에 하루 평균 10건에 육박하는 논평을 여야가 각각 쏟아내고 있다.
여야 관계자들 설명에 따르면 과거엔 정당 논평이 한 달에 200건을 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고 한다. 과거보다 대변인과 부대변인 수가 늘어났다는 점도 있지만, 현안에 즉각적인 반응을 담은 논평이 많아졌다. 올해 3월 이후 정치권은 민주당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 김남국 의원 코인 투자 논란, 윤석열 정부 외교 등 이슈를 놓고 대치했고, 특히 6월 이후엔 서울~양평 고속도로, 일본 오염수 방류 등이 쟁점으로 부상했다. 이달 들어서는 공방이 더욱 치열해졌다.
논평이 다루는 '대상'을 보면 각 당의 관심사 혹은 공격 대상을 알 수 있다. 국민의힘은 매달 쏟아지는 논평의 60~80%가 '민주당'을 거론한다. 당대표인 '이재명'을 언급한 논평도 많은데, 월별로 봐서 적을 때는 20%가량, 많을 때는 60% 이상이 이 대표를 다뤘다. 전직 대통령인 '문재인'을 거론한 논평도 많이 보인다. 매달 논평의 20~30%가 문 전 대통령을 다룬다. 문재인 정부의 실책을 지적하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민주당 논평은 윤석열 대통령에게 집중한다. 매달 논평의 70% 전후가 '윤석열' 대통령을 언급하고 있다. 이와 달리 '국민의힘'은 상대적으로 적은데, 월별로 30% 수준에 그친다. 여당보다 대통령이 주된 공격 대상임을 보여준다. 한 가지 주목되는 것은 1~6월에는 '김건희' 여사를 언급한 논평이 미미했지만, 7월 들어 21%로 부쩍 높아졌는 점이다. 또 '검찰'을 언급한 논평이 매달 10% 전후로 꾸준하다. 즉 민주당은 '국민의힘'보다는 '윤석열' 대통령에게 집중했고, 검찰은 상시적 관심의 대상이며, 최근 들어선 '김건희' 여사를 거론한 논평을 늘리고 있다.
추문전문·청불드라마…짝퉁·입닫아라
여야가 쏟아내는 논평에서 문제적 지점은 바로 비판·비난이 가득하다는 거다. 더 나아가 비아냥도 보인다.
국민의힘은 거의 매달 논평의 90% 이상이 누군가 혹은 무엇인가를 비판·비난하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이런 제목이다.
"대한민국을 어지럽히는 비양심적인 민주당에 정신 수양을 권면한다"(7월 2일), "이제 더불어민주당은 '괴담을 먹고사는 괴물'이 되었습니다"(6월 23일), "'한숨메이커'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는 황당무계한 언행을 속히 중단하고 반성하라"(6월 21일), "연일 '성비위 의혹'이 터져나오는 민주당, '성추문 전문정당'인가"(5월 25일), "세상의 온갖 비난에도 한가로이 남의 티끌을 지적하는 더불어민주당은 '정신 승리의 백미'가 될 것입니다"(4월 30일), "민주당은 일본의 가짜뉴스를 믿는 '친일정당'인가, 아니면 북한의 지령에 동조하는 '종북정당'인가"(3월 31일), "막장드라마로 치면 더불어민주당과 이재명 대표가 쓰고 있는 대본은 범죄와 패륜, 신파의 3박자를 모두 갖춘 '39금급 청불드라마'입니다"(2월 22일), "이재명 대표의 '선택적 부분 기억 상실'과 '논리 장애'"(1월 19일) 등이다.
민주당 역시 마찬가지다. 월별 논평의 95% 이상이 비판·비난이다.
"'김건희 로드' 해명마다 거짓으로 드러나는 국토부, 그만 그 입 닫으십시오. 윤석열 대통령이 답하십시오"(7월 13일), "'수조물 먹방 자체가 이미 뇌송송 구멍탁입니다"(7월 3일), "'핵 폐수 홍보대사' 자처하는 윤석열 정권이야말로 국민에게 있으나 마나 한 유령 같은 존재입니다"(6월 18일), "국민의힘의 윤리의식도 '짝퉁'입니까"(5월 22일), "국민의힘은 이참에 '전광훈의힘'으로 당명을 바꾸십시오"(4월 23일), "구걸외교, 조공외교의 결과는 빈손외교도 부족해 쪽박외교였습니다"(3월 17일), "윤석열 대통령의 말폭탄은 핵폭탄급 재앙이 되어가고 있습니다"(1월 13일), "국가지도자의 무능과 무식은 자랑이 아닙니다"(1월 9일) 등이다.
비평이라기보다는 진영 논리를 듬뿍 담은 비난·비아냥이 다수다. 욕설만 쓰지 않았을 뿐이지 표현의 수위나 내용은 거의 '멱살잡이' 수준이다. 민생이나 정책에 대한 진지한 고민, 현안에 대한 해법 촉구 등을 담은 논평은 가물에 콩 나듯 나올 뿐이다.
외면받는 정당, 커지는 무당층
정당의 논평이 극악해지고 거의 악담과 저주 수준을 담는 건 왜일까. 우선 '당내 경쟁' 상황이 있다. 당마다 당 대변인과 원내대변인이 따로 있는데, 현안에 대한 논평을 서로 경쟁적으로 내놓고 있다. 비슷한 시점에 거의 유사한 내용의 논평을 각각 내놓는 경우도 있다.
특히 거친 막말성 논평의 상당수는 부대변인이 내놓고 있다. 이들은 총선 도전을 꿈꾸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정치권에서 존재감을 알리기 위해 '무리수'를 두게 된다. 강성 지지층이 열광할 만한 표현과 내용을 다루며 논평의 수위를 경쟁적으로 끌어올리고 있다. 게다가 정당들이 부대변인을 이용하는 측면도 있다. 한 정당 관계자는 "대변인 논평은 외부 시선을 의식하고 수위도 조절한다"면서 "부대변인 논평이 일종의 악역을 담당하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게다가 한 정당이 다른 정당을 비난하는 독한 논평을 내놓으면 이 다른 정당도 뒤질세라 더욱 거칠고 독한 논평으로 반격하는 식이 반복되고 있다. 전직 국민의힘 당직자는 "과거엔 정당이나 정당 지도부에 대해 '좀 문제가 있다'는 식의 비판 정도에 그쳤는데, 요새는 온갖 현안을 놓고 비아냥과 저주를 퍼붓고 있다"고 평가했다.
강성 지지층에만 호소하는 논평이 쏟아지는 상황에서 각 정당에 대한 '일반' 여론은 갈수록 부정적이다.
한국갤럽의 정당 호감·비호감 조사에 따르면 5월 말 기준으로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비호감도는 각각 58%와 60%. 거기서 거기다. 국민의힘 비호감도는 지난해 7월 50% 밑으로 내려갔지만 지금은 다시 60%에 육박한다. 민주당은 집권 당시인 2020년엔 비호감도가 40% 아래로 내려갔지만 이후 계속 상승했다.
정당 자체를 외면하는 유권자도 늘고 있다. 전국지표조사(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 공동, 17~19일, 1001명 대상)에서 지지 정당이 없거나 모른다고 응답한 무당층 비율이 39%로 역대급 수치다. 정당 지지율이 국민의힘 30%, 민주당 23%라는 것을 감안하면 무당층이 사실당 '제1정당'인 셈이다.
게다가 온라인 공간에서 각 정당 이미지 역시 최악이다. 빅데이터 분석 도구인 썸트렌드를 통해 최근 한 달(6월 25일~7월 24일) 동안 네이버 블로그에서 각 정당 이름과 함께 거론된 '연관어'를 분석했다. 그 결과 국민의힘은 연관어의 77%가 부정적 내용이었다. 의혹, 괴담, 논란, 특혜 등이 연관어였다. 민주당은 81%가 부정적이었는데 의혹, 갈등, 괴담, 범죄 등이 연관어였다.
어떤 측면에서 봐도 정당들은 외면과 혐오의 대상이 됐다. 정당으로서는 비극이고, 거친 표현으로 상대를 헐뜯는 정당들의 논평이 이 비극에 일조를 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를 어찌해야 할까. 진영 논리에 사로잡힌, 한쪽 지지층에 매몰된 정당들이라서 스스로 쉽게 바뀔지는 의문이다.
이쯤 되면 작은 실천이라도 절실하다. 정당이 합의해 논평 언어 순화 선언이라도 해야 한다. 강제성은 없어도 조금이라도 의식을 하지 않을까. 국회 차원에 '좋은 논평상'을 만들어 유인책이라도 둬야 할 판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유권자다. 모든 논평은 기록으로 남는다. 극악한 논평을 남긴 총선 출마 후보들을 기억해 평가하는 건 유권자의 몫이다. 정치인에게 눈을 부릅뜨고 감시하는 유권자만큼 무서운 존재는 없다.
[이상훈 정치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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