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도시2→'D.P.2'까지…손석구, 장르와 캐릭터 넘나들며 자신의 시대를 열다 [TEN피플]
[텐아시아=이하늘 기자]쌍꺼풀이 없는 눈매에 거친 듯 순한 외모를 가진 배우 손석구. 장르를 가리지 않고 종횡무진하는 그의 얼굴에는 선과 악이 공존하며 푸근하면서 서늘한 시선을 엿볼 수 있다. 손석구. 최근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오가며 맹렬히 활동 중이기 때문일까. 2017년 드라마 '센스8 시즌2'로 다소 늦은 데뷔를 했지만, 빠른 시간에 주연을 꿰차며 대중들 앞에서 맘껏 연기를 뽐내는 중이다.
지난 28일 넷플릭스에 공개된 드라마 'D.P. 시즌2'(감독 한준희)에서 손석구는 시즌 1에 이어 무뚝뚝해 보이지만 츤데레를 보여주는 임지섭 대위 역할을 맡았다. 지난 2021년 8월 27일 공개된 'D.P. 시즌1'에서 눈도장을 확실하게 찍은 손석구는 군대라는 집단의 부조리함을 꼬집는 역할로 등장한다.
6부작으로 구성된 이번 'D.P. 시즌2'는 2015년을 배경으로 여전히 변한 것이 없는 부조리한 군대 속에서 끊임없이 부딪히는 이야기를 담았다. 임지섭 대위 역의 손석구는 DP(Deserter Pursuit) 즉 탈영병을 쫓는 병사인 안준호(정해인), 한호열(구교환)을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물심양면 돕는다. 또한 시즌 1에서 으르릉거리며 적대심을 보이던 박범수(김성균)와 브로맨스(남자끼리 갖는 두텁고 친밀한 관계)를 선보이며 든든한 조력자가 되어준다. OTT, 드라마, 영화를 거치며 진정성 있는 연기를 보여주는 배우 손석구의 진솔함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영화 '범죄도시 2'(2020) 감독 이상용, 서늘하고 무자비한 악당 강해상 역
인간미라는 찾아볼 수 없는 악함의 정석. 베트남의 뜨거운 열기에 흐르는 땀만큼이나 사람을 살해해 보인 피가 많은 인물인 강해상은 손석구를 만나 완성됐다. 정돈되지 않은 피부에 늘 인상을 찌푸리는 강해상은 '범죄도시 1'(2017)의 빌런 장첸(윤계상)을 능가하면서 독창적인 고유성을 가지고 있다. 영화 '범죄도시 2'는 가리봉동 소탕 작전 4년 후, 베트남으로 도주한 용의자를 인도받아 오라는 임무로 넘어온 마석도(마동석)과 전일만(최귀화) 반장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누적 관객 수 1200만명을 기록하며 흥행에 성공한 작품이기도 하다. 사막여우를 닮은 눈매가 축 처져 상대방을 노려보는 눈빛으로 바뀔 때의 공포는 여름날의 한기처럼 오슬오슬한다. 마동석의 덩치에도 쉽게 밀리지 않으며 중심을 잡는 손석구의 연기는 극의 균형을 잡아줬다. 더욱이 베트남의 작은 아파트 방에서 자신을 쫓는 무리와 마동석 일행에 연속적으로 덤비며 괴물다운 면모를 보여주는 시퀀스는 가히 압도적이다.
영화 '연애 빠진 로맨스'(2021) 감독 정가영, 솔직하고 사랑에 서툰 남자 우리 역
빌런이 아닌 손석구의 반전 매력은 '연애 빠진 로맨스'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솔직하지만, 사랑에 서툰 서른셋 남자자 우리 역을 통해 상대역 배우 전종서와 가슴 떨리는 케미를 완성했다. 극 중에서 미혼 남녀인 스물아홉 자영(전종서)와 우리(손석구)는 데이팅 어플을 통해 만나게 된다. 전혀 알지 못하던 사이에서 속사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이로 발전한 두 사람은 그야말로 연애 빠진 로맨스를 하게 된다. 하지만 잡지사에서 일하는 우리는 자영과의 이야기를 19금 칼럼을 자신의 의지가 아닌 상태로 싣게 된다. 씁쓸하고 달콤한 어른들의 농익은 연애는 직설적인 대사를 통해 발칙하게 드러난다. 자영의 "너 냉정하게 한번 생각해봐. 만약에 네가 여자라면 너한테 끌릴 것 같아? 매우 그렇다, 그렇다, 보통, 아니다, 매우 아니다" 등 필터 없이 나오는 대사들은 독립영화계에서 이미 실력을 입증받은 정가영 감독의 말맛에서 비롯됐다. 영화 '조인성을 좋아하세요'(2017), '밤치기'(2018), '너와 극장에서'(2018)에서 특유의 유쾌하지만, 밀도 높은 대사로 관객들을 사로잡았던 정가영 감독은 전종서와 손석구의 조합으로 거침없는 영화를 만들었다. 순진하지만 솔직하고, 바보 같지만 믿음직스러운 손석구의 모습을 보고 싶다면 이 작품을 추천한다.
드라마 '최고의 이혼'(2018) 감독 유현기, 찌질한 불륜남의 정석 이장현 역
2013년 방영된 동명의 일본 드라마를 리메이크한 '최고의 이혼'에서 손석구는 무표정하고 공허한 눈을 통해 도통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는 남자 이장현을 연기했다. 극 중에서 진유영(이엘)의 결혼 제안을 받아들였지만, 혼인신고서를 내는 것을 계속 미루고 몰래 바람을 피우는 천하의 쓰레기다. 원작의 우에하라 료(아야노 고)만큼이나 연약하고 힘 빠진 목소리로 대답하면서 '이 남자, 도대체 뭐지?'하는 생각이 저절로 들게 만든다. 아내 진유영에게 상처를 주는 나쁜 남자지만, 어딘가 안쓰럽고 묘한 매력을 풍긴다. 절대 길들지 않을 것 같은 마성의 매력에 손석구. '최고의 이혼'에는 손석구와 진유영 부부를 비롯한 차태현과 배두나 커플도 함께 등장한다. "결혼은 정말 사랑의 완성일까?"라는 카피라이터 문구처럼 결혼이라는 제도권의 안과 밖에 대한 질문 역시 해볼 수 있다.
드라마 '멜로가 체질'(2019) 감독 이병헌, 싸가지 없지만 정이 가는 상수 역
"당신의 눈동자에 건배" 극 중에서 손석구가 전여빈의 눈에 소주잔을 가져다 대며 하는 대사다. 사실 영화 '카사블랑카'(1949)에서 배우 험프리 보가트가 잉그리드 버그만에게 하는 명대사가 드라마 '멜로가 체질'에서 오마주 됐다. 영화 '드림'(2023), '극한직업'(2019), '스물'(2015)에서 한번 들으면 잊을 수 없는 대사로 코미디 장르를 확장한 이병헌 감독이 도전한 드라마 '멜로가 체질'은 장면마다 시청자들의 심장을 저격했다. 손석구는 '멜로가 체질'에서 비중이 그렇게 높지는 않지만, 전여빈이 맡은 이은정과 묘하게 엉키는 상수 역을 맡았다. CF 촬영 감독인 상수의 촬영장에 우 이소민(이주빈)의 다큐멘터리를 찍으러 간 은정은 버럭버럭하며 화를 내는 상수에게 소신있게 대답한다. 은근한 기 싸움에서 밀린 상수는 묘한 매력의 은정에게 끌리게 되고 이상한 만남을 이어간다. '싸가지 없음'이라고 이마에 쓰여있는 듯한 인물이지만, 보육원에 가서 주말마다 봉사하고 전 재산을 기부한 알 수 없는 캐릭터 상수는 손석구의 얼굴로 신스틸러가 됐다.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2022) 감독 김석윤, 어딘가 보듬어주고 싶은 구씨 역
역시 손석구하면 이 드라마를 빼놓고 말할 수 없다. 2022년 여름, 많은 사람에게 위로가 되어줬던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를 통해 손석구는 말이 없고 하루를 버티면서 살아가는 의문의 남성 구씨를 연기했다. 극 중에서 염미정(김지원)의 아버지 염제호의 일을 도우며, 매일 일과가 끝나면 소주를 들고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 염미정의 부탁에 듣지 않는 것 같지만, 응답하는 모습으로 '구씨앓이'를 만들기도 했다. 매일 반복되는 하루에서 어딘가 구멍이 나서 마음이 채워지지 않는 인물들은 서로의 챙김으로 채워지고 또 비워진다. "추앙해요"라는 염미정의 대사에 휴대폰 검색창에 단어의 뜻을 검색하고는 본격적으로 추앙을 시작하는 구씨의 모습에 마음이 충만하게 채워지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느리지만 천천히 오르는 관계의 온도를 대사의 생략으로 표현한 손석구는 그야말로 인생 캐릭터를 만들었다.
디즈니 + 드라마 '카지노'(2022) 감독 강윤성, 열혈 형사 오승훈 역
디즈니 +의 드라마 '카지노'에서 손석구는 열혈 형사 오승훈을 맡아 아우라와 포스가 넘치는 최민식에 대적하는 연기를 선보였다. '카지노'는 우여곡절 끝에 카지노의 왕이 된 차무식(최민식)이 일련의 사건으로 모든 것을 잃고 재건하려는 이야기다. 시즌 2까지 제작된 '카지노'는 해외 로케이션의 이색적인 풍경 아래 인간의 본능적인 돈에 대한 열망을 그린다. 타락한 인물들 사이에서 자신의 신념을 지키며 차무식을 쫓는 형사 오승훈으로 변신한 손석구는 집요한 모습을 보여줬다. 어떤 경로로든 빠져나가려는 차무식의 뒤를 밟으며 구속하려는 오승훈. 현지 경찰들과 공조하면서 하나의 목표를 위해서 나아가는 우직한 모습은 형사로서의 굳건함을 보여준다.
손석구의 연기는 장르를 넘나들면서 진정성 있는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지난달부터 연극 '나무 위의 군대'에 서고 있는 손석구는 지난 14일 선배 배우 남명렬의 '오만하다'는 언급으로 인해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손석구는 "(연극을 할 때)사랑을 속삭이라고 하셨는데 왜 가짜 연기를 시키는지 이해가 안 됐다"라는 발언을 한 바 있다. 이에 남명렬은 "그저 웃는다. 그 오만함이란"이라며 비난을 가했다. 이러한 논란에 손석구는 지난 23일 JTBC '뉴스룸'에 출연해 관련 논란에 대해 언급했다. 그는 "이를 반성하며 평소 이야기할 때, 내뱉는 미숙한 언어가 섞여 충분히 오해를 살만한 문장"이었다며 손 편지를 써서 사과했다고 말했다.
'가짜 연기'라는 말은 손석구가 "연기를 처음 시작했던 10여년 전 간혹 한 가지의 정형화된 연기를 강요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당시에 나의 옹졸함과 고집 때문에 그렇게 느낀 것 같다. 평소 배우 친구들과 쉽게 내뱉는 '왜 이렇게 가짜 연기를 하냐' 이런 것들이 섞이면서 오해를 살 만한 문장이었다고 생각한다"라는 말에서 비롯됐다. '가짜 연기'라는 단어가 주는 뉘앙스로 인해 어려움을 겪었던 손석구였지만, 그의 연기를 살펴보면 진정성 있는 연기로 모든 작품에 임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매체에 따라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은 다르다. 그도 그럴 것이, 연극의 경우 무대 위에서 관객들에게 실시간으로 소통을 하기 때문에 정확한 발음이나 전달력이 훨씬 중요하다. 영화도 이 부분이 중요하지만, 카메라와 편집이라는 기술적 요소에 의해서 반복적으로 할 수 있다. 연기에는 가짜는 없다. 어떤 방식을 통해 표현하느냐에 따라 진심이 전달되는 방식이 다를 뿐이다. 다소 경솔한 언행이었지만, 진심으로 사과하며 진정성 있는 연기를 보여주는 손석구는 장르의 특성에 맞게 '진짜 연기'를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이하늘 텐아시아 기자 greenworld@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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