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장모’ 법정 구속에서 떠오르는 것들 [쓴소리 곧은 소리]
더 중요한 문제는 ‘김건희 리스크’…영부인 관리의 제도화 미루지 말길
(시사저널=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장)
"여기서 죽어버리겠다!"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라고 생각했을까? 윤석열 대통령의 장모 최은순씨는 7월21일 의정부지법에서 열린 2심 재판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되자 바닥에 주저앉으며 절규했다. 한여름 폭염 속에서 76세인 최씨는 여성 청원경찰 4명에 의해 들려나가 호송차에 태워졌다. 헌정 이래 최초로 대통령의 장모가 구속되면서 대한민국의 흑역사 하나가 더해지는 순간이었다. 설상가상으로 민주당이 7월27일 최씨의 공흥지구 특혜설과 양평 고속도로 특혜 의혹으로 국정조사를 요구하면서 사태는 날로 확산되고 있다. 파장은 어디까지 갈까? 또 대통령의 처가 리스크는 어떻게 차단할 것인가?
정작 윤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는 10일이 넘도록 무거운 침묵을 지키고 있는 가운데 용산 대통령실은 "사법부의 판결은 대통령실이 언급할 대상이 아니다"며 지극히 원론적이고 조심스러운 반응만 내놓고 있다. 그러나 정치권에서는 서로 상반된 두 개의 탄성이 흘러나왔다. 하나는 윤 대통령의 처가 비리 의혹이 법적으로 입증되었다며 기세등등한 진보진영의 탄성이고, 다른 하나는 현직 대통령의 장모까지 법정 구속되었으니 이제는 야당 차례라는 보수진영의 탄성이다. 다들 아전인수식 해석을 하고 있는 셈이다.
윤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의 무거운 침묵
문제의 본질은 역시 윤 대통령의 처가 리스크 차단이다. 역대 대통령들은 친인척 리스크를 차단하기 위해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전담 비서실을 두고 특별 관리하는 등 온갖 노력을 기울였지만 별무 성과였다. 김영삼-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은 두말할 것 없고, 문재인 전 대통령도 부인 김정숙 여사의 의상비와 외유 문제를 비롯해 아들의 취업 특혜 논란, 딸의 해외 거주 문제로 임기 내내 바람 잘 날이 없었다.
대통령이 여간 독한 마음을 먹지 않고 제도적 장치를 단단히 하지 않으면 친인척 논란을 원천 봉쇄하기 어렵다. 지금 윤석열 정부의 대통령실에는 친인척 문제를 따로 담당하는 곳이 없다. 역대 정부에서 '권력 위의 권력'이라는 비판을 받았던 민정수석실을 폐지하고, 관련 업무를 법무부와 검경에 이관했기 때문이다. 대통령실의 정치 관여 방지와 권력 분산이라는 점에서는 긍정적이지만 친인척 관리에 공백이 생긴 것도 사실이다. 차제에 이 공백을 '확실하게' 틀어막아야 사태 확산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박근혜 정부 때인 2014년에는 민정수석실 외에 대통령의 배우자와 4촌 이내의 친족, 그리고 청와대 수석비서관 이상 고위 공직자들을 감찰 대상으로 하는 '특별감찰관제'를 신설했다. 특별감찰관은 국회 추천을 받아 대통령이 지명하고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 대통령이 임명토록 규정되어 있지만, 웬일인지 문재인 정부 내내 공석으로 두었다. 요즘 이 특별감찰관제를 부활해야 한다는 소리도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윤 대통령은 검찰 출신인 탓인지 친인척 문제는 대통령실이 개입하지 않고 검경 등 수사기관별로 각 시스템에 따라 처리하면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지만, 친인척 문제가 더 이상 확대되지 않도록 차제에 '내부 감찰 장치'를 단단히 점검할 필요가 있다.
우리와는 좀 다르지만 미국 바이든 대통령은 남동생과 아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딸과 사위의 구설로 애를 먹었다. 미국은 1967년에 대통령 친인척의 행정부 취직을 금하는 법(일명 Bobby Kenny Law)까지 제정했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은 딸과 사위에게 백악관 공식 직함을 주었다. 결국 대통령의 '확고한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얘기다.
윤석열 정부가 대통령의 장모보다 훨씬 더 신경 써야 할 것은 두말할 것 없이 영부인이다. 김건희 여사는 갈수록 활동 폭을 넓혀가고 있고, 야당의 공격도 거세지고 있다. 이에 따라 영부인실의 제도화 문제가 다시 부상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영부인의 위상과 역할이 확대되고 있는 만큼 그에 걸맞게 우리 영부인실의 진용도 제대로 갖추어져야 한다. 지난 5월 김건희 여사는 17일 동안 동물보호단체 관계자 오찬, 납북자 가족 면담 등 15개 공개 일정을 소화했다.
지난 4월 윤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했을 땐 김 여사는 5박 7일 동안 7개 단독 일정을 소화했다. 넷플릭스 임원 접견을 비롯해 한국전쟁 참전용사 면담, 북한 인권 간담회 참석, 질 바이든 여사 면담, 해리스 부통령 면담 등 하나같이 중요한 일정들이다. 국익을 위해 영부인의 일정과 메시지, 패션, 코디 등을 정교하고 체계적으로 돕는 프로페셔널한 보좌 시스템이 절실하다.
영부인의 동선·메시지 정교하게 관리해야
미국의 영부인실(Office of the First Lady)과 영부인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적극적이고 광범위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의 부인 질 바이든 여사의 경우, 비서실장을 포함해 공보·행사·요리 등 분야별로 11명의 직원이 보좌하고 있다. 이들은 백악관에서 열리는 모든 행사를 총괄하고 있다. 특히 영부인실에서 '사교 비서관'(Social Secreyary)이라는 직함을 가진 비서는 윤석열 대통령을 비롯한 해외 정상들이 참석하는 백악관의 오찬·만찬 행사의 초청자, 공연자, 음식 전반을 도맡아 수행한다. 이 과정에서 백악관의 주요 부서의 도움을 받는다. 지난 4월 윤 대통령의 백악관 만찬 때 할리우드의 스타 안젤리나 졸리와 아들이 참석했고, 한국의 걸그룹 블랭핑크와 미국의 레이디 가가의 합동 공연을 준비했던 곳도 백악관의 영부인실이었다.
윤석열 정부는 제2부속실을 폐지한 이후 지금까지 김건희 여사를 용산 대통령실의 누가 무엇을 어떻게 보좌하고 있는지 명확지 않다. 모호하고 비공개적인 영부인 시스템과 행보는 불필요한 의혹을 키우면서 계속 야당에 공격의 빌미를 주게 된다. 이제 우리 국격이 크게 향상된 만큼 당당하게 '영부인실'을 둘 필요가 있다고 본다. 영부인이 분야별 전문가와 함께 패션뿐만 아니라 서민, 아동, 노인, 장애인, 반려동물 등 다양한 분야에서 투명하고 적극적인 활동을 하도록 하루속히 제도화해야 한다. 예컨대, 리투아니아 명품 논란과 같은 문제 제기에 대해서도 좀 더 신속하고 세련되게 대응하는 일급 메시지 대응팀이 가동되어야 사태 확산을 조기에 차단하고 후유증을 최소화할 수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안정적인 국정 운영을 가로막고 있는 수많은 악재 중에서 가장 조심해야 할 것 두 가지만 꼽는다면, 내부 분열과 친인척 비리다. 김건희 여사가 더 이상 정쟁에 휘말리지 않고 활동할 수 있도록 영부인 시스템을 분명히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하루빨리 '처가 리스크'에서 벗어나 '처가 메리트'로 전화위복해 국정을 순항해 나가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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