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배를 빛내는 중대부고의 평범함…“차별이 아니라 차이가 없어요”

황민국 기자 2023. 7. 30.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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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대부고 선수들이 지난 29일 제천축구센터 제2구장에서 열린 인천 강화 U18과 금배 U17 유스컵 8강전을 앞두고 승리를 다짐하고 있다. 제천 | 황민국 기자



“차별이 아니라 차이가 없습니다.”

29일 제천축구센터 제2구장에선 녹빛과 주황색이 어우러진 유니폼의 선수들이 승리의 함성을 내질렀다.

대통령 금배 고교축구대회 U17 유스컵 4강에 오른 서울 중대부고 선수들이었다. 중대부고는 8강전에서 인천 강화 U18을 4-0으로 눌렀다. 비록, 금배에선 3학년 형님들이 탈락의 아픔을 맛봤지만, 1~2학년이 참가하는 유스컵에선 정상에 한 발짝 다갔다. 축구 선수로 꿈을 키우고 있는 이들은 이런 경험 하나 하나가 소중하다.

중대부고 선수들의 승승장구가 주목받는 것은 빼어난 실력과 함께 독특한 선수 구성도 영향을 미쳤다. 김태열 중대부고 감독은 “전체 선수단(35명)에서 5명이 한국 국적이 아니거나 다문화 가정 출신”이라면서 “특별한 이유는 없다. 축구를 좋아하는 아이들이 하나 둘 모였고, 즐겁게 축구를 하고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한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2학년 공격수 복준하는 찬스만 나면 친구들에게 공을 달라며 외친다. 그리고 후반 10분 중대부고가 승기를 잡는 두 번째 골을 터뜨렸다. 벤치에서 출전 기회를 기다리던 수비수 김승우는 벌떡 일어나 골 세리머니로 신바람을 냈다.

외견만 본다면 또래와 다를 게 없지만, 그 평범함이 오히려 특별하다. 김승우 역시 한국인 아버지와 태국인 어머니가 키워낸 보물이다. 다문화 가정에서 태어난 선수들이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복준하는 “사실 입학하면서 깜짝 놀랐다. 다문화 가정은 나 하나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3학년에 둘, 2학년에 나 포함해서 두 명 그리고 1학년에도 한 명이 있다”고 웃었다.

한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중대부고 복준하가 지난 29일 제천축구센터 제2구장에선 열린 금배 U17 유스컵 8강전에서 4-0으로 승리한 뒤 축구 선수로 성공을 다짐하고 있다. 제천 | 황민국 기자



언어나 식성도 똑같다. 3학년이라 유스컵을 뛰지 않은 공격수 온예카 오비 존은 나이지리아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지만 한국 음식과 한국어가 더 친숙하다. 미국에서 태어난 또 다른 3학년 수비수 김프레드 역시 한식파다. 한 학부모는 “차별이 아니라 차이가 없다”면서 “교실부터 그라운드까지 그저 다 똑같은 한국 아이들”이라고 귀띔했다.

중대부고는 미리 보는 한국 축구의 미래일지 모른다. 한국에 체류하고 있는 외국인이 250만명에 접어들었다. 전체 인구의 5% 남짓에 가깝다보니 기존과는 다른 환경에서 자라나 축구 선수를 꿈꾸는 아이들도 늘어났다. 금배에선 과거 1~2명에 그치던 사례가 올해는 9명으로 집계됐다. 중대부고가 아닌 다른 학교의 선수들은 스페인과 몰타, 중국 등 이주민 가정 출신이다.

문영길 대한축구협회 경기감독관은 “초등학교나 중학교 무대에선 흔한 일”이라며 “이제 그 아이들이 성장해 고교 무대를 두드리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주기환 상문고 감독도 “특별하게 여길 일이 아니고, 축구를 좋아하고 잘한다면 똑같은 기회만 주면 되는 것”이라며 “우리 학교도 (중대부고처럼) 문은 열려있다”고 덧붙였다.

한국에 뿌리를 내린 아이들 가운데 3학년은 금배가 끝나면 자신의 꿈을 위해 결정을 내릴 때가 다가온다. 부계와 모계에서 물려받은 국적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복준하는 국방의 의무를 감수하고 내년 일본이 아닌 한국 국적을 선택하기로 결심했다. 복준하는 “한국에서 축구 선수로 성공하고 싶다. 롤 모델은 손흥민(토트넘)과 미토마(브라이턴)”라고 힘주어 말했다.

온예카 오비 존은 다른 길을 선택했다. 온예카 오비 존은 부산 아이파크의 관심을 받았지만 축구 본고장인 유럽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벨기에 1부리그의 한 클럽에 입단 테스트를 받는 그는 가족과 함께 다시 이주할 것으로 보인다.

그나마 중대부고처럼 다문화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나은 편이다. 이주민 가정에서 태어난 선수들은 국내에선 프로 선수로 활동할 길이 사실상 막혀있다. 프로축구 K리그가 올해부터 외국인 선수 쿼터를 ‘3+1’(외국인 3명+아시아쿼터 1명)에서 ‘5+1’로 늘렸지만, 어린 선수들이 당장 주전급 선수들과 경쟁하기는 어렵다.

2020년 금배에서 이름을 알린 네팔 출신 당기 머니스가 고교 졸업 후 프로 입단을 타진했다가 좌절한 것이 대표적이다. 그는 2021년 대전 하나시티즌의 입단 테스트에 통과했으나 귀화에 실패해 귀국길에 올라야 했다. 머니스가 2022년 바레인 2부 에티하드알리프에 입단한 것이 다행일 따름이다.

한국에서 활동하는 한 에이전트는 “다문화 가정과 이주민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 모두 한국 아이들과 꿈은 같다”면서 “한국도 더 이상 다양성을 거부할 수 없는 환경으로 바뀌고 있다. 한국에서도 지네딘 지단이나 킬리안 음바페 같은 선수가 나올 수 있도록 돕는 길이 만들어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제천 | 황민국 기자 stylel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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