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 ‘불법시위’단체에 보조금 미지급 추진…“‘시민단체 블랙리스트’ 부활” 우려
여당이 불법 시위 전력이 있는 시민단체에 보조금 지급 제한을 추진하자 시민사회에서는 이명박 정부 때의 ‘시민단체 블랙리스트’가 부활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하태경 국민의힘 시민단체선진화특별위원회 위원장은 지난 27일 국회에서 열린 특위 9차 회의에서 “불법 폭력 시위단체는 기획재정부에서 보조금을 지급하지 않는다는 지침이 있었는데 문재인 정부 때인 2018년 삭제됐다”며 “특위가 규정 복원을 요청하려 한다”고 밝혔다.
과거 이명박 정부도 불법시위 전력이 있는 단체에 보조금 지급을 제한하도록 규칙을 개정한 바 있다. 행정자치부(현 행정안전부)는 2009년 지방보조금 관리기준 예규에서 ‘최근 3년 이내에 불법시위를 주최·주도하거나 적극 참여한 단체와 구성원이 소속 단체 명의로 불법시위에 적극 참여하여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위반 등으로 처벌받은 단체’를 보조금 지원 제외 대상으로 명시했다. 이 규정을 근거로 미국산 소고기 수입 반대 집회를 주도한 광우병 국민대책회의 소속 1800여 시민단체에 보조금 지급을 제한했다.
이에 시민단체들이 정부 부처를 상대로 소송을 내기도 했다. 한국여성의전화는 여성부(현 여성가족부)가 불법 시위 참가를 이유로 보조금 지급을 거부하자 소송을 내 승소했다. 당시 법원은 “보조금 교부 목적 달성과 무관하게 보조금을 받을 단체의 성격과 활동내용을 문제삼을 수 없다”고 판결했다. 한국여성노동자회도 행안부를 상대로 보조금 지급 소송을 제기해 대법원에서 최종 승소했다.
당시 단체 사무처장을 맡았던 배진경 한국여성노동자회 대표는 30일 통화에서 “다큐멘터리 제작에 3년 지원을 받기로 돼 있었는데 2년 차에 광우병 저지 집회에 참가했다는 이유로 보조금 지급이 중단됐다. 집회 참가자가 입건된 것도, 법원의 판결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무작정 불법시위로 몰아갔다”며 “대법원에서 승소 판결을 받았지만 판결이 나오기까지 사업이 축소되는 등 애로사항이 많았다”고 했다. 이어 “하 의원은 보조금을 옥죄면 시민단체들이 정부에 반대되는 목소리를 내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시민사회는 정부에 대한 감시와 비판을 할 의무와 책임이 있다”고 했다.
서울시 인권위는 2017년 4월 행안부에 “보조금 지원과 관련해 집회·시위 참여를 이유로 지원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은 블랙리스트 사태를 재현해 심각한 인권침해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며 지침 삭제를 권고했다. 행안부는 이를 수용해 2017년 9월 지방보조금 관리기준에서 해당 조항을 삭제했다.
류하경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변호사는 “여당이 추진하는 불법집회단체 보조금 지급 배제 방침은 행정기본법상 비례의 원칙에 위반된다”며 “설령 불법집회라고 하더라도 그에 대한 형사처분을 받으면 되지 해당단체 구성원 전체에 영향을 주는 보조금 금지라는 불이익을 주는 것은 과잉금지의 원칙에 위배될 소지가 있다”고 했다.
이어 “법원의 확정판결이 나지 않은 사안에 대해 불법으로 규정하는 것도 행정기본법에 어긋난다. 위헌의 소지가 다분함에도 여당은 일단 밀어붙여서 집회의 자유를 위축시키려는 것 같다”고 했다.
김세훈 기자 ksh3712@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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