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2.interview] ‘7부→EPL' 브라이튼 전설 머레이, "나는 항상 루저였어요"
[포포투=Ben Mountain]
영국의 7부 리그에서 아마추어 선수로 커리어를 시작해, 프리미어리그(EPL) 팀의 ‘전설’이 되었다. 글렌 머레이의 이야기다. 미국과 영국 하부 리그를 전전하며 프로 선수가 되기까지 한 단계씩 차근차근 올라갔다. 임대 경력을 포함해 선수 시절 그가 소속됐던 팀만 12개다. 이적을 자주 하기도 했지만, 팀을 여러 차례 승격으로 이끌면서 자연스레 상위 리그까지 올라갈 수 있었다.
머레이는 본인의 힘으로 최정상까지 올라섰다. 2010-11시즌 브라이튼 앤 호브 알비온에서 전성기를 맞이했지만 그의 선택은 이적이었다. 당시 브라이튼은 잉글랜드 EFL 리그 원(3부 리그) 우승했지만, 머레이는 잉글랜드 챔피언십 리그(2부 리그)에서 최하위에 머문 크리스탈 팰리스로 자리를 옮겼다.
머레이는 와 인터뷰를 통해 이유를 밝혔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나를 원하는 곳으로 갔을 뿐이다. 팰리스는 나에게 투자하고자 했고, 브라이튼에서는 그러한 사랑과 관심을 느끼지 못했다. 그해 여름에 브라이튼은 또 다른 최전방 공격수인 크레이그 맥카일-스미스를 영입하며 최고 이적료를 경신했다. 나는 그 시즌 리그 원에서 22골을 넣었는데도 불구하고 주전 스트라이커로 중용 받지 못하는 것 같았다. 이제는 떠날 때가 됐다고 생각했다.”
첫 시즌은 적응이 필요했지만, 이후부터 잠재력이 터졌다. 2012-13시즌 42경기에서 30골을 넣으며 득점왕을 차지했다. 팰리스는 플레이오프에서 승리했고, 머레이는 데뷔 10년 차에 처음으로 프리미어리그에 발을 들이게 됐다. 2부 리그 최하위에 있던 팀이 2년 만에 승격을 이룬 데에는 그의 활약상을 빼고 논할 수 없었다.
꿈꾸던 무대에 입성하는 듯했지만, 시즌 종료 직전 무릎을 다치면서 부상이 그를 가로막았다. 결장이 길어졌고, 모든 것을 처음부터 시작해야 했다. 결국, 임대로 팀을 떠나며 다시 거취를 옮겨 다녔다.
머레이는 “처음 겪는 일이었다. 너무나도 고통스러워서 정신이 아득해졌다. 무릎이 360도 돌아가며 톡 하고 터져버렸다. 주변 선수들이 소리가 들렸다고 할 정도였다. 땅에 쓰러지고 아파서 괴로웠지만, ‘이 경기는 TV로 생중계되고 있고, 내가 소리를 지르고 있다. 다친 상태이니 사람들이 나만 집중적으로 보게 될 거야. 소리를 내지 말자!’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고통이 너무 심해서 멈출 수 없었다”며 당시 느꼈던 감정을 꺼냈다.
언제나 그의 앞에는 시련이 존재했다. 머레이는 “유소년일 때는 꽤 괜찮은 수준에서 축구를 했지만 아마추어라서 돈이 조금 들어오는 탓에 결국 공장에서 일을 시작했다. 기회가 거의 사라진 것 같았다. 내 꿈은 여전히 프로 축구 선수가 되는 것이었지만, 날이 갈수록 점점 어려워 보였다”고 힘들었던 어린 시절을 회상했다.
선수 생활 내내 늘 자신감이 부족했다던 그는 자신을 항상 ‘루저’라고 생각하며 모든 경기를 절실하게 뛰었다.
“항상 나를 ‘루저’라고 생각했다. 아무것도 쉽게 주어지지 않았고, 모든 것을 위해 정말 열심히 노력했다. 심지어 팰리스에서 활약하고 있을 때도 현실적으로 28, 29살이 된 시점에 프리미어 리그 클럽들이 ‘우리는 글렌 머레이를 원해요’라며 나를 영입할 리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승격을 통해 1부에 가야 했다.”
공격수라는 포지션이 심리적 부담으로도 작용하기도 했다. 그는 “신예 시절 리그 투(4부 리그)에서 골을 넣고 성공해야 한다는 압박을 느꼈고, 몇 번의 기회를 놓치면 매우 심하게 자책했다. 지인의 조언대로 경기를 잘 못한 날은 일부러 다른 행동을 해보려고 했는데, 이것이 도움이 됐다. 2017년에 페널티킥을 실축한 경기 후 술집에 갔는데 어떤 사람이 ‘젠장, 어떻게 뻔뻔하게 이런 데에 나타나?’라고 했다. 당연히 기분 나빴지만, ‘뭐라고? 내가 일부러 못 넣은 줄 아나?’라고 받아쳤고, 결국 그 사람이 술을 사며 화해했다”고 부담을 극복했던 일화를 들려줬다.
30대 중반이 넘은 머레이는 다시 한번 전성기를 맞이했다. 2016-17시즌 2부 리그에 있던 브라이튼에 돌아와서 45경기 23골로 공동 득점 2위에 오르며, 또 한 번 팀을 승격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이러한 활약으로 생애 처음 머레이가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에 승선할 거란 관심이 쏠리기도 했다.
당시 대표팀 관계자에게 연락은 없었는지에 대해, 그는 “없었다. 6개월은 늦었던 거 같다. 샘 앨러다이스가 감독이었다면 기회가 있을 수도 있었지만, 가레스 사우스게이트가 새로 부임하면서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나아갔다. 그는 젊은 선수들에게 기회를 줬다. 안타깝지만 내가 프리미어리그에서 잘할 때와 시기가 맞지 않았다. 하지만 대표팀 얘기가 나온다는 건 놀라웠다. 오해는 말아 달라. 당시 내 나이가 34세였으니, 그의 결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고 조심스러워했다.
은퇴 후에도 머레이의 축구 인생은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이다. 브라이튼의 홍보대사와 영국의 TV 채널에서 해설자로 활동하고 있다. 언론 활동에 평소 욕심이 있었는지를 묻자 “아니다. 사실 나이를 먹을수록 인터뷰하는 것을 싫어했다. 브라이튼 미디어팀은 ‘당신이 처음 클럽에 왔을 때만 해도 인터뷰를 시키는 것은 고문이었지만, 지금은 어디서나 인터뷰하고 있네요!’라고 지금도 나를 비웃는다”고 부정했다.
머레이에게 이 인터뷰도 고문은 아닌지 농담을 건네자, “아니다, 아니다. 완벽했다“고 웃으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글='IF 기자단' 1기 김아인
정지훈 기자 rain7@fourfourtw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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