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LG·현대차까지…한국 기업들 괴롭힌다는 ‘괴물’의 정체는? [뉴스 쉽게보기]

박재영 기자(jyp8909@mk.co.kr), 임형준 기자(brojun@mk.co.kr) 2023. 7. 30.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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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삼성전자나 LG전자, SK하이닉스, 현대자동차 같은 우리나라 주요 기업들이 미국에서 소송에 시달리고 있대요. 그런데 소송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다 비슷비슷해요. 한국 기업이 특허를 침해해서 손해를 봤으니 배상금을 달라는 주장이죠.

기술 개발 경쟁이 심화하는 중이니 특허 관련 소송도 많아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실 수 있어요. 한국 기업들이 이제 국내를 넘어 세계 시장에서 외국 경쟁사들과 주도권 다툼을 벌이고 있으니까요.

이상한 점은 연달아 소송을 제기하는 곳이 우리나라 기업과 경쟁하는 회사들이 아니라는 거예요. 반도체나 스마트폰, 자동차 생산이나 개발과는 관련 없는 기업들이죠. 또 눈에 띄는 건 대부분의 소송이 미국의 특정 법원을 통해서 들어왔다는 거예요. 뭔가 수상한 점이 많은데요.

요즘 이런 소송이 너무 많아져서 우리 기업들이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어요. 시달림에 견디다 못해 소송을 건 상대방에 ‘괴물’이라는 별명까지 붙여줬다고 해요. 정부도 ‘더 이상 괴물을 두고 볼 순 없다’며 대책 마련에 나섰고요. 한국 기업들을 괴롭힌다는 괴물, 과연 그 정체는 무엇일까요?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의 모습. 사진=한주형 기자
미국에 나타난 괴물의 정체
우리 기업들에 소송을 건 기업은 특허관리전문회사(NPE·Non Practicing Entity)라 불리는 곳들이에요. 이들은 제품을 제조·판매하지도 않고 서비스를 제공하지도 않아요. 물론 연구나 개발도 하지 않고요.

대신 이들은 특허권을 저렴한 가격에 사들이는 데 집중해요. 경영난을 겪는 기업이나 중소기업, 개인 발명가의 특허를 많이 사들인다고 해요. NPE들은 이렇게 사들인 특허권을 이용해 특허 사용료를 받아내거나, 소송을 걸어 배상금을 받는 식으로 수익을 올려요. 이런 NPE를 두고 ‘특허괴물’이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있죠.

물론 보유 중인 특허권을 주장하는 건 정당한 행위예요. 하지만 한국 기업들은 NPE와의 특허 소송이 시작되면 불리한 싸움을 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해요.

괴물과의 싸움이 불리한 이유
기술력을 두고 경쟁하는 기업 간에 특허 소송이 발생하면 보통 적당히 합의하고 마무리한다고 해요. 일반적으로 서로의 기술을 교환하는 협정을 맺는다고 하죠. 기술 발전 속도가 점차 빨라지다 보니 특허도 워낙 많고, 이젠 한 기업이 보유한 특허만으로는 제품을 온전히 완성하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이죠.

예를 들어 스마트폰을 하나 만들려고 해도 반도체, 통신부품, 디스플레이, 배터리 등 수없이 많은 부품들이 필요하잖아요. 삼성전자가 만든 스마트폰에는 애플이 개발한 기술이, 애플의 제품에도 삼성전자 기술이 일부 탑재될 수밖에 없다고 해요.

아이폰XS. 사진 제공 = 애플
만약 이런 삼성전자와 애플이 특허권을 두고 맞소송 등의 법정 다툼을 벌이면 서로 좋을 것이 없어요. 재판 결과에 따라 제품 판매 중단 등 최악의 상황을 맞을 수도 있으니까요. 결과가 불확실한 싸움을 하는 것보단 적당한 선에서 합의하는 게 더 현명한 선택인 거죠. 두 회사가 서로 보유한 특허를 검토해 보고, 상대방이 보유한 기술이 더 개발하기 어려운 것이라면 그만큼 비용을 지불하는 방식으로요.

하지만 제품을 개발하거나 생산하지 않는 NPE는 소송전으로 가도 잃을 게 별로 없어요. ‘안 돼도 그만’이라는 식으로 일단 소송을 걸어볼 수 있죠. 이렇게 되면 소송을 당한 기업은 판매 중단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피하고자 NPE의 요구에 응하는 경우도 많대요.

괴물이 더 강해지는 곳
우리 기업들이 NPE와의 소송전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또 있어요. NPE가 유리한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는 미국의 특정 법원을 이용해 소송을 진행하기 때문이에요. 2018년부터 2022년까지 5년간 미국에서 발생한 한국기업 관련 특허소송 1137건 중 52%에 달하는 600건이 텍사스 동부지방법원과 서부지방법원에서 진행됐어요. 100곳에 육박하는 미국의 지방법원 중 단 두 곳에서 절반이 넘는 소송을 담당한 건데요.

이는 미국 법원의 특징 때문이에요. 한국에선 판사들이 정기적으로 근무지를 바꾸지만, 미국의 연방지방법원 판사는 한 법원에서 계속 근무하는 문화가 있다고 해요. 특정 판사의 성향이 해당 법원의 특징이 될 수 있는 구조죠.

우리 기업들이 소송을 많이 당하는 미국의 연방지방법원은 다른 곳들에 비해 특허 소송의 진행 속도가 빠르고, 특히 특허권을 침해당했다고 소송을 건 측의 승소 비율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어요.

게다가 미국에선 소송 대상 기업이 사업을 하는 곳이라는 게 입증되면 어디서나 특허 침해 소송을 제기하고 재판을 열 수 있다고 해요. 번듯한 사무실이나 대규모 공장이 없더라도, 판매 매장만 있어도 가능하죠. NPE 입장에선 미국에서 전국적으로 영업하는 거대 기업을 대상으로 특허 소송을 제기할 땐, 가장 유리한 법원을 선택해 특허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거예요. 상황이 이렇다 보니 유럽의 NPE까지 미국에서 우리 기업들을 상대로 소송을 거는 사례도 등장했고요.

미국 내 소송 기준. 자료=특허청
지난해 미국에서 한국 기업을 상대로 제기된 특허소송 10건 중 8건 이상은 NPE에 의한 것으로 나타났어요. 84.6%가 NPE에 의한 특허 공격이죠. 이 비율은 높아지는 추세예요.
왜 하필 우리 기업이야?
NPE들은 주로 높은 기술력이 필요한 제품을 대량으로 제조해 판매하는 기업들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요. 스마트폰이나 반도체, 자동차, TV, 냉장고 등 다양한 제품을 수출하는 한국 기업들은 좋은 공격 대상이죠. 이런 제품들에 들어가는 수없이 많은 기술 중 단 하나라도 특허권 분쟁에 휘말리면 판매에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으니까요.

또 특허 소송에서 NPE가 승소하면 배상액은 매출액을 기준으로 정해지기 때문에 상대 기업이 크면 클수록 더 많은 이득을 챙길 수 있다고 해요. 그래서 한국 기업뿐 아니라 미국의 애플이나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기업들도 NPE의 소송에 시달리고 있는데요. 첨단 제품 수출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엔 NPE가 더 큰 골칫거리일 수밖에 없어요.

특히 미국에서 NPE로부터 가장 많은 소송에 시달리는 한국 기업은 삼성전자라고 해요. 일주일에 한 번꼴로 소송을 당한다고 하죠. ‘특허괴물’의 집중 공격을 받다 보니 심지어 내부 출신 적까지도 생겨났어요.

삼성전자에서 지식재산권 관련 업무를 총괄하던 한 임원(부사장)이 퇴사 후 직접 미국에서 NPE를 차리고 소송을 제기한 거예요. 이 전직 임원은 어떤 방식으로 소송을 걸어야 효율적일지를 잘 알 테죠.

SK하이닉스 연구자가 반도체 공정을 들여다보는 모습. 사진 제공=SK하이닉스
NPE, 나쁘기만 한 건 아닌데
일부 한국 기업 입장에선 눈엣가시겠지만, NPE를 싸잡아 욕하는 건 불합리하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모든 NPE가 마구잡이식 소송전을 통해 수익을 내는 건 아니거든요. 작곡가가 저작권료를 받듯, 특허권을 보유한 이가 사용료를 요구하는 것도 정당한 권리행사인데 문제 될 게 없다는 시각이죠. 단지 이들은 특허 기술의 가치를 남들보다 먼저 알아보고 투자했을 뿐이라는 거예요.

어떤 이들은 NPE가 꼭 필요한 존재라고까지 말해요. 이들 덕에 특허권에 대한 가치를 제대로 인정해 주는 분위기가 만들어질 수 있었다는 거예요. 이런 분위기가 인류의 기술 발전에도 도움이 될 거라는 논리죠. 특히 개인 발명가나 대학, 소규모 연구소 등은 특허권에 대한 철저한 보호가 더욱 절실해요. 개인이 특허권을 두고 거대 기업과 소송전을 벌이게 되면 아무래도 불리할 수밖에 없잖아요.

누군가에겐 꼭 필요한 존재라고 하지만 우리 기업들은 NPE가 미워 보일 수밖에 없을 텐데요. 일단 정부는 우리 기업들의 피해가 작지 않은 만큼 주기적으로 NPE의 동향을 점검하겠다는 계획이에요. 수상한 낌새가 보이면 미리 경고하고, 소송전이 벌어지면 공동으로 대응하겠다는 방안도 발표했죠. 우리 기업들과 미국에 사는 ‘괴물’과의 싸움은 당분간 계속될 것 같네요.

<뉴미디어팀 디그(di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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