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철 “남·북·미 군사적 자제 기대 어려워···평화체제 논의로 충돌 막아야”[정전70년]

박광연 기자 2023. 7. 30.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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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철 전 통일부 장관이 지난 24일 서울 여의도 한반도평화포럼 사무실에서 경향신문과 정전협정 70주년 인터뷰를 하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김연철 전 통일부 장관은 현재 한반도 정세와 관련해 “지난 70년과 비교하면 현재 남북, 미국 모두에게 군사적 자제력을 기대하기 어려운 굉장히 위험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한반도 비핵화와 함께 평화체제를 논의해 남북의 우발적 충돌을 예방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전쟁 정전협정 체결 70주년을 맞아 지난 24일 서울 여의도 한반도평화포럼 사무실에서 김 전 장관을 만났다. 김 전 장관은 “남북관계는 러닝머신에서 뛰는 것과 같다”며 “뛰어야 제자리걸음을 유지할 수 있고 멈추면 넘어진다”고 남북 소통 재개를 촉구했다. 그는 “미국과 중국의 협력이 안 되면 평화적 해법을 마련할 수 없다”며 미·중 갈등 구도에서 정부의 유연한 외교를 강조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통일부 장관과 통일연구원장을 역임한 김 전 장관은 한반도평화포럼 이사장과 인제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다음은 일문일답.

-정전 70주년의 한반도 정세를 평가해달라.

“지난 70년간 한반도에 여러 번 전쟁 위기가 있었지만 남북과 미국 3자 중 누군가 자제력을 발휘했기에 충돌하지 않았다. 지금은 남북과 미국 모두 자제력을 기대하기 굉장히 어렵다. 윤석열 정부는 평화라는 단어를 삭제하며 대결 의식을 보이고, 북한은 군사적 긴장을 자신의 전략적 이익으로 판단하고 있다. 미국은 중국 억지를 위해 주한미군 역할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 굉장히 위험하다. 긴장이 계속 높아지면 우발적 충돌의 가능성이 있다. 긴장을 어떻게 관리할지를 아무도 고민하고 있지 않다는 게 문제의 핵심이다.”

평화체제 논의 30년 이상 역사
진보나 특정 정부 주장 아니다

-정전체제의 평화체제 전환은 왜 필요한가.

“불안정한 정전체제를 항구적인 평화체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논의의 역사는 30년 이상으로 길다. 평화체제 전환은 보수 중 보수 노태우 대통령이 대한민국 정부 처음으로 공식 제기했다. 1991년 유엔 총회 연설에서 전 세계인에게 공약하며 남북기본합의서에 담았다. 국민의힘의 뿌리인 김영삼 대통령은 1996년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과 제주 선언을 통해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를 위한 4자 회담을 제안했다. 평화체제를 진보와 특정 정부의 정치적 주장으로 해석하는 건 잘못된 사실이다.”

-시민들에게 평화체제는 왜 중요한가.

“남북관계 악화가 장기화하면서 그러한 현실에 순응하는 모습이 나타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평화는 공기와 같다. 있을 땐 못 느끼지만 없어지면 많은 시민의 일상생활에 영향을 미친다. ‘평화가 전부는 아니지만 평화가 없으면 아무것도 없다’는 빌리 브란트(서독 총리)의 얘기는 분단시대를 살아가는 시민들이 공유해야 할 철학이다.”

-평화체제는 어떤 상태를 지향하나.

“제일 중요한 건 전쟁이 일어날 수 있는 환경을 예방하는 거다. 추상적으로 얘기하면 어떤 상황에서도 안전하고, 평화가 깨지지 않도록 하는 게 목표다.”

-그간 평화체제 논의는 왜 진전되지 못했나.

“30년 동안 평화체제는 북핵 문제와 함께 논의됐다. 북한이 핵을 포기할 수 있는 환경을 어떻게 만들 것이나 문제와 연결돼있다. 평화체제 논의가 성공하지 못한 이유는 다시 말해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협상이 성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북핵 문제가 훨씬 악화하며 평화체제 논의도 그만큼 멀어졌다. 그렇지만 결국 우리의 목표는 평화적 방식으로 북핵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는 비전이 포함돼야 한다.”

-문재인 정부 말 종전선언 논의는 무산됐다.

“종전선언은 평화협정으로 가는 일종의 징검다리다.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은 남북, 미국, 중국 4자가 추진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비핵화 협상이 어느 정도 진행돼야 종전선언 논의도 따라가는데, 2019년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실패 이후 비핵화 논의에 대한 양국 입장 차가 커졌다. 이에 따라 종전선언에 대한 입장 차를 좁힐 가능성이 많이 줄어든 것이 제일 큰 원인이었다.”

김연철 전 통일부 장관이 지난 24일 서울 여의도 한반도평화포럼 사무실에서 경향신문과 정전협정 70주년 인터뷰를 하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북한 비핵화와 평화체제 전환 병행돼야
남북관계는 런닝머신 뛰기, 멈추면 넘어져

-북핵 해결이 먼저라는 주장이 있다.

“비핵화와 평화체제 전환은 병행돼야 한다. 평화적 환경을 조성하지 않고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대북)제재를 강화하는 등의 강압적 방법이 역사적으로 성공적이었는지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그 결과 북핵 문제는 더 고도화되고 (남북)관계는 악화됐다. 강압적 방식은 (북한) 권위주의 정권을 강화시킬 수밖에 없다.”

-현 정부의 대북 압박 정책은 효과가 없나.

“안보를 강화해 평화를 지키는 ‘피스 키핑’의 중요성은 어느 정부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전력을 강화할수록 상대방도 그에 따라 전력을 강화한다. 결과적으로 안보를 강화했는데 안보가 불안해지는 딜레마에 도달한다. 중요한 건 평화를 만드는 ‘피스 메이킹’ 노력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점이다. 피스 메이킹 없는 피스 키핑은 안보 딜레마로 갈 수밖에 없다.”

-비핵화와 평화체제 협상 병행은 실패해왔는데.

“협상의 목표는 ‘문제 해결’과 ‘상황 악화 방지’ 두 가지다. 지금은 상황이 너무 악화됐기 때문에 악화를 동결시킬 과도기적 조치가 필요하다. 협상이 진행되면 상황이 더 악화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최소한 현재 상황을 유지·관리해야 해법을 마련할 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 남북관계는 마치 러닝머신에서 뛰는 것과 마찬가지다. 뛰어야 제자리걸음을 유지할 수 있고 멈추면 넘어진다. 협상이 중단되면 긴장이 고조되고 의도치 않은 우발적 충돌이 발생할 수 있다. 불신 속에서 신뢰를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가의 문제다.”

남북 대화의 시작은 상대 인정
악수하려면 주먹 말고 손 펴야

-남북 신뢰 구축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나.

“현재 우발적 충돌을 방지할 수 있는 모든 남북 간 소통 채널이 차단돼있어 매우 위험하다. 아무리 관계가 안 좋아도 소통 채널은 유지돼야 한다. 오해를 풀고 상대방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중요하다. 대화의 출발은 상대에 대한 인정이다. 윤석열 정부처럼 상대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면 대화가 이뤄지기 굉장히 어렵다.”

-정부는 다양한 분야에서 대화를 제안해왔는데.

“악수를 하려면 손을 펴야 한다. 주먹을 쥐고 악수하자고 하면 상대방이 악수할 수 없다. 어떤 주제라고 해도 대화의 상대로 인정해야 대화가 시작될 수 있다.”

-북한이 핵 무력 강화에 집중하며 대화를 거부한다.

“북한이 핵무장을 강화하거나 협상에 나오는 것은 환경을 어떻게 조성하느냐에 달려있다. 어떤 식으로든지 북한과 협상 환경을 조성하는 것은 (한·미 정부의) 외교적 능력이다. 미국 정부도 (북한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와 노력이 있어야 한다. 현재 미국에서 북한 문제는 국내 정치화가 돼 있고 우선순위가 낮다. 그러다 보니 북한이 핵무장을 강화한다고 미국이 적극적인 협상 의지를 보일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김연철 전 통일부 장관이 지난 24일 서울 여의도 한반도평화포럼 사무실에서 경향신문과 정전협정 70주년 인터뷰를 하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평화체제 전환에 가장 시급한 조치는.

“굉장히 어려운 상황이다. 남북관계 악화가 첫 번째 어려움이라면 두 번째는 미국과 중국이 전략 경쟁을 본격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30년간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의 공통점은 미·중이 협력할 때 논의가 진전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더는 미·중 협력을 기대하기 어렵고 한·미·일과 북·중·러 진영 대결이 특히 군사 분야에서 악화되고 있다. 장기적 과제를 해결할 실마리를 어디서부터 찾아야 할지는 정부가 야당, 시민사회와 함께 고민해야 한다. 핵심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매우 어려운 시기가 도래했다는 점이다.”

-구체적 해법이 있나.

“구체적 해법을 제시하기는 어렵다. 동북아 지역질서는 주변 강대국 간 관계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에 (한국 정부의) 외교적 역할이 중요하다. 굉장히 구조적으로 바뀌고 있는 복합 질서 속에서 변화를 정확히 진단하고 국익을 어떻게 최대화할지 판단하는 유연성이 제일 중요하다. 윤석열 정부는 정반대다. 매우 이념적이고 경직적이라 지금 상황과 어울리지 않는다. 가장 안타까운 지점이다. 상호 의존도가 높아진 지난 50년 미·중 협력관계의 새로운 변화는 하루아침에 결딴나지 않는다. 굉장히 시간이 오래 걸리는 전환기를 거쳐야 한다. 너무 빨리 (미국과 중국 중) 양자택일에 서면 국익과 충돌할 수밖에 없다.”

미중 경쟁에서 한반도 문제 분리하는 외교 필요
평화체제는 초당적, 장기적 관점에서 접근해야

-북한에 대한 미·중 협력은 어려워 보인다.

“미·중 전략경쟁에서 북핵과 한반도 문제에 대한 미·중 협력을 분리하는 게 우리의 외교적 목표여야 한다. 북핵 문제는 그나마 미·중이 공감대를 이룰 수 있는 분야다. 중국은 북한 핵무장이 가져올 동북아 지역질서 변화를 우려한다. 미국은 세계적 차원에서 NPT(핵확산금지조약) 체제를 유지할 필요성이 크다.”

-정전협정도 못 지키는데 종전선언은 시기상조 아닌가.

“그럴수록 긴장 완화 방안들이 필요하다. 종전선언을 추진할 때 정전체제를 관리하는 유엔사 기능과 관련한 여러 쟁점이 제기될 수 있다. 새로운 국면에서 (체제) 관리를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분명한 합의가 있기까지 정전체제를 유지하면 된다. 새 평화체제가 만들어지기 전까지 정전체제를 준수한다는 것이 30년 전 남북기본합의서의 핵심 내용이다.”

-현 정부는 과거 종전선언 추진을 비판한다.

“북핵 문제를 해결하고 평화체제를 만드는 것은 장기적 과정이다. 한 정부 임기 내에 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전임 정권의 대북정책을 부정하면 지속성을 갖기 어렵다. 가장 중요한 건 초당적 협력이다. 초당적 협력이 불가능하면 북한과 협상이나 외교적 협상이 점점 어려워진다. 국내 정치와 다르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공감대를 모으지 않고 차이와 혐오, 대결을 조장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박광연 기자 lightyea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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