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암 예방 첨병’ 급부상 헬리코박터균 제균 치료
항생제 부작용·비용 대비 효과 등 득실 꼼꼼 따져야
(시사저널=노진섭 의학전문기자)
위암을 예방하기 위해 현재 위내시경 검사를 정기적으로 받는 것처럼 향후엔 헬리코박터균 제균 치료를 받는 날이 올 것으로 보인다. 현재 위암 예방 차원에서 헬리코박터균 제균 치료는 권장되지 않는다. 그러나 최근 제균 치료의 위암 예방 효과를 입증하는 연구들이 쏟아지고 있다. 특히 현재 진행 중인 국제암연구소(IARC)와 국립암센터의 대규모 연구는 일반인 상대의 제균 치료 유효성을 입증하는 근거가 될 전망이다. 이 근거에 따라 위암 발생률과 헬리코박터균 감염률이 모두 높은 한국 등 동아시아 국가에서는 헬리코박터균 제균 치료가 새로운 위암 예방법으로 지정될 수 있다.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국내 위암 발병률은 2019년 기준 3위의 암이다. 그나마 위내시경 검사가 보편화되면서 과거보다 낮아진 수준인데도 인구 10만 명당 발병률로는 세계 1위이며 미국의 10배 규모다. 서양보다 국내 위암 발병률이 높은 배경에는 찌개나 김치 등 짠 음식 위주의 식습관도 있지만 헬리코박터균 감염도 한몫한다. 헬리코박터균은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IARC가 2012년 분류한 1군 발암물질이다.
세균 감염은 감염 경로를 찾아 차단하면 예방할 수 있다. 헬리코박터균의 감염 경로는 뚜렷하지 않아 이렇다 할 예방법이 없다. 다만 현재까지는 '항문-구강'과 '구강-구강'이 가장 유력한 감염 경로다. 항문-구강 경로는 대변으로 배출된 헬리코박터균이 물·음식을 통해 사람을 감염시키는 것이고, 구강-구강 경로는 엄마가 숟가락 하나로 아이에게 음식을 주고 자신도 먹으면서 감염되는 것이다. 실제로 헬리코박터균 감염자가 있는 가정에서는 배우자와 자녀의 감염률도 높다.
이런 경로로 침투한 헬리코박터균은 위에 자리를 잡는다. 일반적으로 세균은 위에 들어오면 위산의 강한 산성으로 인해 생존할 수 없지만 헬리코박터균은 특정 효소(urease)를 분비해 위산을 중성으로 만들어 생존한다. 산성 위액을 막기 위한 중성 보호막을 치는 셈이다. 이처럼 강한 생존력을 갖춘 헬리코박터균은 인류에게 가장 흔한 감염균이다. 세계 인구의 절반이 이 균에 감염된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대한상부위장관·헬리코박터학회에 따르면 1990년대 후반만 해도 헬리코박터균 감염률이 70%에 육박했으나 20년 후인 2016년 50%로 떨어졌다. 위생 상태 개선과 제균 치료 등으로 헬리코박터균 감염률은 과거보다 낮아지긴 했어도 미국·유럽보다 2~3배 높은 편이다.
헬리코박터균은 위점막을 약하게 만들기 때문에 위궤양·십이지장궤양이 발생하기 좋은 환경이 마련된다. 위에 염증을 일으켜 위암 전단계(위축성위염·장상피화생)를 만들기도 한다. 위축성위염은 위벽이 얇아지는 상태이고, 장상피화생은 매끈한 위점막이 염증으로 인해 대장이나 소장의 표면처럼 울룩불룩하게 변한 상태를 말한다. 위축성위염과 장상피화생은 위암으로 진행할 가능성이 높다. 또 위 세포의 DNA에 손상을 입혀 위암 위험도 커진다. 이처럼 헬리코박터균은 위염·위궤양·십이지장궤양·위림프종·위암 발생과 관련이 있다.
지금은 고위험군에만 제균 치료 권고
그렇다면 헬리코박터균을 제거하면 다양한 소화기 질환을 예방할 수 있지 않을까. 헬리코박터균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위염·위궤양·십이지장궤양 등 소화기 질환의 원인을 스트레스·식습관·위산과다 등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치료가 쉽지 않았다. 헬리코박터균을 발견한 이후 1980년대 들어 소화기 질환의 치료는 큰 진전을 보였다. 국내 위궤양 환자의 60~80%에서, 십이지장궤양 환자의 90~95%에서 헬리코박터균이 발견되는데 이들 질환을 치료해도 1년 내 재발 가능성이 50%나 된다. 그러나 헬리코박터균을 제거하고 질환을 치료하면 이들 질환의 재발률이 10% 이하로 감소한다. 이에 따라 대한상부위장관·헬리코박터학회는 위궤양·십이지장궤양·위림프종·조기위암인 경우 제균 치료를 권장한다. 위림프종은 제균 치료만으로 60~80%가 완치되고, 조기위암일 때 제균 치료를 하면 위암 발생 빈도가 3분의 1로 감소한다.
헬리코박터균 제균 치료는 2가지 항생제와 강력한 위산 억제제를 2주일 정도 복용하면 된다. 약 80%는 제균에 성공한다. 그러나 항생제 부작용이 우려된다. 항생제는 설사·복통·오심 등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가장 흔한 부작용인 설사는 10~30%에서 발생한다. 5~15%에서는 미각 이상이 발생해 음식 맛이 쓰거나 금속 같은 맛을 느낀다. 피부 발진이나 두드러기가 생길 수도 있다. 대부분은 경미하거나 일시적이지만 2~5%는 혈변이나 심한 설사, 심한 피부 질환을 경험한다.
더 큰 문제는 내성균의 출현이다. 항생제 복용을 건너뛰거나 중단하면 제균에 실패하는데 이때 내성균이 생겨 추후 치료가 힘들어진다. 또 제균 치료로 식도암·역류성식도염·천식 등이 발생한다는 연구 보고도 있다. 심할 경우에는 장내 미생물총(마이크로바이옴)의 균형이 깨지면서 각종 질병에 취약한 상태가 될 수 있다. 최일주 국립암센터 위암센터 소화기내과 교수는 "헬리코박터균이 있다고 모두 위암이 생기는 것은 아니지만 헬리코박터균 감염자는 비감염자보다 위암 위험이 20배 높다. 헬리코박터균 가족력이 있는 사람도 비감염자보다 위암 위험이 2~3배 높다. 헬리코박터균 가족력이 있는 사람에게 제균 치료를 시행해 보니 3분의 1 이상에서 위암 발생이 감소하는 효과를 보였다"고 말했다.
"일반인 제균 치료로 위암 위험 43% 감소"
일반인이 이런 부작용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헬리코박터균을 제거해도 위암을 예방한다는 뚜렷한 근거가 부족하다. 헬리코박터균을 제거한 사람과 보균자 의 위암 발생률에 큰 차이가 없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헬리코박터균을 없애면 소화기 질환을 예방하거나 재발을 막을 수 있지만 일반인에게 위암 예방 목적으로 제균 치료를 권하기에는 부담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위암 고위험군에만 헬리코박터균 제균 치료를 시행한다. 위축성위염·장상피화생이 있는 경우, 위암 가족력이 있는 경우, 원인이 뚜렷하지 않은 철분 결핍성 빈혈이 있는 경우 등은 제균 치료로 효과를 볼 수 있다.
그런데 고위험군이 아닌 일반 헬리코박터균 감염자도 제균 치료 대상에 포함해야 한다는 의학적 시각이 최근 나오기 시작했다. 만일 이런 시각과 근거가 충분히 쌓이면 위내시경 검사와 같은 새로운 위암 예방 지침이 마련될 수 있다. 실제로 헬리코박터균 감염자 개인은 아니더라도 감염 집단 인구에 대한 제균 치료는 필요하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중국 푸젠의대 연구진은 1994년부터 2020년까지 위암 발생률이 높은 산둥성 주민 1630명을 대상으로 헬리코박터균 제균 치료가 위암 발생률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대조군 연구를 진행했다. 제균 치료를 받은 군에서 위암 진단을 받은 비율은 2.5%였고 위약군에서 위암 진단을 받은 비율은 4.3%였다. 헬리코박터균을 제거하면 위암 발생 위험이 43% 감소한 셈이다. 특히 제균 치료군 중에서 위축성위염·장상피화생 등 위암 전단계가 없는 사람에게서는 위암 발생 위험이 63%나 감소했다. 연구진은 헬리코박터균 제균 치료가 위암 발생을 장기적으로 예방하는 효과가 있으며, 특히 위암의 전구 병변이 없을 때 효과가 더 뚜렷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또 연구진은 통계적으로 유의미하지는 않았지만 위축성위염에서 헬리코박터균 치료 후 위암 발생 위험도가 감소한 만큼 위축성위염과 장상피화생 등 전암성 병변에서도 제균 치료의 이득을 부인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2020년에는 대만·독일·일본·중국·태국·호주 등 11개국 전문가 28명이 헬리코박터균 박멸이 위암 예방에 기여하는지에 대해 논의하고 그 결과를 공개했다. 개인 차원에서 헬리코박터균 제균 치료가 위암 위험을 줄이므로 권장한다고 발표했다. 집단 차원에서, 특히 위암 발생률이 높은 인구에서 헬리코박터균 진단과 치료는 비용 대비 효율적이라고 밝혔다. 무엇보다 위축성위염 등이 생기기 전 그리고 50세 이상에게 헬리코박터균 제균 치료를 권장했다.
박수경 서울대 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미국·유럽 등 서양은 헬리코박터균 감염률과 위암 발생률이 낮다. 인도는 헬리코박터균 감염률은 높으나 위암 발생률은 낮다. 이런 나라에서는 일반 헬리코박터균 감염자에 대한 제균 치료가 필요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헬리코박터균 감염과 위암 발생 모두 높은 우리나라·중국·일본 등 위암 고위험국은 헬리코박터균 감염 집단에 대한 제균 치료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현재 국가건강검진에서 위암 예방을 위해 40세 이상은 2년 주기로 위내시경 검사를 받을 수 있다. 이 국가건강검진에 헬리코박터균 제균 치료를 포함하려면 그만한 의학적 근거가 필요하다. 근거도 없이 위암 예방 차원에서 제균 치료를 시행하면 자칫 돈만 쓰고 효과를 보지 못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 그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국립암센터와 IARC가 2014년부터 장기 대규모 연구를 진행 중이다. 일반 인구 집단에 대한 헬리코박터균 제균 치료가 위암 위험을 55% 낮추는 게 목표인데, 2026년쯤 중간 결과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
제균 치료 효용성 연구 결과, 2026년 나올 듯
40세 이상이든 50세 이상이든 특정 인구 집단에 대한 헬리코박터균 제균 치료로 위암 발생을 억제하는 것이 비용 대비 효과적이라는 근거가 마련되면 헬리코박터균 제균 치료는 위내시경 검사와 함께 새로운 위암 예방법이 될 수 있다. 물론 항생제 부작용, 비용 대비 효과 등 헬리코박터균 제균 치료의 득실도 따져봐야 한다. 최일주 교수는 "위암 사망은 이미 국가건강검진으로 줄어들고 있다. 즉 위내시경 검사가 보편화돼 있어 위암 발생뿐만 아니라 위암 사망을 효과적으로 억제하고 있다. 따라서 굳이 특정 인구 집단에 대한 헬리코박터균 제균 치료가 필요한지는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또 암 예방 차원에서 헬리코박터균 제균 치료를 권고하면 정작 중요한 위내시경 검사를 등한시해 위암 사망이 증가할 수도 있다. 이런 헬리코박터균 제균 치료와 관련된 득실을 따져 국가건강검진 전략을 짜야 할 시점"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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