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EU "쿠데타 니제르에 원조중단" 압박…아프리카 혼란 확대
아프리카서 러 영향 확대중…서방 대테러전·불법이민 대응에도 변수
(서울=연합뉴스) 권수현 기자 = 미국과 유럽연합(EU) 등 서방이 서아프리카 니제르에서 쿠데타를 일으킨 군부 세력에 원조를 중단하겠다고 압박하며 억류 중인 모하메드 바줌 대통령의 석방과 민주정권 복귀를 촉구하고 있다.
하지만 속속 군부에 장악돼온 아프리카 사헬지역(사하라 사막 남쪽 주변)에서 니제르가 극단주의 세력에 맞선 서방의 대테러전 거점이었고 EU행 불법 이주민에 대한 대응 문제, 러시아의 영향력 확대 움직임 등 변수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앞으로 상황이 어떻게 펼쳐질지는 불투명하다.
29일(현지시간) AP와 블룸버그 통신 등의 보도에 따르면 호주를 방문 중인 토니 블링컨 장관은 브리즈번에서 한 기자회견에서 바줌 대통령을 복권하고 민주질서를 회복하지 않을 경우 니제르에 대한 미국의 재정지원과 안보 협력을 중단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블링컨 장관은 "수억달러에 이르는 니제르와의 경제·안보 파트너십은 지난 며칠간의 활동으로 중단된 민주적 통치와 헌법 질서가 계속되느냐에 달렸다"며 "따라서 그러한 지원은 위험에 처해 있으며 이는 그들(군부 세력)이 즉시 되돌려야 하는 이유"라고 강조했다.
블링컨 장관은 앞서 이날 바줌 대통령과 통화했다고 말했지만 자세한 내용은 밝히지 않았다.
그는 "니제르 국민들의 삶에 중대한 변화를 일으키고 있는 우리의 중요한 지원이 명백히 위험에 처해 있다"면서 "니제르의 헌법 질서와 민주주의를 파괴한 책임이 있는 이들에게 가능한 한 명확하게 이러한 뜻을 전달했다"고 덧붙였다.
블링컨 장관은 니제르 군부의 행동을 쿠데타로 지칭하지는 않았다. 미국이 이를 쿠데타로 규정할 경우 니제르는 수백만 달러의 군사 원조와 지원을 잃을 수 있다고 AP는 전했다.
앞서 이날 EU는 니제르 군부정권은 쿠데타로 집권해 정당성이 없다면서 니제르에 대한 재정 지원과 안보 협력을 중단할 방침을 밝히고, 바줌 대통령의 석방과 헌법 질서 회복을 촉구했다.
호세프 보렐 EU 외교안보 고위대표는 성명에서 "EU는 니제르의 쿠데타 군정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며 "예산 지원을 즉각 중단하며 안보 분야의 모든 협력 조치도 무기한 중단된다"고 말했다.
프랑스 외교부도 바줌 대통령의 즉각적인 복권을 촉구하며 니제르를 위한 모든 개발·예산 지원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세계은행(WB)에 따르면 니제르는 연간 20억 달러(약 2조5천억원)에 가까운 공적 개발 원조를 받는 세계에서 최빈국 중 하나다. 1960년까지 니제르를 식민 지배했던 프랑스는 2021년 기준으로 9천700만유로(약 1천366억원)를 니제르에 지원했다.
니제르가 국제사회의 원조에 크게 기대고 있는 만큼 수도 니아메의 상점가 등에서는 해외로부터 오는 '돈줄'이 막히고 사업에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하지만 서방의 이런 압박이 쿠데타를 일으킨 군부 세력에 통할지는 미지수다.
니제르는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 등의 활동으로 치안이 극도로 불안정한 사헬지역에서 보루 역할을 해온 전략적 요충지인 만큼 서방이 손을 떼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과 프랑스는 니제르를 이슬람국가(IS), 알카에다, 보코하람 등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세력에 맞선 대테러전 거점으로 삼아왔다.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미국은 1억1천만달러를 들여 니제르의 수도 니아메와 북부 도시 아가데스에 테러단체 토벌을 위한 드론 기지를 운영하며 니제르군을 훈련하고 있다. 이를 위해 미군은 최소 1천100명이 니제르에 주둔 중이다.
최근 수년간 서아프리카에서 영향력이 급감한 프랑스도 마지막 보루인 니제르에 병력 1천500명을 뒀다.
EU는 니제르를 아프리카에서 오는 불법 이민자 문제에 대처하기 위한 파트너로 삼아 왔다는 점에서 역시 관계를 단절하기 어렵다.
아프리카에서 갈수록 커지는 러시아의 존재감도 변수다. 러시아는 최근 수년간 민간용병기업 바그너그룹을 앞세워 쿠데타나 부정선거로 집권한 독재정권을 비호하면서 광물 개발 등 이권을 챙기는 식으로 아프리카 내 영향력을 확대해왔다.
니제르는 2021년 집권한 바줌 대통령의 서방 친화적 정책으로 인근 다른 국가와 달리 러시아와 유착관계가 상대적으로 약한 곳이었다.
NYT는 그러나 미국이 어떤 식으로든 니제르에서 철수하게 되면 러시아가 들어오는 문을 열어주는 격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NYT는 또한 이와 관련해 니제르의 쿠데타로 아프리카 5천600㎞를 가로지르는 '쿠데타 횡단 벨트'가 만들어졌다고 분석했다.
최근 수년간 사헬 지역에서는 말리와 부르키나파소, 수단, 차드 등 여러 국가에서 잇따라 군부 세력이 무력으로 민주 정부를 무너뜨리고 권력을 장악했다.
여기에 민주정부가 안정적으로 자리 잡는 듯했던 니제르에서도 쿠데타가 일어나면서 서부 해안의 기니에서 동부 해안의 수단까지 사헬 지역 대부분 국가가 쿠데타와 그에 따른 혼란에 휩싸였다는 것이다.
AP통신도 사헬지역에서 이슬람 극단주의세력의 폭력에 노출된 사람들의 불안감을 군부 세력이 이용해 정권을 찬탈하는 경우가 잇따르고 있다면서, 니제르에서 일어난 쿠데타로 지역 내 혼란이 가중됐다고 짚었다.
싱크탱크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의 서아프리카·중앙아프리카 지역 전문가인 카림 마누엘은 사헬지역 국가에서 잇따르는 쿠데타에 대해 "지역의 안정성을 훼손한다. 정치적 불안정을 증가시키고 현지 상황을 더욱 불안하고 예측하기 어렵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inishmor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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