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으로 뒤틀린 가족관계 바로잡는다

박미라 기자 2023. 7. 30.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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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부터 가족관계등록부 작성·정정 접수
4·3평화공원 내 행방불명인 표석. 박미라 기자
사실상의 자녀 정정 사례 가계도 예시. 제주도 제공

이모 할머니(75·당시 북촌리)는 1948년 태어나자마자 제주4·3사건으로 아버지를 잃었다. 이 할머니는 결국 작은아버지의 자녀로 등재됐고, 호적상 돌아가신 아버지와는 조카 관계가 됐다. 송모 할머니(76·아라리)는 4·3 당시 아버지가 행방불명되면서 ‘할아버지의 딸’이 됐다. 호적상 아버지와는 남매 사이가 된 것이다. 아버지의 제사를 직접 지내고 있지만 딸로서 유족 인정을 받지는 못하고 있다. 강모 할머니(80·하귀리)는 잠시 마을회관에 다녀오겠다던 아버지를 주검으로 맞이해야 했다. 군토벌대에 의해 마을 주민 20여명과 함께 총살당한 것이다. 당시 출생신고가 돼있지 않았던 강 할머니는 이후 외삼촌의 조카로 올려졌고, 호적상 아버지 없는 아이로 평생을 살아야 했다.

제주4·3사건 당시 가족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뒤틀린 가족관계를 바로잡기 위한 정정 작업이 본격적으로 이뤄진다.

제주도는 지난 28일부터 4·3사건 피해로 잘못된 가족관계를 바로잡기 위한 가족관계등록부 작성(정정) 신청을 접수받기 시작했다고 30일 밝혔다.

신청 대상은 4·3 피해로 인해 제적부(가족관계등록부)가 작성돼 있지 않은 희생자, 제적부가 사실과 다르게 기록된 희생자와 유족, 4·3희생자와의 신분관계 정정이 필요한 사람 등이다. 이들은 제적부 없는 희생자의 가족관계등록 창설, 희생자의 사망일시와 사망장소의 기재 또는 정정, 희생자인 친생 부모 및 공부상 부모와의 친생자관계존부확인 등을 신청할 수 있다.

기존에는 4·3 희생자의 사망일자와 장소의 정정만 허용됐다. 지난 3월 4·3특별법 시행령 등이 개정되면서 보다 폭넓게 희생자와 유족간의 관계 정정이 가능하게 됐다. 4·3으로 희생된 이들의 ‘사실상의 자녀’도 법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가족관계등록부 작성이나 정정을 위한 신청서가 접수되면 2개월간의 공고, 사실조사, 4·3실무위원회 심사, 4·3중앙위원회 심의·결정 과정을 거친다. 위원회의 최종 결과를 통지받은 신청인은 가족관계등록관서에서 가족관계등록부 작성이나 정정을 신청하면 된다.

앞서 제주도는 지난해 ‘제주4·3사건 가족관계 불일치 사례’를 조사한 결과 모두 427건을 접수 받았다. 이중 실제로는 희생자의 친생자이지만 희생자의 조카나 형제 등으로 출생신고가 된 ‘사실상의 자녀’ 사례가 228건으로 가장 많았다.

이는 4·3 당시 혼란스러운 상황으로 인해 혼인·출생신고를 하지 못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관습적으로 아이의 출생신고를 늦게 하기도 했으며 난리 속 호적이 불탄 경우도 있었다. 호적 등재가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4·3으로 갑작스럽게 부모가 사망하거나 행방불명되면서 아이들은 할아버지 또는 아버지 형제, 외가, 다른 집안의 호적에 오르는 사례가 적잖게 발생했다.

제주도 관계자는 “제주4·3사건 가족관계 불일치 사례조사 당시 신고자 427명에 대해서는 개별적인 우편 안내를 통해 조속한 신청·접수가 이뤄지도록 할 예정”이라면서 “오랜기간 뒤틀린 가족관계로 고통을 받았던 희생자와 유족들의 명예회복과 적법한 권리 회복을 위해 단 한분도 소외되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박미라 기자 mr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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