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 년 뒤 서울은 10대 건설사 브랜드 아파트村?[부동산백서]
(서울=뉴스1) 최서윤 기자 = 서울 각지에서 재건축·재개발 '열풍'이 한창입니다. 주민들이 선제적으로 추진위원회를 꾸리고 서울시도 이를 지원하며 민·관 협력 하에 한강 변은 70층, 그 외 지역도 50층씩 초고층 아파트로 거듭날 채비를 하고 있습니다.
한국전쟁 직후 피란민촌으로 형성된 흑석동 판자촌, 고도성장기 상경한 도시노동자들의 쉼터였던 청량리와 영등포, 신림동과 노량진 고시촌 등 근현대 풍경을 간직했던 골목골목은 이미 사라졌거나 허물어지기 직전이죠.
1990년대 엑스(X)세대부터 최근 엠지(MZ)세대에 이르기까지 여러 차례 새로운 세대가 탄생했지만 부동산 시장 급등 우려 등으로 개발이 멈춰서면서 새 세대가 들어갈 새집이 부족한 건 서울의 한계였습니다.
유치원 입학도 하기 전에 살았던 아파트, 초등학교 때 친구가 살아 자주 놀러갔던 낡은 아파트가 지금 10억원대에 시세를 형성하는 점도 아이러닙니다. 도시가 정비되고 집만 다닥다닥 짓던 자리에 녹지와 공원도 추가하면 분명 주거환경이 개선되겠죠.
서울 도시개발 초기 단계에는 인구 증가에 맞춰 빈땅에 아파트를 지었고 이후엔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을 풀어 빈땅을 늘리는 식으로 집을 늘렸습니다. 조세희 작가의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행운동'처럼 관이 쓸어버리는 식의 개발도 있었고, 이 방식은 2009년 용산 참사 때까지 계속됐죠.
어느덧 인구 1000만 도시가 된 서울은 빈땅이 많지 않고, 아파트와 다세대·다가구가 많아 소유관계도 복잡해졌습니다. 경제발전과 함께 민주주의와 시민의식도 높아지면서 이제는 민이 직접 정비사업의 주체가 되고 있습니다. 헌집을 직접 새집으로 바꾸면서 집 크기를 키우고 갯수를 늘리는 일이죠.
토지 등 소유자의 동의를 받아 요건을 충족해야 정비사업 단계를 진행할 수 있는데, 대개 기본계획수립→안전진단→정비구역지정→추진위원회승인→조합설립인가→사업시행인가→관리처분인가→철거·착공신고→일반분양→준공인가 단계를 거쳐 새집이 완성됩니다.
서울시 정비사업 정보몽땅에 따르면 28일 기준 재건축·재개발(가로주택정비·지역주택·리모델링 포함) 사업장은 총 832곳입니다. 이 중 재건축이 확정된 △조합이 651곳이고, 추진 단계인 △추진위원회 95곳 △추진주체구성전 단계 86곳입니다. 정비사업을 마친 조합청산 단계 사업장도 44곳이고요.
이 같은 정비사업장의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사업에 참여하는 시공사를 열 손가락 안에 꼽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재건축 여부가 결정되는 첫 단계는 '안전진단'인데, 여의도와 목동, 노원, 마포 등 예정 단지가 예비안전진단이나 정밀안전진단을 통과하면 붙는 '축하' 현수막도 대개 10종 중 하나죠.
요즘 정비사업은 건설업계의 중요한 '먹거리' 중 하나인데, 서울이라는 알짜 시장을 소위 1군 건설사가 과점하는 겁니다.
대형 건설사의 브랜드 아파트인지 여부가 집값을 좌우하기 때문이란 분석이 지배적인데요. 재건축·재개발로 지은 새집이 이전보다 비싸져야 일반분양 수익 등으로 사업비를 충당·상쇄하면서 이익을 남길 수 있다는 거죠.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지난 3월 진행된 올해 서울 첫 신축아파트 분양 결과입니다.
지하철 5호선 양평역 인근에 조성하는 영등포자이 디그니티와 9호선 등촌역 등촌지와인이 같은 날 청약 접수를 했는데, 자이는 1순위 모집 평균 경쟁률이 198.8대 1로 흥행한 반면 등촌지와인은 1.28대 1의 저조한 성적을 보였습니다. 동일 평형 기준 영등포자이가 1억원 더 비쌌지만 완판됐고, 등촌지와인은 무순위에서도 미달해 추가 분양 중입니다.
부동산 시장에선 흔히 '역세권·대단지·브랜드' 아파트가 지역 시세를 주도하는 소위 '대장아파트'가 됩니다. 선호도가 높으니, 오를 때 많이 오르고 내릴 때도 가격 방어력을 갖죠. 이에 조합원들은 집 가치를 높여주고 방어해줄 상위 브랜드가 아니면 쳐다보지도 않는다는 말이 업계에선 나옵니다.
한 중견 건설사 관계자는 "서울 정비사업장은 10대 건설사가 아니면 들어갈 엄두도 못 낸다. 조합마다 콧대가 높아 명함도 못 내밀고 수도권이나 지방 리모델링 위주로 참여할 예정"이라면서 "건설사 직원인 동시에 아파트 주민인지라 이해를 못 하는 건 아니다"며 씁쓸히 웃었습니다.
이 중견 건설사의 아파트 브랜드는, 지금은 서울 각 구마다 보이고 나름 '자재도 좋고 튼튼하다'는 평판을 유지해왔지만 서울이 재정비되는 20~30년쯤 후면 자취를 감추겠죠.
반면, 소비자 선호도가 높은 아파트 브랜드의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과거에야 조합이 갑이었지만 요즘은 그렇지도 않다"면서 "공사비도 오르고 사업 여건이 나빠져서 건설사도 돈 되는 사업장만 들어가려 하는데, 우리가 입찰에 참여하지 않아 작은 회사들만 들어가면 조합장이 해임된다"고 정비사업 수주시장 분위기를 전했습니다.
집은 지출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재화고, 그 가치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건 당연합니다. 다만 시장의 기형인 독과점은 언제나 폐해를 낳기 마련이란 사실은 어쩐지 찜찜한 우려로 남습니다.
아무리 모든 물가가 다 오른다지만 정확한 근거 없이 매달 분양가가 1억원씩 오르고, 비만 오면 신축 아파트도 물바다가 되는 데 더해, 이제는 무너지고 철근이 튀어나오는 데 이르러버린 상황과 주택시장의 기형적인 '상위 브랜드 과점화' 경향은 정말 아무 관련이 없을까요.
sabi@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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