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간 150번의 손길… 대나무와 종이가 만나 한 줌 맑은 바람 실어주네 [밀착취재]
남정탁 2023. 7. 30.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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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가 물러가고 푹푹 찌는 무더위가 찾아왔다.
접선의 일종인 합죽선(合竹扇·대나무 겉대 두 쪽을 얇게 깎아 합쳐 살을 만들고 한지를 붙여 만듦)은 가장 품격이 높은 부채로 여겨진다.
골선부에 합죽방(대나무를 잘라 얇게 깎아내는 곳)과 정련방(합죽으로 부채형태를 만드는 곳)을, 수장부에 낙중방(살에 무늬를 새겨 넣는 곳), 광방(광을 내는 곳), 도배방(종이를 붙이는 곳), 사북방(장식용 고리로 부채를 고정하는 곳)을 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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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째 ‘합죽선’ 명맥 잇는 무형문화재 김동식 선자장
장마가 물러가고 푹푹 찌는 무더위가 찾아왔다. 전통 사회에서 부채는 여름을 나기 위해 없어서는 안 될 생활필수품이었다. 특히 옛 선비들은 의관을 갖추고 손에 합죽선을 쥐어야 비로소 외출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한국의 부채는 크게 둥근 모양의 단선(團扇)과 접었다 폈다 할 수 있는 접선(摺扇)으로 나뉜다. 접선의 일종인 합죽선(合竹扇·대나무 겉대 두 쪽을 얇게 깎아 합쳐 살을 만들고 한지를 붙여 만듦)은 가장 품격이 높은 부채로 여겨진다. 부챗살이 많으면 많을수록 상품(上品)이라 하여 부챗살 개수로 신분을 가늠하기도 했다. 임금만이 살이 100개인 백접선을 사용할 수 있었다. 사대부는 그보다 적은 사십선, 평민들은 단선인 방구부채를 사용했다. 보통 사십선은 양쪽 변죽을 제외하고 대나무 76개를 합죽해야 하는데 두께는 고작 2.9㎝에 불과하다.
조선시대 전주에 있던 전라감영에서는 선자청(扇子廳)을 두어 진상품인 부채를 제작했다. 합죽선 재료인 대나무와 한지 품질이 우수했던 전주는 나라에서 손꼽히는 특산지가 됐다.
① ‘대뜨기’ 작업 부챗살 쪼개기에서 나온 대나무의 겉대와 속대를 분리하는 ‘대뜨기’ 작업을 하고 있다. |
② 목살 자르기 종이가 붙을 곳의 살을 깎아 내는 과정이다. 그 어느 과정보다 정교함과 노련함이 필요하다. |
③ 한지 붙이기 김대성 계승자가 부챗살에 풀을 발라 한지에 붙이는 작업을 하고 있다. |
2015년 국가무형문화재 128호로 지정된 김동식(80) 선자장(扇子匠·전통 부채를 만드는 기술과 그 기능을 보유한 장인)은 전주에서 사대부들이 사용하던 합죽선을 제작하며 4대째 명맥을 잇고 있다. 고종황제에게 진상할 만큼 기술이 뛰어난 선자장이었던 외조부(라학천)에게서 기술을 전수받았다. 손재주가 있었던 김동식 선자장은 13세인 1956년 “솜씨가 좋다”는 칭찬에 가업으로 합죽선을 만들던 외가에서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합죽선은 다른 부채에 비해 손이 많이 간다. 하나를 완성하기까지 대나무를 베는 일부터 150번의 까다로운 제작 과정을 100일간 거친다. 합죽선 제작과정은 2부(골선부, 수장부) 6방(합죽방, 정련방, 낙죽방, 광방, 도배방, 사북방)으로 나뉜다. 골선부에 합죽방(대나무를 잘라 얇게 깎아내는 곳)과 정련방(합죽으로 부채형태를 만드는 곳)을, 수장부에 낙중방(살에 무늬를 새겨 넣는 곳), 광방(광을 내는 곳), 도배방(종이를 붙이는 곳), 사북방(장식용 고리로 부채를 고정하는 곳)을 뒀다고 한다. 예전에는 공정마다 장인이 있어 협업을 통해 부채를 만들었다.
1960~70년대만 해도 부채를 만드는 장인이 많았다. 1년에 전주에서만 부채 5만여개가 생산됐다. 1970년대 산업화가 진행되고 선풍기와 에어컨이 보급되면서 부채는 점차 쓰임을 잃고 장인도 사라져 갔다.
외가는 여러 사정으로 합죽선을 놓았지만 김동식 선자장은 67년간 묵묵히 대나무를 자르고 쪼개고 깎아 부챗살을 만들며 대를 지켰다. 현재는 모든 공정을 혼자 도맡아 한다. 끈기와 인내심이 없다면 할 수 없는 작업이다. 일본과 중국의 부채 기술자들이 합죽선을 배우겠다며 방문한 적이 있는데, 쉽게 따라 할 일이 아니라며 그냥 돌아갔다.
합죽선은 절제된 멋이 있고 선이 아름다운 것이 특징이다. 대나무와 종이가 만나 맑은 바람을 일으키니 더욱 시원하다. 접었다 펼치는 부채소리가 장단이 된다고 하여 소리꾼들이 합죽선을 많이 사용한다. 외국인을 위한 선물용으로도 인기가 높다.
김동식 선자장에게도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가 있었다. “왜 좋은 기술을 버리려 하느냐, 계속하라”는 친구의 응원과 도움 덕분에 포기하지 않고 다시 힘을 낼 수 있었다. 김동식 선자장은 “내가 아니면 전통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책임감을 갖고 열심히 노력했다. 합죽선이 바람을 일으키는 도구를 넘어 역사와 혼이 깃든 아름다운 공예 작품이라고 알리는 것이 내가 할 일”이라고 했다.
전주=사진·글 남정탁 기자 jungtak2@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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