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손 놓고 있는 사이… 자식 버린 부모 ‘사망금 상속’ 악순환 [뉴스 인사이드-3년째 표류 중인 ‘구하라법’]

김승환 2023. 7. 30. 09:4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상속권 박탈’ 관련 민법 개정안 계류
“법체계 전반 영향 커”… 논의 하세월
유사한 ‘공무원 구하라법’은 이미 시행
‘대양호 실종자’ 생모 54년 만에 등장
사망 보험금·주택 등 본인 명의로 취득
재판서도 승소… 유족 “구하라법 시급”
서영교 의원안 ‘부양 없으면 상속 결격’
정부안 ‘양육의무 위반해도 용서 가능’
서로 장단점 뚜렷… “절충안 찾을 필요”

“어린 시절 친모에게 버림받고 평생을 외로움과 그리움으로 고통받았던 하라양의 비극이 우리 사회에서 다시 발생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입법을 청원합니다.”

가수 고 구하라씨 오빠의 법률대리인이 2020년 3월 보도자료에서 ‘구하라법’ 제정을 위해 국회에 입법 청원을 제기하면서 적은 말이다. 구씨가 2019년 11월 세상을 떠난 이후 유산 상속 문제를 두고, 구씨가 어렸을 때 가출한 친모와 구씨 오빠 간 법적 다툼이 한창이던 때였다. 구하라법은 직계존속이나 직계비속에 대한 보호·부양 의무를 다하지 않은 경우 상속권을 박탈하는 걸 골자로 하는 민법 개정안이다. 구씨의 안타까운 사연에 공분이 컸던 터라 구하라법 제정을 위한 이 청원은 금세 10만명 이상 동의를 얻었다.

이후 3년여가 흘렀다. 그 사이 법원은 구씨 오빠 측인 친부와 친모 간에 6대 4로 유산을 분할하라는 판단을 내렸다. 그러나 구하라법은 아직이다. 2020년 5월 20대 국회 임기가 끝나면서 자동 폐기됐던 구하라법은 21대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서영교 의원 등이 발의하면서 재추진됐지만 국회 임기 종료 10개월을 남겨둔 현재까지도 논의가 지지부진이다. 그 사이 구씨 오빠 측 법률대리인이 보도자료에 썼던 ‘비극’은 계속 반복되고 있다.

고 구하라씨 영정사진
◆반복되는 비극

또 다른 비극은 2021년 1월23일 경남 거제 앞바다에서 발생한 대양호 127호 선박 침몰 사고로 시작됐다. 고 김종안씨가 이 사고로 실종됐다. 황망한 와중에 사고 후 한 달이 지나 김씨의 생모 A씨가 나타났다. 김씨가 2살 때 집을 떠난 뒤 54년 만이었다. 그간 연락이 없던 A씨가 아들이 죽어서야 모습을 드러낸 건 상속 때문이었다. 김씨는 사실상 사실혼 관계인 배우자가 있었지만 혼인신고를 한 적 없고 자녀도 없었다. 현행 민법에 따라 이 경우 생모인 A씨가 제1순위 상속권자가 된다. 양육 이행 여부는 여기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A씨는 김씨 통장 예금 1억원과 집을 모두 본인 명의로 돌려놓았다고 한다. 김씨의 친누나 김종선(61)씨는 28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동생 보험금 지급과 관련해 재판을 진행하는 도중에 A씨가 다 가져갔다”며 “A씨는 우리 3남매를 진즉에 떠난 사람이다. 그가 재혼해서 가진 자녀들 때문에 그런 것 같다”고 말했다. A씨는 김씨 사망 보험금 약 2억5000만원을 받기 위해 부산지법에 소송을 제기했고 지난해 12월 1심 재판부는 친모의 손을 들어줬다.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누나 김씨 등은 보험금이 동생 김씨와 사실혼 관계인 배우자와 실제 양육을 이행한 고모 등에게 지급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중이다. 누나 김씨는 “8월30일에 항소심 결론이 나올 예정”이라며 “1심과는 다른 판단이 나오길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누나 김씨는 지난달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도 했다. 그 자리에서 구하라법 통과를 촉구하면서 눈물을 보였다. 구하라법이 처리되더라도 김씨 재판에는 소급 적용되지 않는데도 그랬다. 김씨는 “앞으로 다시는 이런 기막힌 일이 있으면 안 된다”며 “이번에 반드시 국회에서 구하라법이 통과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2년여 전 거제도 앞바다에서 실종된 김종안씨의 친누나 김종선씨(왼쪽 두번째)가 6월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구하라법 통과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뉴스1
◆‘공무원 구하라법’은 시행 중

이런 김씨 바람에도 구하라법에 대한 국회 논의는 좀체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영아살해·유기를 일반 살인·유기죄로 처벌하는 내용의 형법 개정안을 심사했던 지난 13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선 구하라법도 상정됐지만 어떤 논의도 이뤄지지 않았다. 최근 영아살해·유기 사건이 잇따라 확인된 터라 관련 개정안이 그날 소위를 통과한 이후 17일 법사위, 18일 본회의를 쾌속으로 통과한 것과 대조를 이루는 모습이다.

일명 ‘공무원 구하라법’이라 불리는 공무원연금법·공무원재해보상법 개정안이 이미 2년7개월여 전에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시행 중인 터라 형평성 차원에서라도 구하라법에 대한 조속한 논의가 필요해보인다. 공무원 구하라법은 순직한 공무원에 대해 양육 의무를 다하지 않은 유족이 퇴직유족·재해유족급여 전부 혹은 일부를 못 받도록 하는 게 골자다.

기존 법은 이 급여를 받을 유족 순위를 민법상 상속 순위를 따르고 있었다. 민법상 1순위 상속권자는 사망한 사람의 자식, 자식이 없는 경우엔 사망한 사람의 부모가 2순위 상속권자가 된다. 그러다보니 고 구하라·김종안씨 사례처럼 자녀를 전혀 양육하지 않은 부모가 자녀 사망 후 갑자기 나타나 유족연금을 받아가는 경우가 생겼던 것이다. 실제 2020년 10월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순직한 소방관인 고 강한얼씨의 언니가 참고인으로 나와 자매를 키우지 않던 친모가 유족연금을 수령한 사례를 증언했고, 공분을 사면서 국회가 공무원 구하라법 추진에 속도를 냈다. 채 두 달도 안 돼 개정이 마무리됐다.

법사위 소속 한 의원은 구하라법과 공무원 구하라법 추진이 이처럼 현격한 차를 보인 데 대해 “구하라법은 민법 사안이다 보니깐 그 개정이 법 체계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바깥에서 볼 때 좀 논의가 답답하다는 인상을 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결격사유 추가냐, 상속권 상실선고냐

지난 13일 법사위 법안심사소위에 상정된 상속 관련 민법 개정안은 총 8건이었다. 이 중에서 피상속인에 대한 부양 의무 이행에 문제가 있는 경우에 집중해 상속인의 상속권을 배제하고자 하는 내용이 주가 되면서 그 방식에 뚜렷한 차이를 보이는 게 바로 민주당 서영교 의원안과 정부안이다.

2021년 2월 서 의원이 대표 발의한 민법 개정안은 ‘양육을 현저히 게을리하는 등 양육 의무를 중대하게 위반한 자’를 ‘상속결격 사유’에 포함하는 게 골자다. 이 사유 확인 절차는 가정법원에 두도록 했다. 현행 민법상 상속결격 사유는 직계존속·피상속인 등을 살해 또는 사망에 이르게 하거나, 피상속인의 상속에 관한 유언을 사기·위조한 경우 등 5가지다.

2021년 6월 국회에 제출된 정부안은 피상속인 부양의무를 중대하게 위반한 경우 등에 대해 가정법원이 청구를 받아 ‘상속권 상실선고’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게 골자다. 결국 유언을 포함한 피상속인이나 다른 상속인의 청구에 따라 절차가 개시되는 식이기 때문에 피상속인의 뜻에 더욱 잘 부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쉽게 말해 부양의무 위반 사실이 있더라도 피상속인이 따로 소를 제기하지 않는 형태로 용서도 가능해지는 것이다. 반면 상속결격 사유에 양육 의무 위반을 포함시키는 안은 그 사실관계만 분명히 확인되면 상속권 배제가 이뤄진다.

구하라씨 유족 측 변호를 맡기도 했던 노종언 변호사(법무법인 존재)는 “두 법안은 결국 부양 의무 위반자의 상속권 박탈을 ‘원칙’으로 보느냐, ‘예외’로 보느냐의 차이”라며 “서 의원안은 부양 의무 위반자의 상속권 박탈을 정의 관념에 비춰볼 때 당연한 원칙이 돼야 한다고 보는 것이고, 정부안은 부모의 상속권을 인정하되 예외적으로 양육 불이행의 경우 상속권이 상실되도록 별도 제도를 마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고 구하라씨 생전모습. 연합뉴스
이런 차이는 부모-자녀 관계를 바라보는 시각 차에서 비롯된 것이란 해석도 있다. 상속권 상실선고 제도엔 부모-자녀 관계 자체로 큰 의미가 있다고 보는 가치관이, 상속결격 사유 추가는 관계 자체보다는 그 관계에 수반되는 의무가 더 우선된다는 시각이 숨어 있다는 것이다. 부양 미이행자의 상속 문제와 관련해 일본이 상속권 상실선고를, 미국은 상속결격 사유를 활용하는 게 이런 가치관 차이에서 비롯됐다는 평가가 있다.

두 방안의 장단점은 뚜렷하다. 상속결격 사유 추가 부양을 이행하지 않으면 법률상 당연히 상속권이 배제되기에 정의 관념에 부합하지만 부양 의무의 범위·기준이 불명확해 법적안정성을 저해할 우려가 있다. 피상속인이 용서해 상속을 원하더라도 그 의사와 관계없이 상속 결격자의 상속권이 발탁되는 상황도 있을 수 있다. 정부안은 피상속인 청구에 따라 절차가 개시되기에 이런 문제가 없다. 법원 선고 과정에서 부양 의무의 범위·기준에 대한 불명확성도 보완된다. 다만 청구권자의 청구가 없는 경우 상속권 상실이 불가하고, 청구권자 범위가 넓을수록 분쟁 가능성이 증가한다는 한계가 있다.

노 변호사는 “두 개 안이 각각 타당성이 있기 때문에 각 장점을 절충하는 안을 찾을 필요가 있다”며 “이 두 개 안을 서로 강하게 주장하다 보니깐 구하라법 논의가 지연되기도 하는 건데 그 장단점을 조화시키는 방향으로 협의를 이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승환·최우석 기자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