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 예고에 2차 가해까지…온라인 커뮤니티 이대로 괜찮나
전문가 "이분법 사고 심화와 무관치 않아…익명성 악용엔 제재 필요"
(서울=연합뉴스) 장보인 기자 = 지난 21일 대낮에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서 벌어진 '묻지마 흉기난동' 사건의 충격은 오프라인에서는 물론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쉽게 가시지 않고 있다.
인터넷 카페 등에서는 피해자에 대한 안타까움을 드러내거나 유사한 사건이 주변에서 또 벌어질 가능성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을 공유하는 게시물을 다수 찾아볼 수 있다.
서울의 번화가에서 대낮에 흉기난동이 발생해 1명이 사망하고 3명이 다쳤다는 사실 자체가 주는 충격이 작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나 일부 커뮤니티에서는 유사한 범죄를 예고하는 글이 아무렇지도 않게 올라오거나 사건을 희화화하고 피해자에 대해 2차 가해를 서슴지 않는 게시물도 잇따라 등장해 논란이 되고 있다.
신림역 일대에서 살인을 하겠다는 '예고성' 게시물이 여러 건 등장한 것이 대표적이다.
지난 24일에는 20대 남성 이모 씨가 '26일 신림역에서 여성 20명을 죽이겠다'는 글과 흉기 구매 내역을 캡처한 사진을 온라인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에 올렸다가 27일 협박 혐의로 구속됐다.
서울경찰청은 이 밖에도 해당 커뮤니티에 살인을 예고하는 글 4건이 더 올라온 사실을 확인해 작성자를 추적 중이다.
익명성에 기댄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피해자가 남성이라는 이유로 조롱의 대상이 되는 경우마저 있었다. 같은 이유로 가해자를 '조선제일검', '상남자' 등으로 칭하거나 '남자의 적은 남성'이라고 비꼬는 게시물까지 눈에 띄었다.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는 '묻지마 흉기난동'의 초점이 흐려지고 불필요하게 성별에 치우쳐 비하·혐오 표현을 내세우면서 뜻밖의 성별 갈등으로 번지는 지경까지 이른 셈이다.
온라인 커뮤니티 이용자들이 이렇게 특정 인물을 비하·조롱해 상황을 왜곡하고 쟁점이 된 사건을 희화화해 문제의 본질을 흐리는 것이 새로운 현상은 아니지만 그 수위가 점점 높아지면서 '커뮤니티의 문화'로 지켜만 보기는 어려운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이동귀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자극적인 게시물들이 올라오는 이유로 익명성과 함께 사회 구조적 문제 등을 꼽았다.
그는 "익명성이 보장되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사람들이 훨씬 더 강하게 의견을 낼 수 있다. 상대적 박탈감이나 사회에 대한 냉소적 태도를 여과 없이 표현하기도 한다"고 분석했다.
특히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는 듯한 반응이 나오는 데 대해 "자신과 직접적 관련성이 없다고 생각하는 대상에 대해선 더 심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며 "이분법적 사고가 심화하고 내 편이 아니면 적처럼 대하는 사회현상과도 무관하지 않다. '피아'를 구분하는 구조에서 공감이 자라날 공간은 줄어든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표현의 자유도, 여과 없이 분출되는 악플과 2차 피해를 방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두 가지 중 어느 쪽에 더 무게를 둬야 할지 선택해야 할 시점이 아닌가 싶다"고 지적했다.
온라인 커뮤니티 내의 범죄 행위나 무분별한 혐오를 막으려면 더 강력한 제재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포털 사이트 댓글 규제 등이 활성화되면서 익명성에 기대 의견을 표출할 수 있는 온라인 커뮤니티로 옮겨가는 트렌드가 있다"며 "익명성 보장이 악용되는 측면이 있다면 제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구 교수는 "개인에게 맡길 수 없다면 관리자 등이 나서야 한다. 적극적으로 모니터링을 해 범죄 소지가 있거나 폭력적인 게시물, 상대를 심각하게 비하하거나 혐오하는 글 등에 대해선 과감하게 계정을 삭제하는 등 지금보다는 강력한 조치가 뒤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사법대학 교수 역시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게시물을 방치해선 안 된다는 사회적 합의와 공감대가 형성되면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그에 따른 절차를 밟도록 해야 한다. 어떻게 이를 적절히 통제할 수 있을지 검토하고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boi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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